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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Oct 21. 2023

대학병원 교수에 대한 고찰 2

젊은 세대들에겐 예전 같지 않은 대학병원 교수 자리의 매력

대학병원 교수 또는 스텝(staff)의 역할은 크게 3가지이다:


진료

연구

교육


외과 교수는 진료 업무가 또 수술, 외래, 입원환자 관리로 나누어져 있다. 간혹 시술, 초음파검사 또는 내시경과 같은 추가 업무를 시행할 때도 있다. 응급환자 진료 업무도 거기에 추가된다.


한 교수님의 예를 들자면 월요일 종일, 화요일 오후, 목요일 종일 수술을 하신다. 화요일 오전, 수요일 종일 외래를 보신다. 그리고 금요일 오전은 내시경검사를 하시고 금요일 오후 유일하게 스케줄이 비는데 그때 연구 업무를 하시거나 밀린 수술이 있으면 추가로 넣으신다. 그러면 연구나 다른 업무를 하기 위한 정규시간은 거의 없다. 그 와중에 응급환자라도 생기거나 병동환자가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응급수술이 추가될 수 있다.


진료뿐만 아니라 연구실적을 내는 것이 대학병원 스텝의 역할이다. 진료와 병행하며 시간을 내야 하는데 보통 정규 근무 시간에 연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아 정규 업무가 다 끝나고 숙제처럼 남은 쉬는 시간에 하게 된다. 짬을 내며 논문도 작성해야 하고 학회 발표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연구비 지원서도 작성해서 연구비를 따내야 한다. 진료는 그냥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하면 되는 것인데 연구는 프로젝트와 같은 것이어서 평생 숙제거리 산더미가 있는 채로 사는 것이다. 평일에 일했으면 주말에 쉬고 집에서 개인시간을 갖거나 해야 하는데 토요일마다 학회가 있으며 남은 일요일도 논문 쓰느라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한다. 후배를 교육시키고 우리의 대를 이을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 중간중간에 의대생 강의도 해야 하고 전공의들 업무를 봐주거나 교육을 해줘야 한다. 토요일 시간을 내서 시뮬레이터 등으로 전공의 술기 연습도 지도해 준다. 논문을 쓰는 방법도 교육한다. 수술장에서 교육이나 설명을 하지 않고 수술만 한다면 금방 끝날 텐데 전공의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수술 시간이 길어져서 피로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나마 이 3가지 업무만 하면 다 좋을 텐데….. 조직에서 시키는 다양한 잡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수직사회다 보니 위에서 내리는 업무들을 잔말 말고 처리해야 한다. 가끔은 정말 의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일이 이렇게 바쁘지만 그래도 대학병원 교. 수. 라니! 이 얼마나 명예로운가? 교수 직함을 달고 사회에 나가면 다들 우러러보지 않는가? 그러면 이 고통 조금만 참고 고참 교수가 되면 일을 좀 내려서 나도 여유를 갖고 살 수 있지 않을까?


... 예전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선택해. 당신 꿈이야 우리 가족이야?


"라는 말을 사모님이 하셨대. 그래서 동환선배는 결국 교수자리 포기하고 로컬병원(개원가) 가신다고 하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혜은이가 말했다. 의대 동기였던 혜은이는 지금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 “교수” – 그냥 일반 전문의 자리로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와 교수들이 받는 복지는 못 받지만 교수라고 불러주고 일을 시키며 교수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는 애매한 자리이다. 동환선배는 3년간 이런 계약직 상태를 유지하다가 내년에도 자리가 보장이 되지 않았고 많은 업무량으로 가정에 소홀하게 되어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 대학병원을 떠났다.


“그렇구나… 너는? 너는 내년에 어떻게 돼?”


“나도 고민 중이야. 관두고 로컬로 나가면 훨씬 일이 적고 페이도 더 주는데 안 흔들릴 수가 있을까… 게다가 위에서 정말 힘들게 해. 다른 병원에서 내게 스텝자리 제의가 온 적이 있었어. 내가 여기 있어봤자 자리도 보장되지 않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우리 교수님들이 그 병원에 전화해서 나 데려가면 학회에서 자기들과 척을 지는 것으로 알겠다고 하셨대. 그래서 그 병원에서 온 제의가 취소됐어. 그러면서 내년에도 여기선 자리를 못 받는대. 굳이 이렇게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로컬로 나갈까 싶어.”


