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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wimming Paper

수영은 ‘오기’의 운동

Swimming Paper, 13화

by 강민경


잘하는 것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 고3 때는 흥미가 있어 성적이 잘 나왔던 ‘생물’만 주구장창 공부했었고, 생뚱맞게 의류학과에 들어가 놓고서는 옷을 다루는 일이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잘하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고, 결과도 좋았다. 그러니 잘하는 것이 편했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삶을 효율적으로 살았다. 그러다 칭찬보다는 한숨소리를 더 듣는 활동을 택했고, 그것이 어쩌다 7년이나 이어졌다.


수영은 물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 과제였고,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것이어서 늘 미뤄뒀다. 더운 여름날 폭염 기운에 머리가 살짝 돌지 않았다면 계속 미뤘을지도, 영영 물에 들어갈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폭염의 도움으로 수영을 등록했고, 수영을 시작하자마자 일평생 들을 일이 없었던 핀잔과 한숨소리와 호통을 계속 듣게 됐다.

“그렇게 발 차면 여기 레인으로 안 들여보내 줄 거야!”

수영 첫날 들었던 소리였다. 수영을 아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물속으로 바로 들여보내지 않는다. 물에 뜰 수 있는 동작과 물속에서 호흡을 하지 않다가 물 밖에서 숨을 뱉어내는 연습을 먼저 한다. 수면이 무릎 정도로만 올라오는 풀에 걸터앉아 발차기를 하지만 운동을 한 적이 없는 물렁한 다리는 물보라를 제대로 일으키지를 못했다.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던 강사에게 호통을 들은,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그 마음은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포기는커녕 “그렇게 약하게 차면 수영 절대 안 돼!” “발을 왜 그렇게 차!” “그렇게 하면 진급 안 시킬 거야!”라고 수영장이 울릴 듯 쩌렁쩌렁 내뱉는 저 강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시키는 것들을 해내야겠다 싶었다. 물 공포보다 수치심을 극복하겠다는 오기가 더 컸다. 나와 같이 들어온 초급반 친구들과 비교당하는 수치 또한 오기를 자극했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신체능력에 따라 배움의 시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경험하지 못한, ‘잘하는 것만 하는 삶을 산’ 나로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친구가 배영을 배우는데 나는 배우지 못한다?’ 그것은 뒤쳐지는 기분을 자극했다. 하지만 수영의 배움은 초급의 시기가 전부가 아니었고, 한 영법을 정확하게 다 배우고 다른 영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 교차적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자유형은 못해도 배영은 빨리 배울 수도, 자유형은 잘해도 평영 손은 잘 못할 수도 있었다. 자유형과 동시에 다른 영법들을 배우면서 급했던 마음이 좀 느려졌다. 오기만 가득해서 해내려 했다면 3-4개월 만에 포기했을 지도 모르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영법이 뭔가는 있겠지 하는 희망이 수영하는 날을 늘렸다.


어느 순간 25m도 힘들어 못 가겠던 자유형이 100m를 돌아도 숨에 여유가 생길 정도로 확 늘었다. 안 되던 게 꾸준히 연습한 결과로 갑자기 되던 순간, 그 순간 희열이 주는 기쁨이 몸 곳곳에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면 수영 진급 안 시킬 거야”라는 말에 보란 듯이 발을 차 버릴 수 있는 희열. 그 전까지만 해도 될 때까지 하겠다는 오기로 수영을 했다면, 자유형 숨이 트이는 순간부터는 그 희열의 기쁨이 주는 행복을 알아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수영을 하게 됐다. 어느새 수영 7년 차가 됐다. 수영을 못하는 때가 되면 몸이 물을 찾게 되고, 물에 몸이 젖는 순간 몸에 피가 도는 것 같으며, 아직도 배울게 많이 남아있다는 것에 흥분하는, 삶을 깨우는 이 몸짓을 내 의지로 꾸준히 이어간다.



글, 사진 강민경





Swimming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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