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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Feb 09. 2023

1인 워크숍 | 사찰음식 먹고 해변 산책



오후 일정은 모두 수영구 안에서 움직일 예정이었다. 동선 안에서 미리 찜해둔 비건 식당 중 어딜 갈까 고민하다 민락수변공원 근처에 있는 '베지나랑'에 방문하기로 했다. ‘부산 비건 식당’을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곳이다.


1층엔 돼지국밥집이 있는데 유명한 곳인지 주변에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비건 식당과 논비건 식당의 공존이 묘하게 다가왔다.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비건 지향인은 곧바로 건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갔다. 




2시 10분 도착.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 시작이라 마음 졸였는데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다. 매장은 텅 비어있었고 난 혼밥을 위해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인데 1층 만큼 북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여기 가족들끼리 돌잔치 하면 괜찮을만한 곳이네. 그런 잡념도.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중간에 단체로 예약한 외국인 손님들 여럿이 내부 룸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나뿐이었던 건 아니었다.)




점원분께서 따뜻한 물과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일회용품이 하나도 없어서 안도했다. 내 손수건만 있으면 되겠군.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어느새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된 요즘이다. 종이컵에 물티슈, 나무젓가락, 비닐 테이블보까지. 식사를 하면서도 찜찜함을 지울 수 없는 곳들이 너무 많아졌다. 




메뉴판 첫 페이지에 쓰여있는 식당의 운영 방향과 지침. 비건은 물론이고 마늘, 파, 부추, 달래, 양파도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무오신채 식당'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여기에 밀가루까지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니. 특별한 곳이네.




그래서 난 뭘 먹을까. 세트 요리를 맛보고 싶었지만 1인은 주문이 불가하고 다 먹기도 힘들 것 같아 단품 메뉴 중 콩까스를 골랐다. 왜 늘 '까스'라는 단어는 구미를 당기며 선택을 흐리게 만드는 걸까.




콩까스 대령이오. 갓 튀겨서 나온 신선한 한상차림에 설레었다. 밥과 샐러드, 콩까스에 밑반찬으로 김치, 피클, 미역국까지 한 끼 식사로 딱 좋은 조합이었다. 밥 먹고 콩까스 먹다 느끼하면 김치나 샐러드 먹고 미역국으로 입가심했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나만의 식사 루틴이 있는데 반찬을 나만의 순서대로 먹는 거다. 밥 한 숟가락 먹고 짭조름하고 딱딱한 반찬, 부드럽고 간이 약한 반찬, 김치 같은 새콤한 반찬, 국 그리고 다시 밥으로 이어지는 나만의 순서. 이 순서가 내겐 가장 맛있는 순서다. 꼭 이 순서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대게는 이 순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겉바속촉 그 자체였던 콩까스는 질감이 특이했다. 시중에 파는 대체육 느낌보다는 오히려 참치의 질감 같다고 해야 할까. 이질감이나 비린내 없이 맛있었는데 문제는 느끼함이었다. 초반 절반은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후반부터는 속이 느글거렸다. 참고로 내가 좀 그런 사람이다. 느끼한 요리에 유난히 약한 편이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기름의 양도 매우 적은 사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렇게 변해가는 걸 느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입맛에는 채이장이나 콩고기 버섯덮밥을 고르는 게 더 나을 것 그랬다는 아쉬움이 든다. 아니면 무알콜 맥주라도 시켰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왜 안 그랬지. 그래도 김치 리필의 도움으로 싹싹 다 먹었다. 느끼함도 싹싹 다 내 속에 채웠다.




느끼함이 바로 가시지 않아 이대로 바로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닷길을 따라 민락수변로를 걷기로 했다. 여기를 바다라고 해야 하나 강이라고 해야 하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현대화된 건물들이 즐비하고 고가도로 위로 차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부산만의 풍경. 시원한 바람맞으며 속을 가라앉혔다.




산책로를 걷다 쓰레기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들은 길 위의 것보다 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디로 흘러들어가 어떻게, 누구에게 죽음의 덫이 될까.




한 앵글에 들어온 새와 쓰레기. 씁쓸했다. 많은 동물들은 이게 쓰레기인지 자연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먹고 줍고 병들어 간다.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무심코 버린 잠깐의 편의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각성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것들이 파편화되어 물밀듯이 돌아오고 있다. 매일 하루 한 컵의 플라스틱을 먹는다 해도 당장 숨 쉴 수 있다면 그저 체념하거나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에 나를 맡긴 채 걷다 보니 어느새 기름들이 다 소화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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