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

by 나언

꿈, 꿈은 아름답다. 내가 볼 수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게는 사람이 상상하는 미래의 그 꿈과 잘 때 보고 느끼는 꿈이 같다. 나는 생을 한 번 잃었고, 후천에 존재한다.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의 새 삶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토록 선명한 꿈은 나를 괴롭게 만든다. 작고 어릴 때의 기억이지만 더없이 슬픈 사실은, 그때 나는 앞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내게 앞이 보인다는 것은 꿈이기에 가능한 것이니까. 사람들은 쉽게 미래를 상상하고 꿈꾼다. 그러나 나는 어린 날을 꿈꾸는 것이다. 보인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꿈. 내게 있어서 시각을 잃은 삶이란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운명처럼 그때의 장면을 곱씹어간다. 한스러운 것은, 매번 같은 꿈이란 것이다. 내가 사고를 당한 날, 그때에 나는 새로운 삶을 사는 후천적 맹인이 되었다. 너무 어렵지만, 사람들이 꿈을 꾸는 동안에 나는 어린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꿈을 위해서 달려가는 동안 나는 어린 날을 추억하며 회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꿈의 이야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또 같은 꿈을 꿀 것이다. 그래, 이렇게 눈을 뜨면 아니, 눈을 감은 채로 의식을 찾으면 공기를 맡는다. 사람들마다 집 특유의 냄새가 있다. 몸에 베여있는 체취가 있다. 그 냄새를 먼저 맡는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철저하게 나를 위주로 배치가 되어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편집증적인 집착이다. 내가 눈이 멀고서, 혼자서 어떤 것을 하려면 반드시 어떤 위치에 어떤 물건이 놓여야만 했다. 손을 뻗어 오른쪽으로 서서히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만진다. 그리고 왼쪽부터 하나, 둘, 셋. 여기다. 꾹 눌러서 시간을 확인한다.

“현재 시각은 오전 다섯 시 오십이 분입니다.”

선명한 꿈을 꾼 탓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나는 다시 누워서 어린 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 기분을 만끽했다. 그 기분이란 것은 당신이 잠에서 일찍 깨었을 때, 눈을 감으면서 선잠에 드는 것을 뜻한다. 아직 잠을 자는 여유가 있으며, 완전히 잠에 들지는 않은 채로 즐거운 상상 또는 경험을 되새기는 일이다. 이런 때에는 스스로 시각을 잃은 것이 아니란 확신이 든다. 분명 남과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냄새를 조금 맡는다. 나는 집의 냄새가 좋다. 묘하게 안정감이 드는 냄새다. 착각은 하지 말라, 냄새가 난다고 더러운 것은 아니다. 섬유유연제로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체취가 있다. 당신도 다른 이의 집에 들어가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스스로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확하게 세 번째의 버튼을 누른다.

“현재 시각은 오전 여섯 시입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과 정확하게 60초를 맞추는 타이머 놀이를 한다면 내가 압도적 우위를 달성할 것이다. 이런 예민함은 저주에 따른 보상이 틀림없다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 이불의 끝을 맞춘다. 펄럭이고 천천히 아래로 밑단을 만져나간다. 그렇게 한 번 더 접어서 이불을 갠다. 적어도 이 집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내가 마음먹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보폭을 한 발, 두 발 걸어서 접이식 의자에 앉는다. 이 오른쪽에는 리모컨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손짓으로 한 번에 들어올린다. TV를 켜고서 아침뉴스를 듣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에 무지한 것은 아니다. 글은 점자로 읽을 줄 알고 말은 들을 줄 안다. 나는 남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인 결함으로 남들과 우위를 말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나 역시도 똑같은 사람이고, 자유롭다.

