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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Sep 20. 2019

냄새




나의 정신은 예민한 편이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비위는 약하지만 냄새나 맛을 느끼는 감각은 오히려 약간 둔한편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였더라. 친구네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던 날이었다. 오래된 구멍가게에서 봉지라면을 사서 끓였는데, 친구 한 명이 국물을 맛 보더니 어딘가 모르게 맛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친구도 라면 맛이 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라면이 오래되었다고 상할 수 있는 식품도 아니고 항상 사먹는 브랜드 제품이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이상하다는 것이었을까. 게다가, 나는 아무리 맛을 보아도 어디가 이상한지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이 미칠 노릇이었다. 친구 둘은 라면을 반도 안 먹은 채 수저를 놓아버렸다.


나도 애써 더 먹다가 그만 두었다. 뭔가 그 상황이 입맛을 뚝 떨어지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 부터였을까. 누군가 어느 맛집이 맛있냐고 물어보는 지극히 주관적인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맛이 있어도 없어도 누군가에게 이것을 확신해서 말하는데 괜히 주저하게 된다. 둔한 미각의 소유자여..


냄새는 그래도 미각보다는 예민한 편이지만, 그래봤자다. 비흡연인으로서 담배 냄새만을 귀신같이 알아챌 뿐, 주변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진한 향수에 눈을 찌푸리는 일도 적은 편이다.










이웃집 냄새



유난히 냄새가 신경쓰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 부터다. 끼니때 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의 출처는 아랫집인지 윗집인지 옆집인지 알길이 없지만,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우리집 창문을 통해 솔솔 들어온다. 그리고 그 냄새는 꽤나 규칙적이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놨다가 음식 냄새에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을 알아챈 적도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끼니를 챙기는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곤란한 것은 그 냄새가 그리 유쾌하지 않음에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층간소음도 아니고 자기 집에서 자기 밥 챙겨먹는 것에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냄새는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오기도 하고 작은방 창을 통해 들어오기도 하는데, 일을 하다 그 냄새를 맡게 되면 나는 하는 수 없이 창문을 닫아버린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하루종일 간지러운데 도무지 잡히지 않는 모기처럼 마음이 찜찜하다.


누군지 몰라도 한식을 매우 사랑하고 외식을 자주 하지 않고 끼니의 제 때를 매우 중시한다는 것 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하루 세끼를 집에서 제 때 챙겨먹는 다는 것은 사실 매우 극히 드문일이다. 집에서 일하는 나도 세끼를 다 챙겨먹지 않는다.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다. 두 끼만 제대로 챙겨먹어도 그 날은 매우 잘 챙겨먹은 날이 된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생각났다. 매우 정확한 배꼽시계를 가지신 부모님은 열두시에 점심을 오후 여섯시에서 여섯시 반 사이에 칼 같이 저녁을 드신다. 엄마는 가끔 전화해 '점심 먹었어?'라고 물어보는 데, 나는 항상 그 질문이 애매하게 느껴진다. 아침겸 점심이나 점심겸 저녁은 자주 먹어도 '점심'을 따로 챙겨먹지 않는 습관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 까지만 해도 자의반타의반으로 끼니 때를 열심히 지키며 살았던 것 같다. 주말 아침 아무리 졸려도 아침 8시는 식사 시간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을 먹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어쩜 그렇게 몇 십년의 루틴을 잘도 지키며 살아가시는 걸까.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내 멋대로의 결론으로 나이 있는 노부부가 이웃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말이다.


오늘도 코를 찌르는 유쾌하지 않은 찌개 냄새가 우리집을 타고 올라온다. 


밥 먹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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