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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an 08. 2023

입맛에 따라 정답을 바꾸는 태도


나는 잘 살고 있을까 못 살고 있을까. 이 정도면 안정을 찾았다고 할 법도 한데 그렇다고 소름 끼치게 잘 사는 건 아니기에 잘 사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업의 전환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중이므로 치열한 삶 속에 여전히 들어와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자본주의 안에서 나의 가치가 아직은 미비하다고 말해도 달리 반박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육아를 하며 돈도 벌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 자신의 가치가 미비할 수 있다는 그 전제를 부정하지 못하는 걸까.


월에 얼마를 벌어야 남들이 인정하는 내가 될까. 남편이 얼마를 벌어야 집이 얼마나 좋아야 차가 얼마나 좋아야 그 누구에게도 지나가는 말로도 작은 공격조차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도 반박 못할 정도로 월등히 잘 사는 것인데 남편이 매주 하는 로또는 여전히 꽝이다. 그게 안된다면 내가 먼저 공격하는 것인데 내가 불편해하는 그것들을 내가 똑같이 하는 게 과연 유의미한가, 그러고도 나는 괜찮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또 그건 아니다.


유퀴즈에 성공한 일반인들이 출연한 걸 보다 보면 처음엔 주변에서 다 자신들의 선택을 반대하고 우려했다고 말한다. 그 나이에, 그런 일을 하면 먹고살 수 있겠냐, 지금까지 해왔던 거 다 버리고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등등의 어설픈 조언과 걱정들. 진심 어린 걱정이라도 그 사람의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 수 있는 부스러기 같은 것들. 그런데 우습게도 사람의 마음에 한 번 달라붙은 부스러기는 털어내려고 해도 잘 털어지지 않는다. 불필요하고 사소한 거라는 걸 머리로 알아도 마음이 그걸 한 번에 털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자책하게 된다.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 맞는지, 내 선택이 괜찮았는지, 내가 쿨하지 못한 건지 등 온갖 잡생각으로 나를 괴롭힌다.


남들의 우려를 이겨내고 나름의 성과를 얻게  사람들의 말도 듣다 보면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누구와도 겹쳐지지 않는 자신의 환경, 선택, 성격의 모든 과정들을 옳았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책으로도 나올  있는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남들이 케이스 스터디하도록 전파하는 . 과연 그게 얼마나 정답일까. 모든 성공과 실패의 과정이 자신에게 자양분이 되었다고 해도  모든 과정을 타인에게 섣부르게 하나의 유형 혹은 패턴으로 소개할 만큼 완전할까. 나에게만 유의미한  굳이 남들에게까지 유의미한 것이라는 인증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유가 무얼까.


사람들은 힘들게 이겨낸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하기에 가끔은 자신의 삶의 형태를 권할 만큼 착각의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다. 자기의 길을 잘 가고 있던 사람도 붙잡아 그렇게 아등바등 살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남의 일상을 흔들어버리는 태도는 얼마나 오만한가. 남 눈치 보며 살기 싫다면서도 남들을 자극하며 눈치 주는 말과 뉘앙스를 흘리고 다니는 분위기는 얼마나 쿨하지 못한가.


 너대로  살고 있구나.  이렇게 살아. 근데 이런  이래서 좋더라고. 이런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  이렇게 서술형으로 말하면  되는 걸까. 확실하게 성공한 인생인지 실패한 인생인지 판가름 내야만 하는 걸까.


 예전부터 어설프게 알면서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엔 그게 너무 싫기도 했다. 60% 알면서 80% 아는 나보다  강렬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순간엔  사람이 이겨버리는데 뒤돌아서 보면 틀린 경우가 허다했다. 모르면서 확실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 대체로 알지만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사람  사람들은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신뢰한다. 알고 싶은  진실이 아니라 정답이니까.


그래도  그런 사람이 아니고 오답노트만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살고 싶지 않다. 남의 정답을 가져와 어떻게든  정답에 편승하려고 애쓰는 시간이 아깝다. 돈을 모르는 사람이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진  자산으로만 규정하고 싶지도 않다. 나에겐 내가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나를 갉아먹으며 사는 것과 내가 나로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며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가치를 지니기 위해 노력하는 건 너무나도 다른 삶이다.


정답을 찾고 싶진 않다.

그냥 나는  길을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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