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wimming Paper

A poem, Swimming

Swimming Paper 2화

by 강민경


Swimming Paper 2화 전문을 공개합니다.
총 12화의 paper를 모두 읽어보시고 싶다면
하단 아래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중급반에서 수영을 한 지 몇 달 되었을까? 어떤 영법보다도 어려웠던 자유형이 갑자기 쉬워졌던 순간이 있었다. 배영, 평영, 심지어 접영 발차기까지는 2바퀴 연속으로 돌아도 힘들지 않은데 유독 자유형만 25m 가기조차 버거웠을 때였다. 중간에 멈춰서는 것이 다반사였다. 자유형 하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기 일쑤였고, 어깨 쪽 팔은 근육통이 생기다 못해 근육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팔에 힘을 많이 들이지 않으며 발차기를 세게 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


정말로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분석이 되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은 아니었다. 자꾸만 가라앉던 자유형이 둥실 떠오르며 가벼워진 건 ‘리듬’ 덕분이었다. 숨을 쉬어야 할 때, 코와 입이 물을 벗어나는 데에만 급급했던 시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숨을 고르게 리듬에 맞춰 쉬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다. 물론 잠시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숨 쉬는 박자를 놓치면 물을 먹기는 했지만. 숨 쉬는 박자가 맞추어지니 몸이 물에 뜨는 것도 편해졌고, 몸이 둥실 잘 뜨니 발차기를 세게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몸이 길게 수면에 평행으로 맞추어지니 팔이 물을 저어낼 때 발생하는 저항도 작아졌다. 25m를 겨우 가던 자유형 바보에서 탈출했다. 2바퀴를 연속으로 돌아도 힘이 들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옆반 어머님들처럼 10바퀴를 연속으로 돌아도 숨이 차지 않게 됐다. 25m에서 갑자기 250m라니? 허황된 뻥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갑자기 그렇게 나아졌다.


몸에 힘이 남아도니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니까 몸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줄어드니 다른 무언가에 신경을 쏟을 힘이 생긴 것이다. 때마침 강사가 수업시간에 ‘몸을 회전시키며 팔을 뻗는’ 롤링을 가르쳐주었다. 한쪽 팔을 젓고 나서 물 위를 스쳐 지나가 물속으로 뻗을 때, 머리는 고정시키고 몸을 회전시켜 어깨를 조금 더 앞으로 빼내어 물을 가르며 나아간다. 어깨가 뻗는 힘에 따라 몸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사람은 앞으로 잘 걸어 나가길 바라니까. 뒷걸음질보다는 앞으로 길게 뻗는 추진력에 조금 더 믿음을 두고, 본능적으로 우선하기 마련이니까. 이 롤링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차~찹 차~찹' 물을 가르는 리듬을 생성시켜주기 때문이다. 근육의 힘으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만, 리드미컬하게 나아갈 때 효율적인 운동이라니! 자유형을 비롯한 모든 영법에서, 초보 땐 무조건 물이 많이 튀기면서 세게 발을 차도록 강사들이 지도하지만, 상급 이상이 되면 발차기보다는 리듬이 우선이 된다. 자유형의 경우 발을 많이 차기보다는 1-3 킥 2-2 킥으로 팔 한 번 돌릴 때마다 발을 일정한 간격으로 차면 힘도 덜 들어가고 앞으로도 더 잘 나아간다. (물론 물에 잘 뜨고, 발을 무릎이 아닌 허벅지의 힘으로 찼을 때 이야기) 팔 또한 무작정 돌리기보다 발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의 리듬에 맞게 팔을 길게 뻗듯이 물을 가르면 물과 몸의 흐름이 같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Swimming Paper #2 그림.jpg 그림, 강민경

며칠 전, 어르신들을 위한 ‘시 쓰기’ 강의를 하면서 문득 ‘수영은 시와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이 마인드맵을 통해 떠올린 단어를 시로 엮는 과정을 함께 하며, 이 과정에서 시의 맛은 ‘운율’에서 비롯된다고 목 아프게 외쳤다. 시의 맛을 결정하는 건 운율이라고, 리드미컬하게 읽힐 때 시를 읽는 사람들은 그 시를 기억하게 된다고. 운율 없는 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운율이 있는 시는 재미를 불러일으킨다고. 그 말을 하면서 수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 어쩌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인과였을 것이다. 수영은 그야말로 리듬의 운동이다. 운율을 몸으로 표현한 운동. 리듬으로 몸의 파동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운동. 6년 간 수영을 해오면서 수영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순간은 물과 내가 한 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였다. 물의 파동과 폐와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도가 비슷해졌을 때, 발을 차고 팔을 내젓는 순간 물의 저항을 비껴가며 웨이브를 탈 때, 이 모든 몸의 놀림이 음악처럼 들릴 때, 수영에 푹푹 빠졌다. 한 번 느끼고 나면 절대 그 이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고,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또다시 한번 몸에 익히기 위해 계속해서 물에 뛰어들고야 만다. 그리고 그 리듬은 몸에 기억되고, 잊히지 않는 춤이 된다. 시를 외고 가슴에 담아둔 후 아름다운 광경을 볼 때마다 구절을 읊는 것처럼, 물과 함께 하나가 되는 파동의 몸짓은 물에 닿을 때마다 떠오른다. 각 양 쪽의 팔을 한 번씩 휘젓다가 또 한 번은 양팔을 동시에 돌려보고, 우아하게 팔을 모았다가 힘차게 앞으로 뻗기도 하고. 팔의 움직임에 맞추어 발을 구르고 허벅지의 근육이 세게 잡혔다가 놓이고, 발등이 심벌을 치듯 물을 치면 물방울이 파도를 이루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속으로 속으로 파고드는. 시를 쓰는 운동. 시를 쓰듯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5바퀴를 먼저 물을 잡아 흘려보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0바퀴가 쓰이고, 끈기 있게 흘러가다 보면 20연의 시가 완성된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읊어지는 몸짓에서 일상의 상념을 잊고 오로지 몸과 정신의 순수한 감각만을 떠올린다. 시처럼 쓰인 수영의 시간은 뜻밖의 타이밍에서 깨치고 떠오르고 흐른다.


*롤링이란?

몸통을 회전시켜 팔을 꺾는 기법. 몸통이 회전되면 팔이 입수할 때 길게 뻗을 수 있어서 보다 먼 곳의 물을 잡아올 수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몸이 90도 이상으로 기울어지는 건 좋지 않지만, 적당히 롤링이 될 경우 어깨 부상을 방지하며 자세가 멋있게 나올 수 있다. (초보일 경우 롤링에 너무 신경 쓰다 보면 발차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발차기는 꾸준히 계속 연습하는 것이 필요. 킥판+사이드킥 발차기를 꾸준히 하면 롤링의 감을 더 잘 익힐 수 있다.)



글, 그림, 사진 강민경

인스타그램 @mk_lalalala, 수영 계정 @underwater_diaries



* 12회 한 번에 받아보기

https://docs.google.com/forms/d/1q1AwYszYcKide2toQD53if8V1KkgjBChf3lItFqQMFU/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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