흘러나오는 정치문제에 나는 다른 상념으로 시간을 채웠다. 정치인이란 것들은 매일 약자를 위한다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명 우열은 없는데, 가난한 이들이 매일 우선순위다. 내가 생각한 상념이란 것은,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밖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위험하다. 내게 안내견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은 볼 수도 없는 주제에 당치도 않은 꿈을 꾼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것은 모두 거짓이 아니다. 단지 볼 수 없다는 점만 빼면 여행의 감촉을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당신들이 말하는 ‘보이는 것’보다 빼어난 감각으로 여행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일전에 대마도를 간 적이 있다.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그 습한 바다의 냄새를 아는가. 나는 그것이 낯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헛구역질을 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어떻게 삶을 마감하는 준비를 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를 여행시켜주려 애썼다는 것을 안다. 너무 먼 곳은 위험하니 대마도를 갔다. 그러나 나는 처음 맡는 바다의 비린내에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부모님이 떠나간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고, 온종일 투정만을 쏟아냈다. 왜 이런 곳을 데려왔냐며 하소연을 했다. 짜증을 부렸다. 내가 부모님을 위해서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여행을 간 것인데 나는 그때가 참으로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받기만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당신들은 거짓말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첫째로, 착한 거짓말이 있다. 둘째로, 나쁜 거짓말이 있다. 마지막 셋째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부모님의 억양에서 그것을 느꼈다.

지독한 가난이 문제였다. 부모님은 우리가 더 잘사는 것을 원했다. 당신들이 죽은 이후에도 내가 부족함이 없이 살도록 많은 돈을 원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 기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님은 내게 안내견을 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부모님의 부고였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다단계에 빠졌고,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유산과 빚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뿐인 자식을 위한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부모라! 통재로다, 괘씸하지만 그들은 천국에 갔을 것이다. 그 의도마저 거짓은 아니었기에, 삶이란 어떻게 이렇다. 삶이란, 타이밍이란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인사를 할 수 있다면 괜찮은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감사를 표할 수 있다면 괜찮은 것이다. 참, 언제나 내게는 그 타이밍이 어려웠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나를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나는 불쌍하지 않다. 나는 충분히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당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당신들보다 우월한 것이다. 기상캐스터는 오늘의 날씨가 맑다고 말한다. ‘오늘처럼 맑은 날씨에는 밖에서 사랑하는 친구들을 보는 것이 어떨까요?’라며 내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선심으로 말한다. 세상은 참으로 이렇다.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남들도 당연하다고 여긴다. 자신이 보이니까,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친구를 볼 수 있으니까 당연하게 나도 볼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내게 친구는 가끔 오는 사회복지사와 복지관의 사람들밖에 없다. 그마저도 볼 수가 없다. TV를 끈다. 이제 오전 7시, 그러나 어둡다. 컴컴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보폭으로 걸어 온수를 켜고 샤워를 한다. 분명 이 앞에는 거울이 있지만 볼 수 없다. 다만, 어린 날의 나를 생각하며 어떤 존재를 상상한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다. 나는 그것에 화가 났다. 지금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내가 떠올리는 것은 어릴 적에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단지, 그것과 나는 닮았다고 믿는 것이다. 언제나 화장실은 슬프다. 남과 다르게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슬프다. 이제는 익숙해져야만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다.

“아, 여행을 떠나고 싶어라.”

혼잣말을 뱉는다. 나는 모험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볼 수 있는 인간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나는 지금 이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본다. 고작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나의 존재를 앗아갈 수는 없다.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 그 냄새를 느끼고 익숙한 자리에 놓인 샴푸와 바디워시으로 몸을 씻는다. 이 집에서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자유로운 것이다. 다시 오늘 꾼 꿈을 떠올린다. 물줄기를 맞으며 한때 나의 것이었던 그림들을 상상한다. 어린 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심장이다. 지금의 심장은 무겁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가벼웠다. 삶의 짐이라는 것이 없었던 청량한 심장을 그리워한다. 심장도 아는 것이다. 가벼운 심장의 박동을 기억하고 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꺼내어 몸을 닦는다. 그리고 내면의 박동에 귀를 기울인다. 정확하게는 감각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제는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익숙하지만 내재된 불안은 익숙하지 않다.

