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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Aug 10. 2023

[수술일지] 묻지마 칼부림

2023년 8월 3일

원래 지난주에 하려고 했던 수술이 환자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1주일 연기되어서 오늘 하게 되었다. 나름 큰 수술이었는데 나는 아직 조직 내 말단이기 때문에 수술이 늦게 시작하는 편이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빨리 시작해서 괜찮았다. 한 오후 3-4시쯤 시작해서 저녁 8시경 마무리되었다. 이 수술은 암세포를 최대한 도려내고 나서 뱃속에 항암제를 섞은 물을 직접 투여하는 온열항암화학요법(Hyperthermic Intraperitoneal Chemotherapy, HIPEC)을 하는 수술이었다. HIPEC과 같은 복강내항암은 외과의사로서 복막으로 전이된 말기암을 어떻게든 해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수술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분당차병원 하이펙센터 (https://bundang.chamc.co.kr/medical/center/Hipeg/introduction.cha)


저녁 7시가 되면 요즘에는 전공의들이 퇴근한다. 물론 사실 퇴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 중간에 "저 이제 7시 되었으니 갈게요?"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그렇다. (근데 가끔 그런 애들도 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이 없겠지 혼자서 배 닫아야겠구나 걱정했는데 7시 되어서 우리 1년차 주치의가 당직도 아닌데 도와주러 왔다. 너무 고맙다 주치의야 ❤︎. 문득 배를 같이 닫으면서 생각해 보니 이제 이런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 해도 라떼 전공의 시절엔--


수술 끝나고 환자가 마취에서 깨는 걸 기다리면서 휴대폰을 틀었더니 웬걸... 묻지마 칼부림이 또 발생했다고 한다. 성남시 서현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차에 4-5명이 치여서 다치고 그다음에 8-9명이 칼에 찔려서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세상에 미친놈들이 정말 많아지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이 좀 더 분발해야겠어.


내 수술방에서 나와보니 우리 과 수술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한쪽은 간이식 수술하는 것 같았고 한쪽을 보니 사람이 엄청 많았다. 마취과도 엄청 많았다. 한 수술장에 마취과가 많다는 것은 사실 좋은 게 아니다. 환자가 안 좋다는 뜻이기에. 어라 근데 당직이 아닌 우리 전공의들이 아직 남아있네? 다시 둘러보니까 4명.. 5명... 10명?? 퇴근해야 했던 우리 전공의들이 죄다 여기에 있었다. 한 명에게 물어보니 지금 그 묻지마 칼부림의 피해자 수술이라고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들 퇴근 안 하고 1년차 전공의들은 번갈아가면서 뛰어서 부족한 혈액을 혈액은행으로부터 나르고 있었다. 2-3년차들은 필요한 오더를 내거나 수술장 어시스트를 서면서 펠로우와 함께 주 수술자(operator) 교수님을 돕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레벨의 타과 선생님들도 모여있었다. 흉부외과 선생님은 혹시 폐는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워낙 응급수술이 많은 대장항문외과 선생님도 대기중이셨다. 다들 자기 수술 끝나고 이 방 사태가 심각한 거 같으니 도와줄 것 없는지 기웃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뉴스에서 다루는 큰 사건이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관심가지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다.


교수님이 나를 보시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하셨다 (환자도 환자지만 이제 응급 간이식 수술도 해야 하는 본인을 살려달라는 뜻이다). 다행히도 교수님께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환자 회복은 아직 장담할 수 없었지만 1차적인 손상통제수술(damage control surgery)은 되었다. 수술장에서 바로 혈관조영실에 추가 시술을 받으러 환자는 옮겨졌다. 여기 혈관조영실에서 시술하는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은 준 외과의사다. 그들이 있기에 많은 환자들이 수술하지 않고 시술로 합병증이나 문제 부위를 해결할 수 있다. 아주 고마운 분들인데 대학병원에서 점점 그들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고 난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기에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잠들었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응급환자가 생겼다고 응급실 당직 전공의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복벽탈장으로 소장이 strangulation(교액/목 졸림)된 환자가 왔어요..."

"...... 흑흑. CT 찍었나요? 장 perfusion(피가 통하는지)은 어때요?"

"떨어져 있습니다.... 흑흑"

"흑흑... 빨리 수술 준비합시다."


새벽 4시 반에 수술 마무리하고 우리 펠로우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혹시 제가 아침 7시 컨퍼런스에 안 오면 당직실에 뻗어있어요."


오늘은 영 안 풀리는 날이다. 칼부림 가해자가 어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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