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식스에 꼭 가려 했던 이유
처음부터 긴자에 숙소를 잡으려고 했던 건 아니다. 도쿄의 호텔은 대체로 비싸고 좁은 관계로 적당한 가격 내에서 교통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선택지가 좁혀졌다. 그렇게 긴자에 숙소를 잡게 되었고 자연스레 쇼핑도 이곳에서 하게 되었다. 백화점과 상점이 많은 곳이라 특별히 어디 한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걷다 보면 주요한 브랜드와 백화점을 모두 방문할 수 있다는 게 번화가의 장점.
그중에서도 특히 긴자 식스를 꼭 가려고 했던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서점인 츠타야에 가보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지하에 유기농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츠타야 서점(TSUTAYA BOOKS)
분야별로 책을 분류하던 기존 방식의 서점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경험을 제공하는 일본의 가장 유명한 대형서점인 츠타야.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서점이나 부티크 서점들이 많아지면서 츠타야 서점을 차용하는 곳들이 정말 많았었다. 가장 성공적으로 잘 된 하나의 롤모델 브랜드처럼 츠타야의 전략과 기획, 차별점을 다루는 책들도 참 많았고.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책으로만 보던 츠타야를 직접 보러 왔다는 것 자체로 감격스러웠다.
츠타야 서점 중 아주 큰 지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나보다 먼저 비건 코너를 발견한 남편이 보라고 알려줬다. 서점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비건 요리책을 하나 사볼까 잠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집에 있는 요리책도 들춰보지 않는 관계로 사지 않기로 했다. 내가 비건 요리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수집 욕구가 일어났을 것 같다. 특히 ‘젠 비건 푸드’라는 제목이 흥미로웠다. 젠(zen)은 일본의 불교를 일컫는 단어로 우리나라의 사찰음식과 뭐가 비슷하고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비건 라이프라는 제목의 책도 흥미로워 보이는데 일본어를 몰라서 아쉬울 뿐.
결국 아이를 위한 그림책 한 권과 종이접기 책 한 권을 사서 나왔다.
유기농 비건 마트 bio c’ bon
지하로 내려와 비오쎄봉을 찾았다. 화려한 매장들 사이에서 비교적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유기농 마트 비오쎄봉. 내게는 좋아하는 브랜드 팝업샵 가는 거 마냥 설레었다.
비오쎄봉(bio c’ bon)은 프랑스에서 운영하는 마트로 까르푸의 자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어라서 ‘비오 쎄봉’이라고 읽는 듯. 직역하면 ‘유기농은 맛있다.’라는 뜻.
네, 유기농은 맛있어요.
신선칸, 가공식품 코너, 빵 코너 등 언뜻보면 평범한 마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강한 재료로 만든 유기농, 비건 제품들이 많은 프리미엄 마트다. 작지만 알차게 꽉 들어차있어 건강식. 환경, 다이어트, 채식에 관심이 있다면 무조건 가봐야할 곳이다.
이곳에서 ‘vegan’과 ‘organic’이라는 단어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건만 파는 비건 마트는 아니었지만 그냥 그렇게 소개해도 될 만큼 비건의 종류가 많았다.
귀리유, 아몬드유, 두유의 종류가 우리나라 대형마트보다 많았다. 아는 브랜드도 있고 모르는 브랜드도 있는데 딱 봐도 귀리유 중에서도 성분이 좋은 브랜드들이 엄선되어 있었다. 마이너피겨스, 이솔라비오, 루드헬스 모두 유기농 쓰고 설탕이나 액상과당 넣지 않은 귀리유들이다.
무설탕 잼이 있으면 언제나 하나씩 사는 편이다. 설탕 있는 잼을 사지 않아고 과일이 원래 달아서 충분히 맛있다. 아이랑 먹기 위해 서양배 잼을 골랐다.
오가닉 꿀도 있네. 집에서 요리할 때 설탕을 쓰지 않고 조청을 쓰는데 가끔 너무 단 맛이 안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쓰기 위해 꿀을 하나씩 쟁여두는 편이다. 꿀도 하나 구매.
토마토 올리브 비건 스프레드.
어떻게 안 사는데.
비건 타르타르 소스라니.
이곳이 천국인가.
미국 유기농 마크와 일본 유기농 마크를 모두 달고 있는 소스 제품들.
마크로비오틱 스타일의 밀키트도 있다니 너무 좋잖아.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이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식생활 철학이자 식단 방식으로 그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왔지만 체계화하고 현대화한 건 일본이다. 20세기 초 조지 오사와(George Ohsawa)가 제안한 것으로 일본 전통 식문화(현미, 된장, 해조류, 채소 위주 식단)를 기반으로 건강식을 제안했다.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으로 여겨지고 있고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알려져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하는 분들이나 그분들이 쓴 책도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자, 껌, 영양제까지 종류가 너무 많아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다. 다 사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골라야만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무와 종이패키지의 친환경 뷰티 브랜드도 인상적이었다. ‘루아모(Luamo)’라는 브랜드인데 일본 브랜드로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이며, 색소나 향료, 방부제 등 모든 성분을 자연 유래 원료로만 사용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기농 화장품 인증인 Nature 인증을 받았다. 종이 패키지를 사용한 립스틱을 비롯해 섀도 팔레트는 천연 원목을 사용했고 자석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720엔짜리 대나무 칫솔도 발견했다. 동그랗고 끝에 색이 있는 몸통이 예쁘긴 했는데 칫솔 7200원이면 누가 사는 사람이 있는지 그게 궁금하다.
(우리 매장에서는 3,400원짜리 닥터노아 대나무칫솔도 가격 부담 때문에 안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 칫솔은 절대 팔리지 않을 것 같은데.. 물가가 높은 일본이고 명품 백화점 지하니까 다르긴 하려나.)
비건 라면까지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 중 짐이 되지 않는 것들로 알차게 쇼핑했다. 나에겐 돈키호테보다 더 좋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