나는 어떻게 시력을 잃고서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호소하게 된 것이다. 고대 중국에는 기나라 라는 곳에 어떤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 사람은 언제나 걱정이 많았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다거나, 집에 우환이 생긴다거나하는 걱정들을 매일 달고 살았다. 운이 좋지 않게도, 나는 그 사람과 흡사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불안해하는 이 스스로가 두렵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박동하는 심장소리에, 위협의 원천을 찾는 것이다. 귀신을 믿었던 시간이 있었다. 두렵지 않으려 말을 거는 습관이 있었다. 샤워를 마치면 지금처럼 “오늘은 어떠니?”라며 슬쩍 묻는다. 대답은 없다. 수건으로 왼손을 닦다가 오른쪽의 손가락으로 흉터를 만진다. 이것에는 따끔한 기억이 있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해두겠다.

밖으로 나와서 익숙하게 머리를 말린다. 헤어드라이기가 꽂힌 콘센트의 전원을 켜고 빗으로 머리에 가르마를 탄다. 나에게 삶이란 어떤 변화보다 익숙함이 어울린다. 나의 대부분의 삶은 그런 익숙함에 있다. 몇 년 동안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듯이, 모든 것을 정해진 순서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남보다 더 많이 넘어졌고, 주저앉았다. 그래도 일어나 있는 것이 조금 더 좋다. 내게 일어선다는 것은 작은 부분에서 남들과 같은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을 나서는 것이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약간의 추위를 탄다. 오늘은 코트를 입어야겠다. 주섬주섬 청바지를 꺼내고 입는다. 셔츠에 니트를 덧입고 위에 코트를 입는다. 새까만 선글라스를 쓰고서 지팡이를 꺼낸다. 그리고 오랜 습관이라면,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본다.

거울에는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본다는 역할에 충실한 물건이지만 나는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안의 내가 나를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잠깐 꺼낸다.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나는 부쩍 혼잣말이 많아졌다. 필시 외로움을 타는 것이다. 그래서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귀신에게 오늘의 패션은 어떠한지 묻는다. “적당해?” 대답은 없다. 분명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서 대문을 열고 밖의 대지의 향을 맡는다. “새벽에 비가 내렸구나.” 그래서 날씨가 조금 추웠나보다. 나는 이 날이 싫다. 비가 오는 날도 싫지만 이렇게 곳곳에 웅덩이가 가득한 날이 싫다. 이런 날은, 신발이 젖기 때문이다. 언제나 조심한다고 조심하지만 항상 내가 가는 길은 웅덩이들이 많다.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다. 다른 날보다 지팡이로 여러 번 짚으면서 앞을 항해한다.

집 앞의 공원까지 가는 길에는 커다란 대로를 건너가는 방법과 조금 멀어도 산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오늘은 산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비가 내리던 날에 버스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주행을 하다가 나의 몸에 물벼락을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비에 젖은 흙냄새를 더 느끼려면 산이 좋다. 항상 좋지 못한 것 속에는 또 다른 좋은 점이 있다. 비 오는 날의 흙냄새는 그 묘미가 있다. 산길로 향하며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한다. 매번 같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만 같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나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다가가다가 멈춘다. 그들은 나의 선글라스를 확인하고 옆으로 피해서 걸어간다. 내가 그들에게 진정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재미난 이야기를 하다가 내 앞에만 오면 모두 입을 다물고서 경건하게 자리를 피한다는 것이다. 나도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멀다.

그 학생들과 나의 거리는 겨우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멀다. 멀었다. 나는 눈이 멀었다. 그들과 좁혀질 수 없는 거대한 거리다. 지구와 달 사이보다 먼 거리다. 이렇게 사람들과 멀어진 사이에 나는 마스크를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상쾌했던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멀어지기 위해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멀다. 그럼에도 사회는 더욱 멀어지라고 말한다. 눈이 멀어진 내게 이것은 가혹하다. 그럼에도 나는 유쾌해지려 애썼다. 이것은 오랜 습관이다.

