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7일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이라, 커피 마시는 일이 색다를 것도 없지만 유독 뜨거운 컵을 잡고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커피가 따로 있다. 특별한 원두도 아니고, 정성스럽게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도 아니다. 그저 고운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은 커피다.
브라질에서 살다 온(다시 떠나 있는) 친구가 선물해 준 커피였다. 우리나라 커피가루를 생각하고 한 봉다리에 있는 커피 절반을 쏟아부어 뜨거운 물에 타마셨다가 으악 소리가 절로 났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고소한 향이 있어 그 사약 같던 커피를 나누어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맛인 거라.
머그컵 1컵 기준으로 커피가루 1 티스푼을 타면 딱 좋다. 쓰지도 시지도 않고 단 향이 나지만 달지 않은, 어느 하나 톡 튀지 않는 고소한 맛의 커피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커피지만, 나는 어느 것 하나 넘치지 않고 나에게 좋게 느껴지는 것들이 튀지 않는 이 커피가 참 맛있다. 뜨겁게 타 두고 책을 읽으며 홀짝홀짝 마시면, 넘치지 않은 그 맛이 책 읽는 맛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그 시간에 스며드는 것이다. 그 순간이 딱 지금이라, 잊지 않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기록해 보는 것이다.
뜨거운 커피가 식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좋게 느껴지는 커피가 식는 건 더 싫기도 하고, 좋은 순간을 뺏기지 전에 즐기다 보면 금세 컵이 바닥을 보인다. 아직 컵은 뜨뜻하다. 따뜻과 뜨거움의 중간 즈음으로 데워진 컵을 건조한 눈에 대고 있는다. 안구건조가 심해지면서 생긴 습관이다. 눈을 따뜻하게 찜질하면 눈 근육이 풀리면서 막혔던 기름샘이 뚫려 눈이 부드러워진다고. 한쪽씩 눈에 갖다 대며 다른 쪽 눈으로는 책을 본다. 한쪽은 뜨뜻하게 풀어지고 한쪽은 책을 보는 재미에 편안해진다. 오늘은 이 짧은 순간으로, 우리가 하루동안 가졌으면 하는(가져야 하는) 행복을 다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