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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ul 27. 2024

점심 유목민 생활 청산하고 동네 샌드위치집에서 페스코



점심이 늘 고민이었다.




그렇다. 점심은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에 잘도 돌아온다. '뭘 먹어야 하지'에 대한 고민도 반복된다. 초반엔 비건을 실천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기도 했는데 너무 지쳤다.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에게 도시락까지 싸는 건 정말 무리였다. 아이 유치원 버스 제시간에 태워 보내는 것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간단히 고구마나 감자를 가져와 오븐에 데워 먹기도 했는데 금세 배가 꺼졌다. 빵을 먹거나 샌드위치를 사 먹기도 했다. 분식집에서 야채만 넣은 김밥을 용기내서 사가지고 와서 먹은 날도 많았다. 아쉬운 대로 나쁘지 않았다. 원래 김밥을 좋아해서 매일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매일 먹으니 지겨워졌다. 식당은 더 지겨워졌다. 만만치 않은 가격과 평일에 먹기엔 과한 메뉴들인데 그마저도 가깝지 않아 불편했다.




그렇게 점심 유목민 생활을 하다 어느 날




같은 건물에 있는 샌드위치 집에서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샌드위치와 한식은 어딘가 좀 매치가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주변에 딱히 점심을 먹을 곳이 없어 간 것이 시작이었다. 식당을 운영하기엔 너무 착한 사장님은 홍보도 제대로 하지 않으시고 점심 장사를 시작하셨다. 지나가는 사람도 적은 곳에서 이게 될까.  맛있게 먹으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제로웨이스트샵 사장님 본인이나 걱정하세요.) 이 모든 것의 부조화 속에서 '집밥스러움'이라는 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을까.


아직도 사장님의 장사 수완에 대해선 의문이지만 소박한 채소 위주의 밥상이 간절했던 터라 이 단순하고 슴슴한 맛에 매료되어 결국 점심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일하다 잠깐 집에 들러 엄마 밥 먹고 다시 후다닥 나가는 그런 매력은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질리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샌드위치집 아니 밥집에 들어가면 귀엽고 정갈하게 반찬 통들이 쪼르르 나열되어 있다. 밥과 국, 반찬을 셀프로 떠먹는 뷔페식이다. 보통 밑반찬은 네다섯 가지가 기본이고 국이나 카레 등의 메인 메뉴도 준비해두신다. 그날의 메뉴와 상관없이 상추와 고추, 쌈장, 김이 항상 있다. 그러니 밥과 국, 반찬 세 칸이 있는 식판에 늘 넘치게 담을 수 있다. 이게 7천 원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베지테리언으로서 메인 메뉴에 고기가 포함되어 있는 날이다. 예를 들어 카레나 닭복음탕이 나왔던 날엔 채소 반찬만 먹어야 했다. 그래도 손해본다거나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이유는 채소 반찬이 늘 풍족하게 차려져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안 먹는 만큼 다른 채소들로 7천 원어치는 먹고도 남을 만큼 양껏 배를 채운다. 집에서 먹는 채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게 되는 것 같다. 오이냉국이나 묵사발 같은 메뉴를 다른 사람들은 반찬처럼 곁들인다면 난 이걸 메인 메뉴처럼 많이 먹는다.


비건식은 좀 어렵고 주메뉴를 채소로 하는 페스코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김치엔 젓갈이 들어가고 꽈리고추절임엔 건새우가 들어가니까. 그것마저 먹지 않으면 선택할 수 있는게 너무 없어 타협하기로 했다. 물론 김치에 들어간 젓갈의 강한 맛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집에서 먹는 비건 김치에 익숙해서 그런지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맛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적인 채식이라고 생각한다. 오이냉국이나 물김치는 간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msg 맛, 마라 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조금 허전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간도 세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이런 맛이 더 건강하고 좋은 걸. 배가 불러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포만감이라 다 먹고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사장님의 한결같은 멘트도 좋고.





우리만의 구내식당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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