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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Sep 14. 2019

저마다의 추석




유난히 짧았던 추석 연휴였다.


SNS에는 각자가 추석을 보내는 풍경들이 무수하게 쏟아졌다. 갈수록 명절의 의미와 보내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각자가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조금씩 달라지는 듯하다. 텅 비었을 줄 알았던 서울은 생각보다 차가 막혔고,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은 혼자 밥을 먹는 아저씨와 온 가족이 다 모여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공존했다. 누군가는 지겹도록 전을 부쳐댔고 또 누군가는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어차피 각자가 사는 모습이 다 다른 게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이제는 사람마다 명절 일상의 모습도 너무나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는 게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느껴졌다. 


추석은 원래 농경사회에서 수확을 기념하고 즐기며 감사함의 제를 올리기 위해 시작된 것인데, 더 이상 농경사회도 아닌 우리는 왜 아직도 그것을 기념하고 있는 걸까. 나도 매해 추석이면 성묘를 가는데, 그저 일 년에 한 번 조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함이지 명절에 대한 큰 의미부여는 없다. 이런 핑계로 가족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차례의 절차나 준비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기름 냄새에 절여질 만큼 전을 부쳤다는 누군가의 한탄 섞인 후기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답답해져 오는 것만 같다. 뭐 어쩌면, 제사를 드리지 않는 집안의 문화와 종교에 더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족애가 없다거나 조상을 잊은 것은 아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더 마음을 담아 시간을 보낸다. 아침 일찍 산소에 도착하면, 가족들은 산소 앞에서 간단히 기도를 드린다. 열일곱, 열여덟 때까지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던 나는 매번 그 앞에 서면 어린 시절의 장면들 중 하나 둘이 떠올려진다. 마냥 어린아이였던 내가 아이를 품은 임산부가 되어 산소 앞에 서게 될 날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상상이나 해보셨을까. 


엄마는 산소에 때마다 도시락을 싸온다. 기도를 마친 가족들은 벤치에 앉아 간단히 김밥과 송편, 빈대떡을 나눠 먹는다. 나는 은근히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되는데, 배가 고프기 때문이기도 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있으면 꼭 피크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분이 들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기 날까지는 여정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는데, 막상 다녀오면 마음은 풍족해진다.


시댁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성묘는 추석이 아닌 기일에 가기 때문에 추석 다음날인 시어머니의 생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목적이 더 크다. 바쁜 시어머니는 집밥보다는 외식을 더 좋아하시는 편이고, 우리가 먼저 외식을 제안하지 않았던 단 한 번의 명절에만 냉동 동그랑땡을 구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얼떨결에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간편한 명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명절에 대한 마음의 부담은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여자만 음식을 한다거나 고단한 차례상을 지내는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면, 나의 멘탈은 지금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추석이 되기 며칠 전 전화로 나에게 본인이 송편을 사놨으니 사지 말라고 말했다. 추석 때마다 엄마 덕에 송편을 먹기는 했지만, 추석엔 꼭 송편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내게서 사라진 지 오래인지라 그 말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남편이 떡을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 떡을 잘 안 사 먹는 우리인지라, 내가 떡을 살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더 의아했다. 엄마와 내기억하는 명절의 모습이 서로 다른 탓이겠지.


그래도 보랏빛 가득 머금은 그 송편은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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