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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an 31. 2023

1인 워크숍 |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


여행의 목표인 '지속가능한' 방식의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쓰레기 발생을 줄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쩌면 보통의 여행 준비물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나의 편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제로웨이스트에 집중하며 짐을 간소화한다는 점이 다르다. 처음엔 집 안 살림을 전부 옮겨가듯 온갖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지만, 이젠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내가 가진 모든 비누를 챙겨가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에선 매일 씻지도 않으면서 여행만 가면 온갖 뷰티 제품을 다 챙기는 아이러니한 마음만 내려놓으면 된다.




무메니티(無+amenity)


일회용 어메니티를 사용하지 않는 '무메니티 (無(없을 무)' + '어메니티(amenity))'를 실천한지 올해로 3년 차가 되었다. 한때는 어메니티 브랜드를 보고 그 호텔을 예약했던 시절도 있었다. 집에 가져와 다 쓴 기억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땐 그게 꽤 고급스러운 공짜라고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예쁜 쓰레기들을 버렸던가. 


무메니티를 처음 실천했던 2년 전 이맘땐 호텔, 펜션 등 모든 숙소에 일회용 어메니티가 당연한 서비스처럼 놓여있었다. 일회용 칫솔, 치약, 샴푸, 린스, 빗 등 불필요한 물건 부스러기들로 가득했다. 무메니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꽤나 신경을 쓰고 긴장해야 했다. 예약 전 혹은 체크인 전에 어메니티를 놓지 말아 달라고 따로 부탁해야 했고 방을 나서며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으니 버리지 말아 달라'라고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실천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신경 쓸게 많은 여행에선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하기도 했다.


다행히 요즘은 환경부의 '일회용품 줄이기' 방침 덕분에 샴푸, 린스 등 욕실 용품은 일회용 어메니티가 아닌 대용량 디스펜서로 교체되는 추세다. 물론 나는 그것조차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웬만하면 내 비누를 들고 다닌다. 화학 계면활성제가 불가피한 액체형 샴푸를 쓰고 싶지도 않고 리필형도 결국 다 쓰면 일반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제품을 사서 채워 넣을 테니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제로웨이스트 3년 차인데 경력에 걸맞은 선택을 해야지.




자, 이게 바로 무메니티를 위한 나의 여행 준비물이다. 혼자 하는 뚜벅이 여행이니 평소보다 더 가볍고 간소하게 챙겼다. 대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 비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씻을 거리, 바를 거리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왓츠 인 마이 파우치'.




새로운 마음으로 새 대나무 칫솔을 꺼내 날짜를 적었다. 날짜를 적어두는 이유는 위생 관리를 위해서다. 대나무 칫솔의 사용 기간은 보통 최대 두 달인데, 플라스틱 칫솔보다는 습기에 약한 편이므로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날짜를 적어두면 너무 오래도 짧게도 쓰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교체할 수 있어서 편한다.


각종 비누와 화장품을 덜어가기 위해 마스킹 테이프를 아무렇게나 찢어 이름을 적었다. 떼었다 붙였다 하기도 편하고 나름의 감성도 느껴져서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이 즐거웠다.




까맣고 작은 원형 플라스틱 통에 트리트먼트 비누와 수분 크림을 담았다. 러쉬에서 크림을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팩이 들어있던 통인데 여행용으로 용량이 딱이라 반납하지 않고 잘 쓰고 있다. 물론, 러쉬는 '공병 회수 캠페인'을 펼치고 있으므로 쓰지 않더라도 이 녀석을 버릴 일은 없다.


동구밭 트리트먼트 바를 칼로 잘라 두 조각 담고 아로마티카의 비타 크림을 듬뿍 덜어냈다. 내가 쓰는 모든 제품의 브랜드는 비건과 친환경 패키지를 기본으로 한다. 브랜드에 대한 애정은 화려한 허세가 아니라 담백한 진정성으로 나날이 깊어진다. 비누를 칼로 자르는 건 정말 asmr에 버금가는 쾌락이다.




스킨과 에센스도 작은 용기에 덜었다. 집에서 쓰는 건 부피도 크고 무게도 나가서 짐이 될 것 같아 시약병과 집에 굴러다니던 작은 플라스틱 통을 세척하고 말려 사용했다. 그런데 시약병이 정말 신세계다. 손으로 누르면 조금씩 나오는 사용감이 스킨에 정말 딱이네. 집에 아이가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시약병은 아이의 물감놀이로, 나의 스킨병으로 다채롭게 그 쓰임을 찾고 있다.




이건 따로 챙길 필요도 없이 늘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이다. 더 이상 쓰지 않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여행 전용 비누 용기로 쓰고 있다. 평소 화장실 수납칸에 두었다가 여행 갈 때 꺼내면 되니 세상 편하다. 비누 역시 매일 쓰는 클렌징 비누를 홀더에서 떼어내어 담기만 하면 된다. 나 세수 매일 열심히 하는데 이 비누 정말 줄지 않네.




바디워시와 샴푸 겸용으로 쓰기 위해 비닐에 포장된 작은 비누도 몇 개 챙겼다. 비누 살 때 서비스로 받았던 건데 사실 처음엔 그리 달갑진 않았다.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비누를 쓰는 건데 너무 작은 비누가 소포장되어 있으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소진은 해야 하니 이번 여행을 위해 챙겼다.




아슬아슬했지만 파우치 안에 다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비주얼.




용기내



뚜벅이로 걸어 다닐 거라 용기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고 납작한 용기 두 개를 챙겼다. 하나는 캐리어에 넣고 하나는 들고 다니는 에코백에 넣었다. 짐이 되지 않을 딱 그 정도만.




혹시 몰라 비닐 지퍼백도 하나 챙겼다. 무언가를 담아 갈 때 작은 밀폐용기보다 비닐 하나가 더 편할 때도 있고 비닐은 가벼워서 짐도 되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평소 지퍼백은 구매하지 않고 냉동식품 사고 나오는 패키지를 재활용하는 편인데, 당근 거래를 하다 보면 육아용품을 지퍼백에 담아주는 거래자분들이 있다. 그게 더 깨끗하고 예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중고 거래에서도 불필요한 포장은 미리 거절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개씩 받게 되는 일이 많아서 모아두었다가 깨끗이 씻어 무한 재사용하고 있다.


입과 손을 닦이 위해 손수건도 하나 챙기고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크림도 면 파우치 속에 쏘옥 넣어두었다. 든든하네.




마지막으로 작은 밀폐용기엔 보리차를 담았다. 숙소 냉장고 안엔 페트병에 든 생수가 있겠지만 난 내 보리차를 티백 없이 끓여  쓰레기 없이 안전한 물을 마시고 싶으니까. 너무 별것 아니지만, 안 챙기면 그만큼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작은 생분해 봉투와 집게, 꼬질꼬질한 목장갑도 챙겼다. 작게라도, 잠시라도 한 번은 플로깅을 해야겠다는 싶어서. 동네에서 쓰레기를 주울 땐 종량제 봉투에 담아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버리면 되기 때문에 이벤트로 받았던 생분해 봉투를 쓰지 않고 쟁여두었다. 이럴 때 요긴하군.




그렇게 텀블러 하나 손에 들고 엄마의 미니 캐리어까지 빌리면 출동 준비 완료.


기다려라,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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