나는 웃으며 볼에 손을 가져다댄다. 보조개가 있는 나의 볼이다. 나는 이것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아름다움.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의문을 지녔던 적이 있었다. 어떤 것이 예쁘고 어떤 것이 흉측한지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 단단하다. 물렁하다. 이런 감촉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지 궁금했다. 어릴 적 점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이나 물건이야’ 그것은 실수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선생님, 저는 볼 수가 없어요.’ ‘마음으로 볼 수 있잖니.’라는 대답을 듣고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것을 만지고 형태를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가 아름다움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단어를 쓸 수 있다. 이렇게 보조개를 매만지면, 나는 이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집에 다시 돌아와 마스크를 썼다. 쌓여진 마스크 중에서 새것을 하나 뜯고서 그 향을 맡는다. 나는 이것을 인공적인 향기라고 말한다. 물건을 새로 얻으면 나는 새것의 냄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와 연결하는 나의 또 다른 연결점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이렇게 다시 집을 나설 때 그 향기가 없다. 비가 내리고 젖은 흙의 냄새가 없다. 생명이 태동하는 그 아름다운 냄새가 없다.

나는 이것에 유쾌했다. 이런 사소한 실수에 웃고 보조개를 만들었다. 보조개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는 없지만 웃으면 아름답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거리를 다시 걸어간다. 다시 보폭을 맞추어 걷고 헷갈리면 지팡이로 돌다리를 두들기듯이, 짚어간다. 목적지가 있는 걸음이다. 나는 언제나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항상 움직여야만 했다. 불안함이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서 오늘을 걸어가지만 내가 매일을 걷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이것은 때로 내가 우울해지는 원천이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기분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그 경험을 간직하고 산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표현할 방법을 잘 몰랐으나 결국 알았다. 나도 성당의 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돌아갈 집을 잃은 것이다. 그가 신앙을 믿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 단 하나의 경험 때문에 어려움의 순간에서 주님을 떠올린다. 그는 휴대폰의 배터리가 모두 바닥났고, GPS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가 택한 것은 끊임없이 걷는 것이었다. 그 사막에서 모든 집들은 형광등이 빛났지만 이방인인 자신은 기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다.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어떤 것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그는 이대로 쓰러지고 싶었다. 그의 손에는 봉지에 담긴 럼주 두 병이 있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앉아서 럼주를 마시는 것은 어떨까.’ 그는 길과 집을 잃었다는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술은 그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시켜주는 기능이 있다. 그가 주저앉았을 때, 작게 흐느꼈다. 술을 마시겠다는 욕심에 삶을 잃을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모스크였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둥글게 솟아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향해서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마트가 나왔다고 한다. 갑자기 닥친 목마름에 물을 사러 들어가려는 그는 그곳에서 나오는 한 사람과 마주했다. 그는 한국말로 “아 덥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한국인이냐 물으며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집을 찾아 데려다주었고, 그들은 “이 또한 주님의 축복이지요.” 말하며 명함을 주었다. 그는 그것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손을 놓친 적이 있었다. 지나가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로 차도의 굉음들에 신경이 쏟아지고 손으로 귀를 막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라고 크게 외치면 외칠수록 희미해져갔다. 누군가가 다가서서 “꼬마야 길을 잃었니?”라고 물었지만 나는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그들의 손이 내게 향할 때, 나는 비명을 질렀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별 이상한 아이를 다보겠네”라며 군중 속으로 흩어졌다.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들은 모두가 적이었다. 언제 나를 데려갈지 모르는 그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의 뇌를 자극했다. 소리, 향기, 꼭 잡은 양손의 땀방울 모두 기억한다. 나는 거세게 울었다. 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면 달릴수록 나는 그것보다 더 크게 울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생각을 만들고 더 깊은 불안을 자아냈다. 특히 그때에 존재하던 나의 자격지심이, “나처럼 눈이 멀어버린 아이는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아.”라고 속삭였다. 그것은 실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분명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었지만 이제는 혼자서 양손을 모아 깍지를 낀다. 그 땀방울들이 선명하다. 성당에서의 그의 분명한 비유가 있었다. 자신이 도움을 청할 대상은 무수히 많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뻗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까.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다가 예순이 기억나지 않아서 처음부터 일, 이, 삼 숫자를 셌다. 백을 세면 어머니가 돌아온다고 믿었다. 백, 그러나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다시 이백, 삼백, 사백까지 나는 사이렌을 듣고서 고개를 들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장난감은 경찰차였다. 그 차에서 어머니가 내리는 모습을 꼭 봤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차가 멈추는 브레이크 소리가 났고, 곧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였다. 정말이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정작 두렵고 불안했던 것은 나인데, 어머니가 화를 냈다. 나는 익숙한 향기의 어머니에게 안기며 다시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앞으로 엄마 말 잘 들을게요. 가지마세요.”라고. 그래도 기뻤던 것은 처음으로 경찰차를 탔다는 것이다.

