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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Feb 08. 2023

1인 워크숍 | 미술관은 나의 영감 창고, 이우환 공간


미술관을 카페처럼 좋아한다. 미술에 조예가 깊다거나 해박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미술관은 꾸준히 몇 년째 내게 편안함을 주는 장소다. 공간이 주는 약간은 텅 빈 허전함이 좋고 그 안에 채워진 누군가의 생각들을 들여다보는 게 즐겁다. 그래서 미술관은 내게 힐링의 장소이자 영감 창고다. 때로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주제로 때로는 소소하고 직관적인 이야기들로 나를 자극한다.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는 특별히 환경 전시를 더 찾아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꼭 환경이라는 키워드로 좁혀서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미 내 시선이 그렇게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걸 봐도 나만의 해석에는 환경이 존재한다. 오히려 전혀 다른 주제와 소재에서 영감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나만의 1인 워크숍에서 미술관 방문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었다. 




목적지는 부산시립미술관. 도시가 큰 만큼 시립미술관의 규모도 작지 않았다. 널찍하고 한산한 잔디밭과 본관에 별관까지. 공간은 입체적이었고 서울시립미술관보다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한껏 기대감을 품은 채 문을 열었는데 거대한 작품에 가로막혔다. 두리번거리다 티켓을 발권하러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갑자기 인산인해를 이루는 북적거림에 어리둥절해하며  전시 티켓을 받았는데 두 시간 뒤에 입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부산은 시립미술관 인기가 이렇게까지 좋은 건가. 하고 보니, 이건희 컬렉션의 뜨거운 인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무료 전시지만 회차별로 인원을 정해놓고 입장하는 방식이었는데, 별생각 없이 느긋하게 전시를 보러 온 나의 타이밍은 절묘하게 엇갈리고 말았다.

다음 일정과 그다음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전시를 보고 나면 비건 식당들은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갈 텐데. 전시를 포기해야 하나 밥을 포기해야 하나.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나의 감흥은 보면 좋지만 안 봐도 아쉬울 것이 없는 정도였다.여기까지 온 내 시간이 조금 아쉬울 뿐.

하지만 괜찮았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 계획이 아주 틀어진 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선 상설 전시를 보기로 했다.




2층에 올라가 부산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설치 작품과 사진, 회화 작품들을 감상했다.




키워드는 다섯 가지였다. 근대, 도시, 자본주의, 국가, 역사. 과거의 부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진과 회화 작품들을 감상했다. 어느 도시에나 이 키워드들이 존재하지만, 특히 부산을 대표하기에 적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직후 피난처이기도 했고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부산은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가 비슷할 테지만, 특히나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의 성장은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속 가능한 삶이나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생존과 발전을 위해 다급하게 혹은 눈부시게 달려왔다. 많은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이루고 난 뒤 사람들은 그제야 놓쳤던 것들을 돌아본다. 인권, 평등, 동물복지, 환경 같은 것들. 발전을 위해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


나의 목적은 사실


나의 목적은 사실 '이우환 공간'이었다. 인기 많은 전시 웨이팅을 포기할 수 있었던 건 나의 목적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추상화의 대가인 이우환의 공간이 별관처럼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이 공간이 특히나 여유롭고 좋았다는 리뷰를 보고 언젠가 꼭 와보려고 점 찍어둔 곳이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해서 오롯이 내 글로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이우환의 작품은 매우 단순해 보였다. 점, 선, 바람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의 깊이감을 어디까지 해석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빈 공간이란 것은 예술가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대중이 그걸 이해하고 높은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여전히 간극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간이 너무 좋았다. 모든 공간은 관람자의 시선에서 어떻게 감상하고 사유하여 끝을 맺을지 작가가 직접 기획한 거라고 한다. 의자에 앉아 인터뷰 영상을 시청했다. 어떤 면에선 고집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흐르는 대로 유연해 보였다. 전시관 사이 돌이 깔린 복도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은 산책사의 시선에서 '사유하고 씻어버리는'공간이라고 정의되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담아내고 씻어내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인터뷰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이 있어 메모에 적어두었는데, 이우환 작가는 '시적인 순간을 일반화하고 보편화'하는 걸 예술가의 몫이라고 했다. 어쩌면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추상적인 경험의 기회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낯설고 신선했다. 보통 추상화는 자기만의 세계고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결이라는 게 작가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공간이 너무 좋아 창밖의 모습만 찰칵. 마음이 복잡할 때 오면 좋을 것 같은 곳인데, 마음이 복잡할 때 씻어내려고 왔으니 참 잘 왔다. 이건희 컬렉션 못 봤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더 유명하고 많은 걸 다채롭게 본다고 내 안에 채워지는 것도 그것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 좋은 시간을 보냈고 내 안에 채웠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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