“마취과도 많이 힘들구나…”


“병리과도 비슷해. 나가서 바이오 회사 취직하면 훨씬 일도 적고 페이도 3배로 주고. 게다가 이상한 일 시키는 윗사람도 없고! 아는 영상의학과 선배도 그냥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업무량은 더 줄었는데 페이는 대학병원보다 더 좋거나 비슷하대. 육아하기엔 그게 좋지. 지금 대학병원에서 영상의학과 판독의 구하느라 엄청 힘들대. 외과도 사람 없어서 많이 힘들지?”


“아냐 뭐… 그치 힘들긴 하지. 그냥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이렇게 힘든데 후배들이 할까? 내가 불행한데 후배들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권유할 수 있을까? 힘들고 우울한데 그럼에도 관두질 못 해. 이 일이 아직은 재밌긴 한가 봐. 난 연구하는 거 좋아하거든.”


“그래. 너 같은 애는 꼭 대학병원에 남아야 해.


여러 사람들한테서 들은 말이다. 연구도 좋아하고 큰 수술도 좋아하니 “너는 대학병원에 남아야지. 버텨서 환자들을 위한 좋은 연구, 좋은 수술 많이 해야지." 나도 그러고 싶다. 근데 그런 말들이 꼭 기쁘게만 들리지 않는다.


“아직은 할 만 해. 근데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어... 일이 바쁜 건 상관없는데 내가 이 답답한 조직에 어울리는지 모르겠어. 최근에 희애가 교수 회식자리에 갔었대. 거기서 술 먹이고 한 마디씩 시키길래 희애가


‘아... 제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어떤 교수님이


‘에이 희애가 딱 우리가 원하는 여자 교수상인데~ 착하고 순하고 말 잘 듣고.’


교수님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희애는 그 말 듣고 소름이 돋았다고 하더라고.”


혜은이는 놀란 표정으로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이가 좀 찬 조직들은 원래 그렇다고들 한다. 윗사람은 깨어있고 능력 좋은 후임보다는 고분고분하고 위에서 내린 업무에 토를 달지 않는 후임을 선호한다. 후자는 높은 확률로 자신의 후임에게도 자기가 당한 만큼 불합리한 일을 시킨다. 강약약강인 사람들만 조직에 남게 되고 나머지는 조금씩 떠난다. 윗사람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에 만족하며 시스템의 변화를 주고 싶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말 잘 듣는 여자 교수상”이라니. 이 부분은 더 언급하기 싫었다.


“저번에도 어떤 교수님이 내게 그랬어. 여기 자리 나려면 위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한다고. ‘무뇌아’가 되어야 한다고. 그걸 듣고 뭔가 깨달음이 왔어. 아… 아직 우리 교수님들은 우리가 모두 교수되기를 엄청 바란다고 생각하는구나.”


문제는 조직에 남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근데 더 이상 대학병원 교수라는 자리는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자리가 아니다. 예전 교수님들 세대에서는 대학병원 교수가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고 페이도 특진료 등으로 엄청 좋았을지 몰라고 요즘에는 그런 권위도 없을뿐더러 특진료도 거의 없어졌다. 심지어 옛날에는 리베이트도 흔했을 터이니 대학병원 교수는 그야말로 병원 내 무소불위 권력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병원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공식마저 있다. 점점 이런저런 이유들로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그 원인을 시니어 교수님들은 그저 "요즘 MZ들이 책임감이 없어"라는 말로 무시해 버린다.


후배 전임의가 내년에는 대학병원에 있지 않고 개원가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상담을 했다. 최근에 결혼한 그 후배는 좀 쉬면서 아이도 가지고 싶고 자신의 건강도 지키며 가정에 최선을 다 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계속 일을 하기엔...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교수가 되기 위해 그 무엇이라도 하고 남았을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려는 사람도 없고 불합리한 요구를 아랫사람에게 무작정 강요해서도 안 된다. 분명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좋은 직업이다. 그런데 과도한 업무량조직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자아를 잃어가면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젊은 의과의사들이 가정과 꿈을 저울질하여 선택하게 시키는 현 시스템이 옳은 것일까?


아직은 이곳에서 나를 믿어주는 환자들 치료하며 보람을 느끼고, 좋은 연구가 완성되는 희열과 맑은 우리 후배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래도 조금 부탁이 있다면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조직에 계신 선배님들께서 신경을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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