어느새 공원이다. 인기척은 별로 없었다. 이 마스크란 것이, 우리가 서로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신뢰를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누가 헛기침을 하면 따가운 눈초리로 그를 볼 것이다. 언제나 앉는 벤치에서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유일한 위안이다. 멀어진 세상에도 새들은 언제나 아카펠라다. 이것이 내가 산책을 나서는 이유다. 그 오케스트라는 마음을 진정하는 깊은 울림이 있다. 나는 외로움에 사무쳐 다시 내뱉었다. “아, 여행을 떠나고 싶어라.” 그러나 두렵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리고 나와 세상 사이의 거리도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색한다. 오늘의 주제는 아름다운 꿈이다.

때때로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은 환상통을 겪는다고 한다. 복지관에는 그런 사람도 있는데,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깨어서 존재하지 않는 왼팔이 가렵다며 우는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그렇다. 내 꿈은 보는 것이다. 내가 꿈을 꾸는 것, 잠에서 꿈을 꾸는 것 둘 다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선명한 꿈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 어릴 적의 나는 외갓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나를 키울 형편이 아직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쁘다는 감정이다. 나는 처음 유치원을 간다는 것에 신이 났다. 외할머니는 뛰지 말라며 넘어진다고 하셨다. 나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고서 유치원의 버스가 오는 곳까지 뛰어갔다. 그리고 나의 사각으로 덮치는 트럭을 보지 못했다. 코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코를 만졌다. 코피가 양쪽에서 흐르던 것이다. 그것이 내 생의 마지막 시각 -時刻과 視覺-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의사는 당당하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따로 손상된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앞을 볼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 앞이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의 꿈을 꾼다. 유치원을 가는 날이라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마당을 뛰어다니고 지쳐서 누워 하늘을 보았다. 뭉게뭉게 구름이 있었고 여명이 있었다. 똥개인 자두를 보면서 쓰다듬다가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넘어져서 자두를 간질거렸다. 외할머니는 “밥 묵자”라며 나를 불렀고 마루에 앉아서 새콤달콤한 비빔국수를 먹었다. 후식은 언제나 내가 먹는 사이다였다. 그 상쾌한 기분까지 꿈이 기억한다. 그래,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믄, 선생님 말 잘 듣거라잉?” 외할머니가 말하시고 나는 늘 그렇게 웃는다. 외할아버지는 그때서야 한 말 거든다. “요기서도 말 안 듣는데, 거서 잘 듣겠나.” 그리고 외할머니는 “자주 웃으라.”라고 말한다. 항상 똑같아서 지겹지만 질리지가 않는다. 이제 나는 달리기를 할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 미래를 위해서, 나는 꿈에서 여러 번 말한다. 안 돼. 가지마. 가면 안 돼.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렇게 달려간다. 그리고 브레이크 소리, 나는 튕겨서 고꾸라진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 똑같이 뭉게뭉게 구름이 있다.

