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적 Jan 30. 2023

흔적의 지속가능한 1인 워크숍 in 부산, Prolog


떠나고 싶었다.


일상을 벗어나 떠나고 싶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상에 지치고 환기가 필요할 때, 새로운 장소에 가서 영감을 얻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등등. 반복적이고 별것 없는 듯 느껴지는 일상을 살다 보면 시시때때로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숱한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바로 '타이밍'이다. 흔치 않게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는 순간 떠남은 아득히 멀리 사라지는 꿈이 된다.


한동안 일이 바빠 내내 야근하고 주말 출근하던 남편이 설 연휴 포함 열 흘을 쉬게 되었다. 이게 웬 떡이람. 남편이 고생해서 얻은 연차를 어떻게 보내야 더 꿀맛으로 즐길 수 있을까. 함께 여행을 갈까. 아님 혼자 떠날까. 마침 내게도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볼 시간이 필요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평소엔 아이 생활에 묶여  무언가를 시도해 볼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가방 하나 들고 홀연히 잠시 떠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일상이었다.


반은 여행이고 반은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나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본다면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업의 전'환이나 되고자 하는 '에코 콘텐츠 크리에이터'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이건 나만을 위한 게 아냐. 그저 놀기 위한 게 아냐. 나를 설득했다. 아이를 두고 가는 엄마라는 신분을 갖게 된 이후로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나만의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야 죄책감 없이 훌훌 떠날 수 있으니까.


남편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다. 이럴 때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불만이나 "No"를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의 모든 걸음을 응원해 준다. 역시 나보다 큰 사람이다. 그래서 난 더 열심히 산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고마워. 떠날게.




1인 워크숍


이 여행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마냥 노는 것도 아니지만 충분히 즐거운, 주제와 목적이 있지만 얽매이지 않는, 다분히 계획적이지만 즉흥성은 잃지 않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요즘 유행하는 '워케이션(Work+Station)'이 떠올랐다. 하지만 2박 3일 짧은 일정에 노트북 펼치거나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명확히는 경제적 '일'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적합하지 않은 단어 같았다. 그렇다면 '친환경 여행'이라고 해야 할까. 틀린 건 아닌데 뭔가 아쉬웠다. 여행의 과정을 친환경으로 실천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내가 여기에 더하고 싶은 건 좀 더 복합적이었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실천하는 것이 여행의 중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의 여유와 쉼을, 또 한편으로는 영감을 채우며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그런 여정이 되기를 바랐다.


'1인 워크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회사도 없고 동료도 없고 노는 것 같아 보이지만 충분히 배우고 채우고 얻는 나만의 자유로운 워크숍이면 어떨까. 경험에 비해 sns 플랫폼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물론 기록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소진된 상태로 얼마나 더 좋은 아웃풋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던 건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 기록하며 막연한 기회를 바라는 수동적인 나의 상태 때문에.


신이 난 J형 인간은 1인 워크숍의 주제와 목적, 목표, 일정을 정하고 키워드를 뽑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만의 소소한 여정을 거창하게 수놓기 위해 과거 컨설팅 프로젝트 회의 시간에 골몰하던 끄적임의 태도를 꺼내와 노트에 적어내렸다. 막연하고 납작했던 여행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을 갖는 순간 입체적인 워크숍으로 부푸는 느낌이 들었다. 경제적 이득이나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이 아닌 내 안의 확신에서 오는 쾌감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또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나를 든든히 받쳐주는 기분 또한 어찌나 좋은지.



#1인워크숍

#지속가능한여행

#에코콘텐츠크리에이터




1인 워크숍의 목적


2박 3일 1인 워크숍의 목적은 분명했다. 영감, 환기, 기록. 내가 정한 세 가지 요소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여정이 되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 상상 속에서는 분명하게 그려지는 시간들. 그 어느 쪽에도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기를 바랐다.


'영감'은 내게 언제나 중요한 키워드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기 위해, 뻔한 것들에서 벗어나 틀을 깨기 위해, 타성에 젖지 않기 위해 영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평소에도 누군가의 생각과 고민이 깃든 공간에 가고 작품을 경험하며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내게 필요한 건 내가 만들고 싶고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 콘텐츠에 대한 영감이었다. 개인의 실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선을 갈망한다.


'환기'가 필요했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버거운 마음이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조급해지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2주 전부터 하루에 5분씩 명상을 하는 '마인드 루틴'을 실천하던 참이었다. 이제 36개월이 된 내 아이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고 남편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하지 않기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그만큼 내 생각과 마음은 고여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은 가득한데 좀처럼 앞으로 갈 수 없는 꿈속 같았다. 


이 모든 여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나의 생각, 계획, 과정, 감정들을 기록하고 이것이 나의 경험 포트폴리오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현재에 집중하면서도 다음을 내다볼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목표는 ‘친환경’


1인 워크숍의 목표는 '친환경'이었다. 친환경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두 가지 요소인 제로웨이스트(zerowaste)와 비건(vegan)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것. 앞서 말한 영감, 환기, 기록은 모두 친환경적인 과정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비건 식당을 찾아가고 일회용 쓰레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대중교통과 두 발을 이용해 이동하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완성하는 여행.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길 바랐지만, 이렇게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아도, 고기를 먹지 않아도 충분히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과 소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내 경험으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구에 덜 유해한 방식 안에서도 돈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건 절제의 미덕도 정신 승리도 아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1인 워크숍이다.



#용기내

#무메니티

#제로웨이스트

#비건




부산으로 정한 이유


뚜벅이 비건 투어에 부산보다 더 적합한 여행지는 없다. 아직까진 국내에서 부산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하며 비건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보리밥이나 두부를 파는 한식당에서 적당히 채식을 할 수는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양념과 국물에 고기와 해산물이 들어가기에 완전한 비건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게다가 밑반찬까지 비건인 경우도 드물고 같은 돈을 내고 이것저것 다 빼달라고 하면 돈이 아까운 경우도 허다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산엔 비건 식당과 베이커리가 참 많다. 서울에 버금갈 정도로 아니, 어쩌면 서울보다 더 높은 밀도를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음식의 장르, 운영 방식과 형태도 다채롭다. 아직까지 비건 식당에 대해 낯설어하거나 경계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은데 부산의 비건 가게들은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호기롭게 "나 비건이오~" 하고 내건다. 


부산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할 자유도, 부산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부산이어야만 했다.




떠난다.


나는 혼자 떠났다. 작은 캐리어 하나에 에코백을 들고 손엔 텀블러를 들고 ktx에 몸을 실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 훈훈했다. 아이를 두고 가는 마음이 약간 걸렸지만, 누구보다 잘 지낼 아빠와 아들임을 알기에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에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흔적의 지속가능한 1인 워크숍은 시작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