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사회공헌가? 우물 안 권위주의자?
의과대학을 다니고 실습을 했을 때 대부분 나의 동기들은 교수가 되기를 꿈꿨다. 학생 때 보이는 대학병원 교수는 위엄 있고 똑똑하고 카리스마가 있다.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병원 스텝(교수, 교원 등)이 되기를 꿈꾸다가 인턴을 하거나 군대를 다녀오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된다. 요즘 똑똑한 의대생들은 학생 때부터 교수는 무슨 바로 돈 벌러 나갈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가 학생 때는 이 대학병원이라는 탑을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학생실습을 돌면 정말 다양한 소문들이 들려온다. A 선생님의 레지던트시절에 유명한 교수님이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자기 딸 한 번 소개받을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당시에 의대 CC 커플로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던 A 선생님은 바로 그 교수님의 딸을 만나겠다고 했고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A 선생님은 곧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교수님은 따님이 셋인데 사위 모두가 교수가 되어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또 어느 교수님은 누구 사위고 어떤 교수님도 누구 사위고...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 성골/진골과 같은 표현도 있었다. 성골은 교수의 자녀고 진골은 교수의 사위다 (솔직히 교수 며느리인 교수는 보지 못했다). 정말 가족 같은 곳이 아니라 가족이다. 얼마나 이런 일들이 예전에 많았길래 최근에는 원내 가계도 확장 방지 움직임이 있어 반대로 역차별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이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저런 얘기들을 들으면 생기는 궁금증이 있다. 대학병원 교수가 뭐가 그렇게 좋길래 이런 얘기들이 들리고 다들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 되고 싶어 했던 걸까?
현 대학병원 교수님들을 보면서 교수로 발령이 되는 방법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정치력 (배경)
2. 실력 (실적)
3. 타이밍 (운빨)
1. 정치력
사람들과 잘 지내고 인간관계 좋아야 조직 내 교원으로 뽑아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관계"는 윗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아랫사람이나 간호사, 동료들한테 백날 잘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위험한 소신발언을 하자면 인성도 별로고 실력도 없는데 아부력과 정치력으로 교수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고 노력이라면 노력이라고 한다. 윗사람의 뜻을 위해 자기 소신을 굽히는 것은 나름 대단한 것 같다. 그래도 그 결과가 약자의 고통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쉽지 않다... 어쨌든 정치력에 노력을 몰빵 하는 것은 도박과도 같아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면 남는 것이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정치력에 보탬이 되는 것이 뒷배경이다. 어떤 교수의 자녀 거나 부모님이 대단한 분이시거나... 돈이 많아 부모님 인맥으로 논문 실적을 일찍 챙기거나... 요즘에는 드물지만 선배들 얘기 들어보면 배경만으로 교수 발령을 받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2. 실력
실력이라고 쓰고 괄호로 실적이라고 쓴다.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의 경우 수술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당연히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 있을 것이란 것은 착각이다. 수술은 너무 못하지만 않으면 실력에 점수를 매길 객관적인 방법이 따로 없다. 다만 논문이나 연구는 실적이 된다. 수술실력보다 논문업적을 더 많이 보는 것이 대학병원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게 대학병원은 현재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치료와 의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에 힘을 써야 하는 책임이 있어서 그렇단다. 환자 진료는 거의 안 하고 연구만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가끔 교수가 된다.
꼭 연구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 실적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비싼 수술을 많이 해서 병원에 돈을 많이 벌여다 준다거나 환자 홍보를 잘 해서 자신의 입지를 키운다거나. 또는 1번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서 큰 연구비나 병원에서의 큰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
3. 타이밍
1번 2번이 없어도 타이밍이 좋으면 교수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운이 좋다. 그 타이밍을 위해 펠로우를 5년 하는 사람들도 봤다.
위 특징들 중 3번은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패스한다고 하면 이제 1번 또는 2번을 키워야 한다. 예전에 내가 레지던트시절 한 선생님께서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스텝 발령은 타이밍이야. 운도 따라야지.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키워라. 너를 뽑지 않으면 바보가 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길러야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조언인지 저주인지 실력 키워서 질 좋은 노예가 되라는 것인지...
그래도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실력과 실적은 평생 남는다. 실력 있는 자는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당당하게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 사내 정치 그리고 병원 업무와 상관없는 잡일들에 지친 나는 이제 이렇게 되물어보고 싶다.
꼭 대학병원 교수가 되어야 하나요?
다음 고찰에는 대학병원 교수의 역할과 하는 일
그리고 왜 점점 예전과 달리 대학병원 교수가 되기를 기피하는지에 대해 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