참으로 사람들은 이상하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어머니가 내게 화를 냈던 것처럼 때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한다. 외할머니도 그랬다. 나와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뛰지 말라고 더 말렸어야 했는데, 외손주 이제 어떻게 살꼬.” 어릴 때의 나는 그것을 믿었다. 언제나 사람은 그렇다. 내 탓을 하면 슬프고 괴롭다. 그래도 남을 탓하면 조금 더 낫다. 나는 그 어린 날에 외할머니에게 틈만 나면, 왜 그때 말리지 않았냐며 통곡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처음에 탓할 대상이 사라진 것에 억울했다. 그 뒤에는 나를 조금 탓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더 이상 외할머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지난 모든 원망을 탓했다. 외할머니는 자처해서 스스로가 나의 원망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으로 내 삶을 위했던 것이다. 그녀는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네가 잘못된 것은 모두 내 탓이다. 그것으로 괴로움은 내게 주어라.” 다시 외할머니를 천국에서 만난다면, ‘당신의 탓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어린 날은 불완전했고, 슬프게도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한 명에게 저주를 쏟아냈다. 아마 그것 때문에, 그녀는 더 깊은 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괜찮다고 했어야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챙겨 나온 점자책을 읽는다. 손가락의 감촉으로 글을 읽는다. 그렇게 어린 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마음속으로 글을 읽는다는 것을 몰랐었다. 소리를 내어서 읽을 줄만 알았었다. 천천히 한 글자를 또박또박 말하며 읽었다. 나는 그 순간이 아름다웠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어릴 적의 내가 읽었던 책들을 똑같이 읽으며 그 기억을 되새긴다. 점자로 나오는 책이 얼마 없는 곳도 큰 이유였다. 대부분이 동화다. 어릴 적처럼, 글자마다 소리를 내어 읽어나간다. 매일 이렇게 열 쪽을 읽고서 휴대폰을 꺼낸다. “빅스비, E-북에서 피터팬.” “네 피터팬.” 그리고 내가 읽었던 위치에서 이어서 기계가 읽어간다. 얼마 전에는 어린왕자를 읽었다. 그것은 읽는 순간마다 나에게 다른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특히 생택쥐페리의 그 일생을 안다면 한층 묘하다.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도 그런 영향이었다. 나는 창공을 비행하고 싶다. 그것이 이카루스에 불과하여도 그 비행의 감각을 느끼고 싶다. 나는 무작정 일어서서 앞으로 달렸다. 쏜살같은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 달렸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멈췄다. 지쳤다. 다시 터벅터벅 걸어간다. 제자리로 처지는 재즈의 공기를 킁킁거리며 돌아간다.

휴대폰에서는 피터팬을 읽어주고 있다.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내 어린 날의 선생님은 직접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 피터팬 증후군이 있어.” 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미 어른인데, 마음은 어린이라는 거야.” 나는 당돌하게 물었다. “어떻게 어른이 어린이를 추억해요? 저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부모님은 내게 세 번째 거짓말을 했지만 나는 몰랐다. 스물이면 눈이 낫는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언젠가 너도 알 것이야.” 그리고 놀랍도록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어른이란 것은, 어린이의 심장과 다르다. 많은 풍파를 거치며 그 심장의 무게가 달라졌다. 쌓이고 쌓인 마음의 무게가 심장을 짓누른다. 한때는 가벼웠던 그 심장이 지금은 둔탁하다. 콩콩거리던 그 심장이, 지금은 두근거린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트램펄린을 콩콩이라 불렀다. 그렇게 트램펄린에서 콩콩거리던 심장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른이라, 나는 담배를 필 수 있고 술을 마실 수 있다. 단지 그것이다. 어른은 행복할 수가 없기에 그것을 허용한 것이다.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고, 술로 마음을 달랜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단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 더 혹독하고 괴로우니 그것으로 위안을 가지라는 것이다. 난생 처음 피운 담배는 맞지 않았고, 향기에 예민한 내게 소주란 공업용 알코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이 낫는다는 희망마저 앗아갔다.

