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적 Apr 05. 2019

쓰레기 일기



한 달여간 쓰레기 일기를 썼다.


수첩에 매일 산 것과 버린 것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무심코 버리던 쓰레기들에 대해 스스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현하겠다는 거창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시선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변화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 뿐 아니라, 감정과 습관 같은 추상적인 '버림'을 경험할 수 있기에.










일상의 민낯



나의 sns에는 잘 포장된 일상의 이미지가 업데이트된다. 그것은 나의 감성일 수도 있고 허세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미화된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이미지가 중심인 플랫폼에서 '솔직함'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배출해낸 쓰레기는 솔직함을 넘어서 일상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카드 명세서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기 싫은 부분과 이미 저질러버린 일들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돈을 쓰고 먹는 것들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쓰레기 일기 속에는 그 모든 간극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소 채식과 건강 위주의 식사를 외치는 내가 버린 쓰레기들 중 과자 봉지와 라면 봉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너무나도 높았다. 나는 과자 중독이었구나. 그렇게 먹어대면서도 몰랐던 사실을 기록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샀던 음료수 캔과 페트병은 또 어찌나 많은지. 쓰레기의 양보다 내 일상이 어떻게 채워져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이 더 충격적이었다.










포장의 쓸모



포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택배가 집에 도착할 때,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할 때 등등 내가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쓰레기가 배출되었고, 그 쓰레기들의 대부분은 포장이었다. 무언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포장들은 비닐이거나 플라스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주 그럴싸하게 혹은 과하고 화려하게 물건을 감싸고 있었다. 온갖 아이디어들로 디자인된 포장들은 물건을 사고 싶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집에 오는 순간 버려진다.


이 속성이 너무나도 모순된다고 느껴졌다. 공을 들이는 겉모습에 비해 너무 짧은 쓸모를 지니는 것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가 더 작은 단위로 나뉠수록 포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요즘의 포장들은 너무나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버려질 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것일까. 잠깐의 쓰임을 위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 나면, 어딘가에 쌓여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주변을 병들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순환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버려지는 쓰레기만큼이나 일상 안에서 무쓸모의 무언가가 과도하게 쌓여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비와 만족 사이



돈이 부족해서 문제일 뿐, 돈을 쓰는 행위는 즐거운 것이었다. 좋은 공간에 가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은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은 크나큰 삶의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모두가 그렇게 돈을 벌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쓰레기 일기를 쓰며 모든 것을 쓰레기 혹은 포장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무언가를 살 때도 먹을 때도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라면 하나를 끓여먹기 위해 라면 봉지라는 쓰레기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걸 인증해서 찍고 일기에 기록할 생각을 하니, 차라리 먹지 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택배 상자 안에 에어캡과 또 그 안에 상자, 설명서, 쿠폰 등등 모든 것이 너무 과하고 불필요하게 들어있다고 느껴졌다. 리사이클링 제품을 구매했을 때나 봉투에 담지 않고 가방에 물건을 넣어 왔을 때 차라리 맘이 편했다.


소비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쇼핑백 하나쯤 들고 들어올 때의 기분 좋음이 예전만 못한 듯했다. 꼭 가지고 싶은 물건이 아니어도 그저 '산다'는 행위 자체에 만족했던 기억도 있는 것 같은데, 그땐 왜 그랬을까.










쓰레기 배출을 '0'의 상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약간의 신경을 쓰는 것 만으로 조금 덜 배출하는 것은 습관을 들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쓰레기 일기'는 나의 소비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뿐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대해 확인하고 되돌아보는 작업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인지해보면서 방향을 재설정하는데 이만한 도구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