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글
마음이 복잡하거나 혹은 무료할 때, 추리소설을 읽습니다. 자기계발서 다음으로 제일 안 읽는 책이 소설인데요. 추리소설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옆구리에 끼고 다닐 정도였지요. 어른이 되어서는 새로운 추리소설 읽는 재미만큼이나 읽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 재미에 늘 빠져있지요.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읽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가볍게 책 속으로 빠질 수 있거든요. 오히려 새로 접하는 소설을 읽게 되면 깊이 빠져들어야 하는 추리소설 특성상 복잡한 마음 상태에서는 집중하기 어렵거든요. 몹시 무료할 때에도 이미 내용을 아는 추리소설을 읽으면, 가볍게 마음이 채워집니다. 무료하다는 건 어떤 행동과 감정에도 빠지지 못하는 상태잖아요. 알고 있는 내용 혹은 어렴풋이 생각나는 내용을 다시 엿보면서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 나면 무료한 기운도 살랑살랑 흔들리다 사라지거든요.
오늘은 복잡한 마음이 살짝 풀어지면서 그 반동으로 무료해지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셜록 홈즈 전집을 꺼냈지요. 1권부터 차례차례 읽을 참입니다. 9권까지 있으니 새해가 올 때까지 읽겠네요. 여러 작가의 추리소설이 나와 있지만 저에겐 아서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가 최고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 작가 모두 영국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네요. 사실 영국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영국에 가보겠다는 마음조차 아직도 들지 않는데요. 이상하게 추리소설만큼은 영국 배경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배경이 아닌 추리소설에는 마음이 가지 않을 정도랄까요. 어쩌면 처음 셜록 홈즈를 읽었을 때의 감동 때문에, 그 감동이 주는 여운이 마음에 각인된 탓에 영국 배경을 고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여러 번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한 페이지, 갑자기 마음에 진동이 느껴지지 않을 때 한 페이지,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 해서 한 페이지…읽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 건 사실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닌, 익숙한 앎으로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겠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라면 저는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아요. 추리소설 하나만으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