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인 Aug 27. 2023

모양이라도 만들어야지

안타까운 비뇨기과 환자의 면도 이야기

[주의] 비뇨기과 인턴의 일화를 다룬 글로 어쩔 수 없이 적나라한 표현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거부감 있으신 분들은 읽지 말아주세요.




인턴 때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직접 경험했던 것은 아니고 같은 인턴 동기였던 은지(가명)의 이야기이다. 은지는 체구가 작은 여자였는데 일은 야무지게 잘 하던 친구다.


은지는 그때 비뇨기과 인턴이었다.


비뇨기과 인턴의 주 업무 중 하나는 다음 날 수술 예정인 환자들의 면도다. 당연히 여자라고 업무가 달라지지 않는다. 보통 면도부위는 크게 두 부위로 나뉘어졌다. 콩팥 또는 전립선 수술은 복부로 들어가기 때문에 배에 있는 털을 면도하면 되고 음낭, 고환, 또는 요도경 수술은 음모를 제거해야 했다. 어떤 곳은 환자에게 알아서 하라고 면도크림을 주는데 여기는 인턴이 직접(...) 찾아가서 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인다.


저녁이 되면 비뇨기과 인턴은 익일 수술 스케줄표를 확인하고 환자들을 찾아간다. 은지는 스케줄표를 봤다.


'Nephrectomy(신장절제술) 2명... TURB(요도경수술) 1명... 응?'


은지는 스케줄표 종이를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Penectomy...? 설마 Pen...??'


Penectomy는 음경절제술로 말 그래도 음경을 자르는 수술이다. 부분적 절제술도 있고 완전 절제술도 있는데 평소 자주 보기 힘든 수술이라 처음 보는 단어에 은지는 어리둥절했다. 영문 단어로 수술부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어서 어쨌거나 이 환자는 음모를 면도해주면 되리라 생각했다.


페넥토미... 음경절제술 예정인 환자의 병실에 도착했다. 병실은 다인실이었고 환자의 자리는 3번 중앙자리였다. 조심히 환자분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커튼을 걷었다.


"환자분, 저는 비뇨기과 인턴인데요. 내일 수술 예정이시죠?"


은지는 말을 하면서 환자를 보았다. 반쯤 누워있던 환자는 70대정도 되어보이는 할어버지였다. 어딘가 심기가 매우 불편해보이셨다. 할아버지는 은지를 째려보았다.


"뭐? 또 뭔데??"


"수술부위 면도하러 왔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이 커지더니 몸을 일으켜 은지에게 가까이 앉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쏘아부었다.


"뭐!! 남의 털을 왜 깎아!"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 은지는 당황하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네? 아니... 그게.. 그... 그 털이 있으면 감염의 위험도 오르고... 그... 수술하셔야 하니까..."



은지는 횡성수설하면서 설명하려 했다. 본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을 설명하자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의 기분은 더 안 좋아졌다. 불신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셨다.


"너! 내가 왜 수술하는지는 알아?"


은지는 인턴으로 면도만 하면 되는 입장이라 수술할 환자의 기록을 일일히 까보지는 않았다. 모른다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자 환자는 갑자기 은지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 은지는 화들짝 놀랐다. 바지 속에 환자의 음경은 반쯤 검게 변하였다. Necrosis 즉, 괴사가 된 것이다.


"그 의사놈이 내 발기부전 치료해준다고 주사넣었다가 이렇게 된거잖아!! 내일 난 고자가 되는거라고!! 그런데 털을 왜 깎아!!!!!"


할아버지는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소리질렀다. 보호자라도 있었으면 대화가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 환자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명해도 면도하는 것에 납득을 하지 않았다. 체구도 작은 은지가 환자와의 기싸움에 밀리고 있는 와중 누군가가 또 환자를 찾아왔다.


"ㅇㅇㅇ 환자분 맞으시죠? ..응? 어라, 은지 아니니?"


은지가 뒤를 돌아보니 민우(가명)오빠였다. 민우오빠는 성형외과 전공의 1년차 선배로서 키가 매우 컸다. 은지는 구세주가 나타난듯 민우오빠를 바라보았다. 민우오빠는 은지 손에 들린 면도기를 보며 왜 여기 있는지 이제 알겠다는 듯이 "아~"를 내뱉었다. 민우오빠는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고 할아버지는 이번엔 또 웬 녀석이냐 다시 째려보기 시작했다.


"환자분 저는 성형외과 전공의구요, 내일 비뇨기과와 협진 수술 예정이라 동의서 받으러 왔습니다." 민우오빠가 이어나갔다. "비뇨기과에서 절제술을 시행하면 저희는 허벅지 쪽에 있는 피부와 지방조직 피판(flap)을 가지고 모양을 만들거에요."


"무슨 모양을 만들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동의 못해!! 내가 왜이렇게 됐는지 알아?"


민우오빠도 환자가 이렇게까지 반응할거라고 예상하지는 못 한 것 같다. 왜 수술하는지는 대충 파악하고 와서 많이 irritable(예민)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반응이 너무 과격했다.


"아니, 그건 아는데요..." 민우오빠가 말했다. "뭐지? 이거 외래에서 다 얘기된거 아닙니까?"


보통 이정도는 외래에서 교수님들이 어느정도 설명을 다 하신다. 주치의는 수술에 대한 상세한 추가설명을 하고 동의서 서명을 받을 뿐이었다.


"그런 얘기 없었어!! 모양이라니 이 무슨--"


"그러니까 이 수술은... 비뇨기과에서 절제를 하고 나면 없어진 모양을 재건해줘야 하니ㄲ"


민우오빠가 설득하려고 시도했지만 할아버지는 듣지 않고 소리질렀다.


"모양 필요없어!!!! 지금 고자가 될 판에 모양이 뭐가 중요해!!!!!!"


"그럼 모양이라도 만들어야지!!!!" 


민우오빠가 갑자기 함께 언성을 높였다. 매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성형외과 전공의 1년차가 같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은지는 환자와 민우오빠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둘을 바라보았다. 정신줄이라 불리는 것이 저 천장 높이 멀리 날라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인가... 무엇을 듣고 있는 것인가...'


할아버지는 기죽지 않고 오히려 더 분노했다.


"난 고자라고!! 내가 고자가 될거라고!!! 모양이 뭐가 중요해----!!!"


야인시대 심영이 의사양반의 소견을 듣고 괴로워하는 장면


커튼이 쳐져있어서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다인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내용을 다 듣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은지는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민망해졌다. 민우오빠는 지쳣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이 환자는 자극해서 될 것이 아니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모양은 안 만들겠다는거죠?"


민우오빠는 포기하기로 한 것 같다. 뭐, 수술 하나 취소된다는 것은 전공의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환자는 그렇다는 듯이 단호하게 계속 째려보았다.


"그럼 모양은 됐고 비뇨기과 수술은 해야 하니 털이라도 깎아요."라고 하며 민우오빠가 갑자기 할아버지를 눕혔다. 모든 것에 너무 놀라 가만히 있던 은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이 때는 환자가 반항하지 않았다.


그날 은지는 당직실로 오며 이 일화를 당직실 안에 있던 인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다. 내가 인턴 때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였다.


그 불쌍한 할아버지는 결국 수술을 잘 받으셨을까 궁금해진다.

유머로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만 환자 본인에게는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안타깝지만 모든 시술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잘 하는 의사는 그 부작용의 비율이 적다.


의사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 10화 [수술일지] 응급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