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공감의 차원이 다르다.
내과 학생 실습 때 재미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자 병원 식단 체험하기였다. 우리는 두 가지 식단을 체험했다 - 당뇨환자 식단과 맛없기로 유명한 신부전 환자의 식단이었다. 당뇨 식이는 나름 비빔밥이었고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그러나 신부전 식이는 정말...... 기억나는 것은 무랑 두부 그리고 밥이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사실 맛을 느끼는 것은 곧 염도인데 초저염식이다 보니 식감만 느껴지고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으... 맛없... 근데요 선생님!"
함께 식사하고 있던 내과 치프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다.
"여기 환자 식이 오더창을 보면 소금 0g, 5g, 10g 선택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거는 0g 식단인가요? 5g이나 10g 식사는 좀 더 맛있나요?"
"아." 치프 선생님께서 입을 여셨다.
"소금을 선택하면 그냥 작은 용기에 그 중량의 소금이 따로 나오고 식사는 똑같습니다."
아. 자동이 아닌 수동 염도 조절 시스템이었구나.
이 단 하나의 경험을 계기로 환자들에게 식단을 처방할 때 먹을 만 한지, 먹는 것조차도 괴로워하지 않을지 매우 신경을 쓰게 됐다.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은 전공의들 중에서는 환자에게 처방하는 식단에 무슨 메뉴가 나오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의사들은 가끔 hypochondriasis라는 병에 걸린다. 한글로 하면 건강염려증이라고 한다.
위암환자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전임의 2년차 시절 속이 종종 아프고 배가 더부룩하니 온갖 상상이 들었다. 젊은 위암환자들도 많던데... 혹시 내 뱃속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뭔가 이상이 있어서 더 퍼지기 전에 한 번 체크해보고 싶었다. 전임의 1년차 후배였던 희수를 꼬셨다.
"희수야 우리 ㅇㅇㅇ교수님 위내시경 할 때 우리도 해달라고 해볼까?"
나처럼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던 희수는 단번에 OK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교수님의 내시경 세션에 방문하여 오전 환자들 검진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당시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내시경을 이미 해봤다. 위내시경은 목구멍으로 두꺼운 내시경을 넣어야 하는 검사로 대부분 꺽꺽대며 고통스러워한다. 그 고통을 모르기 위해 (정확히는 잊기 위해) 대부분 수면내시경을 선택한다. 나랑 희수는 수면으로 하지 않고 비수면으로 하기로 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기 때문이었다.
1. 수면으로 하면 마취에서 깨는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정규 업무에 바로 복귀할 수 있으려면 비수면으로 해야 했다.
2. 여기는 내 직장인데 그리고 교수님은 내 상사인데 수면으로 했다간 내가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저지를지 모른다. 욕을 하거나 손으로 산을 표현하는 수화를 하면 어떡하지
비수면으로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기 때문에 용기 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마지막 환자 검진을 하시고 이제 한 명씩 누워보라며 손짓을 하셨다. 내가 선배로서 희수보다 먼저 하기로 했다.
간호사님이 뭔가 짜 먹으라고 주셨다. 기포제라고 한다. 맛은 더럽게 없었다.
누워서 입을 벌렸더니 간호사님이 국소마취 스프레이를 뿌린 후 내시경용 개구기 또는 마우스피스를 넣어주셨다. 마우스피스는 입을 계속 열어서 내시경을 깨물지 않도록 막음과 동시에 내시경 들어갈 때 혀가 방해하지 않도록 혀를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호기심 섞인 불안감으로 인해 맥박이 빨리 뛰었다.
많이 아플까? 많이 괴로울까? 내 위 안은 깨끗할까?
"자 시작합니다~"라고 하시며 교수님이 내시경을 드셨다.
그리고 이후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굵은 내시경이 내 목을 진입한 순간 나는 괴로움에 꺽꺽댔다. 원래 1초도 안 걸려서 목을 통과하는 교수님이시지만 내가 긴장을 많이 해서 내시경 진입이 어려웠다. 내시경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나도 나름 내시경이 쉽게 식도로 통과할 수 있도록 내시경을 삼키려고 노력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교수님은 성공하셨고 내시경은 내 식도로 들어왔다.
목구멍을 통과하고 식도로 들어왔을 때 환자들에게 나는 "자 가장 어려운 부위 지났어요~ 이제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것만 집중하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눈물이 이미 벌써 고여있었다. 괴로워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희수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눈을 위로 올렸더니 내시경 화면이 보였다. 내 뱃속이다! 근데 뭐 특별히 없어 보였다. 대충 봤으니 교수님께서 적당히 하고 빼실 줄 알았다.
"자~ 여기가 유문(pylorus)야. 이제 십이지장이다."
교수님은 프로토콜대로 꼼꼼하게... 아니, 심지어 남들보다 더욱 꼼꼼하게 봐주셨다. 이게 좋으면 좋은 건데 비수면이라서 지옥을 견디는 시간은 늘어나고 있었다.
"읍--읍ㅇ--"
교수님께 빨리 빼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코로 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것은 구역감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꾸 입으로 들이마시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구역감이 심해진다. 그리고 트림을 참아야 위 안에 가스가 차면서 내시경으로 잘 볼 수 있는데 트림을 참기가 힘들다. 결국 트림하게 되면 위가 납작해져 아무것도 안 보여서 다시 가스를 넣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 트림 좀 참아봐~"
교수님께서 말하시자 나는 희수가 잡고 있던 손을 빼고 교수님에게 훠이훠이 내시경을 이제 그만 빼달라고 손짓을 했다. 대충 봐도 건강한 거 같았다 나의 위는.
"아 우리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도 해볼까?"
교수님은 웃으면서 희수를 쳐다봤다. 사악한 교수님... 나는 포기했다는 듯이 손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교수님께서 조직검사를 마치고 가스를 뺀 후 내시경을 빼셨다. 땀과 눈물범벅이 된 나는 스스로 마우스피스를 뽑으며 교수님께 말했다.
"아... 다음에는 선생님께 욕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면으로 할래요."
이제 희수 차례였다.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렸던 희수는 나보다 훨씬 잘 참았고 수월하게 내시경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많이 괴로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위는 모두 건강했다.
이 일 이후로 내가 위내시경을 할 때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다. 최대한 부드럽게 식도로 진입하기, 고통스러워하는 환자 말로 계속 격려해 주기, 트림 참지 못 해도 뭐라 하지 않기... 등등
역시 직접 경험해 봐야 진정한 역지사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