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진료와 빨리 먹는 습관에 대하여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밥을 빨리 먹었다.
우리 가족이 다 빨리 먹는 편이다. 예전에 친구가 피자 조각 한 개를 다 먹어가고 있을 때 나는 3번째 조각을 잡은 적도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김치사발면은 뜨거운 물을 붓고 1분도 안 기다려서 면을 젓가락으로 부순 다음 2분 만에 다 먹는다.
오늘도 힘든 오전 수술 끝내고 배가 너무 고파서 직원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돼지찜이 메인 반찬이었다. 고기 위주로 담은 뒤 빈자리로 쟁반을 들고 가서 앉았다. 오랜만에 수술장 식당에 와서 음식에게 예를 표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주로 점심은 그냥 샌드위치 사 먹는 편이다.)
맛있게 흡입하고 있었는데 우리 펠로우 민지(가명)샘도 마침 점심 먹으러 와서 내가 앉은 테이블이 빈 것을 보고 앞에 앉았다. 나는 반갑다는 듯이 손 인사를 했다. 민지샘이 물었다.
"선생님 오늘은 여기서 점심 드세요?"
입에 음식이 차서 고개를 대신 끄덕였다. 원래 먹을 때 먹느라 바빠서 말이 없는 편이다. 빠르게 음식을 삼킨 후 대답했다.
"배고파서... 근데 거의 다 먹었어요."
마지막 미역을 흡입한 후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휴대폰을 봤다. 사진을 언제 찍었더라? 사진의 정보 보기를 눌러서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어이없어서 웃었다. 민지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아까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뒀는데 먹는데 5분도 안 걸렸어요. 하하."
배고프면 평소보다 속도가 더 빨라진다.
밥을 다 먹었으니 물을 떠 와서 여유를 즐기며 민지샘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혹시나 내가 기다리고 있어서 부담스러워할까 봐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빨리 먹는 습관은 사실 안 좋은 것인데 점심시간이 불규칙하고 간혹 먹을 시간도 없는 외과의사의 입장에선 편리한 스킬이다. 대충 씹고 삼켜서 그런 것인가?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유용하게 쓰고 있다.
밥은 빨리 먹기 스킬이 탑재되어 있는데 외래는 빨리 보기 스킬이 탑재되어있지 않다.
10분 안에 환자를 4명 봐야 한다. 외과는 외래 환자가 그래도 적은 편인데 다른 과는 도대체... 외래가 지연되는 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니, 어차피 당연하게 지연이 되는 것이면 애초에 10분에 2명.. 최소 3명으로 예약 slot을 줄이고 총시간을 늘리면 안 되는 것일까?
아마도 시간을 늘리면 거기서 더 지연이 될까 봐 그런 것 같다. 외래가 지연되고 있다고 강한 압박을 줘야 진료 보는 의사가 환자를 빨리빨리 보내게 돼서 그런 것 같다.
주니어 (젊은, 신규) 외과의사의 경우 처음에는 환자 수가 많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래 시간 대비 환자수가 적어서 환자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설명하고 진료할 수 있었다. 계속 병원 진료를 하고 재진 환자들이 쌓이면서 환자 수가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장 부담스러운 환자들은 종이에 물어볼 것들을 10가지 이상 적어온 분들이다. 자신의 병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 마음은 정말 충분히 이해한다. 모두 정성스럽게 대답해주고 싶은데 컴퓨터 화면에 30분 이상 지연되고 있다고 경고처럼 빨간 글씨가 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 대답은 해줘야지. 그래서 빠른 말로 간결하게 모든 질문들에 대답을 해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인 걸까?
이렇게 된 이유는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가 문제도 있고 3차 병원 진료 쏠림 현상도 문제다. 우리나라 의사들도 미국처럼 여유 있게 진료를 하고 싶은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하기 때문에 3차 대학병원의 진료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
그래도 그 짧은 진료에도 환자를 만족시키는 의사가 있는 반면 대충 본 후 말도 못 하게 하며 빨리 나가라는 무례한 의사도 있는 것이다. 컵라면과 같은 3분 인스턴트 진료를 해야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친절하게 그리고 중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도 좋은 의사로서 성장하기 위해 배워야 할 스킬이다.
... 그래도 정책이 바뀌어서 3분이 10분만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정말 너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