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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Feb 06. 2023

1인 워크숍 | 베트남 음식도 비건이 되나요.


1인 부산 워크숍 첫째 날, 영도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베트남 음식점인 '라임 하노이'였다. 비건 식당은 아니고 일부 메뉴를 비건 옵션으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일명 ‘비건 옵션 식당’. 베트남 음식을 비건으로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경험해 보고 싶었다.



나 혼자만의 웨이팅


하지만 매장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분명 네이버 지도에서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간 건데 어찌 된 일일까. 비건 식당이 흔한 것도 아니고 영도를 벗어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문자를 보냈다. '영업 안 하시나요.'. 곧 답장이 왔다.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입니다. 5시 45분부터 저녁 영업 시작됩니다.' 45분은 뭘까. 디테일한 시간에 의아해하다 한 시간 남은 영업시간을 기다릴 것인지 말 것인지 매장 앞에 서서 고민했다.


그래 기다리자. 또 다른 비건 식당을 찾아 영도를 벗어나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최소 한 시간은 걸릴 테고 짐을 맡겨둔 부산역에서도 멀어지면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 같았다. 일부러 찾아온 건데 이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 그럼 그럼.


몸도 녹일 겸 근처 카페에 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로투스 서비스. 손목서가에서 서비스로 받은 초콜릿은 비건이 아니라 거절했지만, 대표적인 비건 간식은 거절하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조그마한 것 하나에 당 충전을 제대로 했다. 트레이에 함께 받은 티슈는 그대로 손도 대지 않고 두었다가 나갈 때 컵과 함께 반납했다.


"새 거예요. 손도 대지 않았어요."




드디어 열었다. 불 켜진 매장이 어찌나 반갑던지.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 영업 준비 중이라 주방은 분주했고 추운 겨울날이라 매장은 한산했다. 거의 다 배달 주문인듯했고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비건 메뉴부터 꼼꼼히 읽어내렸다. 혼자라서 식사 메뉴 하나에 많아봤자 작은 간식 하나 정도 추가하는 게 최대치였기 때문에 메뉴 선택에 신중해야 했다. 비건 음식 먹으러 왔다고 하니 사장님께서는 포스기 안에 메뉴가 더 많다며 따로 사진을 찍어주시기까지 했다.


갈등의 시작. 혼자라서 만 7천 원짜리 비건분짜는 좀 부담스럽고 기본 중의 기본인 비건 쌀국수는 조금 아쉬운듯해 갈팡질팡했다. 이것저것을 고려하느라 나의 선택은 이때부터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비건 팟타이를 먹어보고 싶긴 한데 날이 추워서 매콤한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매운 비건 팟타이'를 주문했고 맵기는 가장 낮은 단계로 부탁드렸다. 그래 맵찔이지만 가장 순한 맛은 괜찮겠지.




매운 비건 팟타이와 추가 주문한 야채 춘권이 나왔다. 바쁜 와중에도 사장님은 친절하셨고 견과류 토핑도 마음대로 뿌려먹으라고 따로 주셨다. 그리고 매장은 조금 추웠다.




견과류 마니아라 다 뿌려서 맛을 보았다. 파프리카, 양파, 청경채 등 온갖 야채 넣고 볶은 비건 팟타이라니 감격스러웠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어 그런데 조금 매운가. 단무지도 있고 물도 있고 야채 춘권도 있으니 이 정도 맵기는 감당할 수 있지. 호기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한 입 두 입 먹을수록 점점 불이 나는 나의 혓바닥은 말하고 있었다. '너 이거 매워서 못 먹어.' 조금씩 힘들어졌다.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이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매워도 너무 매웠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난 '매운'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걸. 비건 식당도 종류와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모든 비건 식당의 비건 음식이 입에 맞을 수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요리에서 동물성 재료를 제외하고 먹는 것이 ‘비건’일 뿐 그 안에는 자극적인 비건과 사찰음식 스타일의 심심한 비건, 자연 식물식과 정크 비건, 대식가 비건과 소식좌 비건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느끼한 크림 혹은 기름맛에 약한 시골밥상파에 맵찔이였던 나의 논비건 시절 음식 취향은 비건을 지향한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야채 춘권도 딱 한 개 반까지 겉바속촉과 고소함의 풍미를 느끼며 맛있게 먹었다. 그다음부턴 느끼해지기 시작했다. 매운 건 매워서, 느끼한 건 느끼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먹고 체할 것인가 아쉽지만 이만 젓가락을 내려놓을 것인가 갈등했다. 밥과 튀김이 주메뉴인 텐동집을 한 번 가보고 다신 가지 않았던 나를 다시금 떠올렸다. 백기를 들었다. 딱 체하지 직전까지만 열심히 먹고 일어섰다. 


비건 쌀국수를 시켰어야 했다. 아니면 맵지 않은 비거 팟타이 그것도 아니고 볶음밥을 시켰다면 좋았을 텐데. 오롯이 내 선택의 미스였다. 너무 많은 걸 고려하는 타입이라 그 집에서 가장 싼 메뉴를 고르는 걸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늘 내 선택을 삐긋하게 만든다. 그 메뉴도 그 집의 주력 메뉴일 텐데 난 도대체 왜 그런 불필요한 눈치를 보며 내가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걸까. 


맛있게 먹지 못했다고 해서 이 집의 음식 솜씨가 별로였다는 뜻은 아니다.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었으니 아주 좋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저 내 입맛과 취향과 양에 대해 많은 걸 깨달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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