“선생님 저는 스물이면 눈이 나아요.” 선생님은 답하지 않았다. “앞을 볼 수 있다고요.” 작은 기억이 뇌리를 감돈다. 나는 그것을 꿈꿨다. 눈이 멀지 않아서 사람들과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도 멀다. 나는 마스크를 내려서 보조개를 확인했다. 내가 웃어도 보조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손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치명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허공에 윙크를 한다. 깜빡, 깜빡, 깜빡.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도 삶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 남들보다 더 웃고 기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지금 나의 보조개다. 나는 문득 새가 지저귀는 아카펠라에 화음을 넣었다.

“섹스.”

조용히 읊조렸다. 누가 들을세라,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어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건장한 20대, 나 또한 성욕이 없다면 이상한 것이다. 어떤 황홀한 상상을 한다. 그러나 여체는 없다. 아름다운 향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을 떠올린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일어서서 천천히 집으로 향한다.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한다. 그렇게 걸어간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것보다 어렵다. 나는 여체를 본 적이 없었다. 만진 적도 없다. 단지 가엾게 상상하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나는 수음을 했다. 어떤 이성도 떠오르지 않는 채로, 어떤 화장의 분내를 떠올리면서 나의 가슴을 만졌다. 여성은 이곳이 솟아있을 것이라며 상상했다. 그러나 여성의 그 몸을 상상하지 못한 채, 절정에 이른다. 슬프다. 괴롭다. 나는 이것을 환상통이라 믿었다. 내가 가질 수 있었지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단지 가려워서 아파하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신기루를 본 적이 없지만, 그 일종이라고 믿었다. 다시 오른손을 뻗어서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11시다. 망할 코로나. 평소라면 복지관을 갔을 것이다. 나는 무료함에 다시 누웠다.

성당 생각이다. 미사를 가고 싶지만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내가 앞을 볼 수 없지만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처럼 나는 단지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일생이 치유가 된다. 보이지 않는 이 앞이 신기루가 아니며 희망이라는 믿음이다. 한때 나는 세상이 신기루와 같다고 여겼다. 분명 나를 속이는 것이라 믿었다. 사람들이 눈으로 저기 오아시스가 있다며 착각하는 것처럼 내가 느끼는 이 모두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언제나 삶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었다. 사막의 상인이 저 오아시스가 신기루일 것을 알지만 실존한다는 그 믿음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세상이 실존한다고 믿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게는 언제나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만 같다. 처음에는 외할머니였다. 그리고 하늘을 원망했다. 분명 내가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았다. 왜냐하면 탓할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모두 남의 탓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는 이 세상에 지쳤다. 아무리 남을 탓해도 사라지지 않는 원망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슬픈 일이다. 어떤 날은 혼자서 소주를 마시며 울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은 전생에 유다였기 때문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다. 한동안 그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저주를 받았는지 모른다. 아마도 나는 전생에 사막을 걷는 상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았고, 어쩌면 나라를 팔았을지도 모른다. 전생의 나는 신기루를 보며 헛된 희망을 품고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스스로의 눈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신기루는 계속해서 멀어졌다. 마치 나의 눈처럼 멀었다. 나는 여기서 의문을 지녔다. 참으로 희망이란 것을 떠올려서 눈에 신기루가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눈이 신기루를 보면서 희망을 떠올린 것일까. 부모님은 내가 스물이면 눈이 낫는다고 했다. 그래, 나는 신앙을 믿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희망이 신앙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어쩌면 내가 지금껏 신앙을 믿은 것을 후회하지 않고 싶었다. 고작 그딴 짜증 나는 거짓된 희망에 신앙을 믿은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 내 앞에 펼쳐진 신기루와 같은 신앙이 있다. 이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다가 길과 방향을 잃었고, 그래 마치 이제 그 신기루가 진실이라고 믿지 않으면 쓰러지는 시기가 왔다. 그것은 반드시 희망이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소주의 마지막 잔을 마시며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정말이지 눈물이 나는 것은, 당신들도 이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신이 거짓이라면 내가 지금껏 눈이 낫는다고 기도를 드리던 그 시간들은…

