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아…
네가 산부인과를 그만두게 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8화 중
주말 동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정주행하고 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대사가 마침 들려와서 공유해 봅니다. 급작스러운 수술을 겨우 마치고 교수가 자기제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아…네가 산부인과를 그만두게 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니?” 그간 똑똑한 머리를 일머리에도 쓰며 힘든 일은 요리조리 피해 가는 동기 때문에 사흘 밤을 샌 사람에게 그 어떤 말보다도 위로가 되었으리라…공감이 되더라고요.
어렸을 땐 똑똑한 게 최고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곰보다는 여우가 세상을 더 잘 살 거라 생각했죠. 머리가 좋지 않으면 몸이 힘들 거라고, 똑똑한 머리로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에 공부도 눈치도 챙기느라 애쓰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짧다면 짧은 삼십몇 년의 세월 동안 똑똑한 판단보다 꾸준한 끈기가 제 인생을 좀 더 살만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머리가 아주 안 좋은 편은 아니라 어렸을 땐 서울대 가겠다 큰소리 뻥뻥 치기도 했고, 공부를 안 해도 잘 나오는 언어영역 성적에 우쭐대기도 했고,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되 책임을 덜 맡으려고 꾀도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보다도 좋아하는 공부를 성적 상관없이 공부하려던 게, 지각 한 번 안 하고 꼬박꼬박 학교를 나갔던 게,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쓰고 있는 게,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다른 운동을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못하는 수영을 꾸준히 하는 게 건강한 삶으로 이끌고 있어요. 꾸준함으로 인한 결과에 만족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꾸준하게 삶을 끌어나가는 그 행동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나갑니다.
잘하는 걸 해서 빠르게 좋은 결과를 내고 털어내는 것보다, 좋아하는 걸 천천히 탄탄하게 유지하는 생활이 저에게는 삶의 힘이 됩니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고,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어떤 생활과 일상이 힘이 되는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꾸준함이 흐트러질 때가 있고 혹은 꾸준함을 흐트러트리고 싶은 악마의 속삭임도 들려옵니다. 사실 요즘도 프리랜서 일에 대한 회의감과 매너리즘이 와서 고생 중이지요. 그렇지만 지금껏 살아온 삶을 되돌이켜 보면서 저에게 어떤 힘이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니 결국 ‘꾸준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