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도쿄 여행의 넷째 날 마지막 일정은 모리타워 전망대였다. 사실 난 전망대의 욕심은 별로 없었다. 전망대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고소 공포증이 생겨 흔들 다리 같은 곳은 정말이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인 사람이다. 도쿄는 복잡하고 화려한 만큼 전망대가 정말 많았다. 나 혼자 여행을 한다거나 아이 없이 여행을 갔다면 전망대는 일정에 넣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쯤은 전망대 위에 올라가 우리가 어떤 도시를 여행했는지 아이의 기억 속에 남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이 희미하게나마 기억나기 시작하는 시기가 네다섯 살쯤인 것 같다. 네 살 때 거대한 곰이 너무 무서워 엄마 품에 파고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나중에 커서 사진으로 보니 그 곰은 인형탈을 쓴 사람이었다. 여섯 살은 꽤나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적 기억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남기면 좋으니까. 어떤 나라에서 어떤 걸 보는지도 모르고 부모를 따라가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이렇게 화려한 도시에 우리 가족이 왔었구나.' 라는 이미지 정도는 남겨주고 싶었다.
전망대가 너무 많았지만 대표적인 도쿄 타워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선배에게 추천을 받아 모리타워 전망대에 가게 되었다. 시간대별로 티켓을 끊어 올라갈 수 있어서 한국에서 미리 저녁 6시 타임으로 예약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52층에 도착했다. 저녁 6시는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비가 와서 날은 흐렸지만 구름은 끼지 않아 도쿄 시내를 훤히 바라다볼 수 있었다. 도쿄타워가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인데 도쿄타워에 올라가면 도쿄타워를 볼 수 없으니 모리타워에서 도쿄타워를 바라보는게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망대 안을 삥 돌며 여러 각도에서 도쿄의 풍경을 눈과 스마트폰에 담았다. 도쿄는 정말 빽빽한 도시다. 건물도 작고 건물과 건물의 틈도 작고 길도 좁다. 숙소도 좁다. 우리나라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선 곳이 많다면 일본은 수많은 건물들이 제각각으로 촘촘히 자리잡고 있는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또 묘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
6시를 예약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도쿄 시내의 모습을 낮부터 해 질 녘, 밤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도쿄 시내는 밤이 되니 더욱 화려해졌다.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남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꾸리는 현재의 삶들, 앞으로 아이가 자라며 그려내게 될 삶과 점점 나이가 드시는 부모님의 미래까지도. 언제나 우리의 결론은 최선을 다하자는 쪽이다. 사실 이 여행은 남편 직장에서 보내줘서 포상 휴가로 온 것이다. 스트레스도 많고 책임감도 큰데 그걸 열심히 해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 남편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우리 가족이 안정적으로 여유있게 잘 사는 것.
내 일에 관한 걱정들도 털어놓았다.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해나간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음을 느끼며 조금은 지쳐있던 타이밍이었다. 여행 덕분에 잠시 환기가 되었다. 걱정만 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묵묵하고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고민은 많지만 언제나 나의 결론은 같다. 뚜벅뚜벅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아이가 크면 이 여행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함께 했던 감정이 얼마나 남아있을진 모르지만 아이에게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날은 집에 돌아가는 날이라 사실상 여행의 마지막 스케줄이었는데 전망대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념도 되고 좋았다.
도쿄타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