진정으로 헛된 것이었나. 나는 그래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단지, 나의 기도가 간절하지 않아서, 혹은 전생에 큰 죄를 지었기에 눈이 낫지 않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울고 있었다. 목에 걸린 휴대폰을 손에 쥔다. 스마트폰이 아닌 구식의 휴대폰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버튼을 누르는 휴대폰이 알맞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문자를 남길 수 있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튼다. 하나 둘 내려가다 정확하게 17번째에 그 노래가 있다. 스티비 원더의 노래다. 어떤 TV프로그램의 엔딩곡이었다. 나는 부모님과 일요일에 항상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한스러운 것은, 어떤 분장에 대해서는 웃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애써서 그 분장을 설명했지만 전혀 재밌지 않았다. 그러나 상상했다. 그리고 나는 애써서 웃었다. 그렇게라도 웃지 않으면 영영 세상과 단절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재미가 있었다. 볼 수 없어도 유쾌함이 있었다. 나는 한 개그맨을 따라하며 부모님에게 유행어를 말했고 부모님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 행복한 시간도 잠시였단 것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의미하는 것이 참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연결은 어디에 있는가. 왜 우리는 계속해서 멀어져야만 하는가. 자유로운 웃음은 사라졌고 불편한 웃음만이 감도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애써 웃는다. 요즘의 세태는 웃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남이 웃는 것이 불편하다는 듯이 꼬리를 잡고서 남을 웃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웃음이 좋다. 나의 보조개가 마음에 든다. 웃어야 행복하니까, 복이 오니까. 습관처럼 보조개를 만진다. 움푹 파인 부분이 좋다.

이렇게 정신을 놓고 누워있을 때면, 어린 날 별을 보던 것을 기억해낸다. 가련히 빛나는 초승달이 안긴 어두운 밤하늘, 그곳에 초라한 내 초상이 있었으니, 함께 빛나는 무수한 별들 사이에서 나와 같은 별을 찾았던 것이다. 그래, 지금 나도 칠흑과 같은 어둠에서 한 줄기 광명을 찾고 있다. 그때는 분명 별을 보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어떤 것도 없다. 당시에 어울리던 동네의 꼬마들과 저 큰 별이 나의 것이라며 서로 목소리를 내던 때가 있었다. 재밌는 사실은, 나의 별은 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빛이 난다고 마냥 나의 별이라고 믿었지만 나중에 외할머니에게 나의 별을 소개할 때에 들었다.

“개밥바라기구만 별 아이다.”

그것은 행성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가련한 비너스였다. 그럼에도 그것은 나의 것이었다. 스스로 빛나지 않아도 황홀한 밝기를 자랑하는 그것은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내가 아름답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거리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돈을 번다. 재즈를 연주하면서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일상과 일생을 영유한다. 그러나 오늘은 나가고 싶지 않다. 이대로 별이 보일 때까지, 눈을 감아야 좋겠다고 믿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낮잠에 든다. 나는 꿈이 좋다. 별도 좋다. 가까이할수록 멀어지는 그 어떤 것이다. 그리고 마치 신기루와 같다. 어떤 꿈은 소망이고,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내게 꿈을 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이번에는 꿈을 주지 않았다. 일어나면 그래, 우리들은 신기루를 보고 있는 것이다. 웃을 힘도 없다. 대신에 나는 손목의 흉터를 만진다. 그리고 느껴지는 감각이 기억을 자극하고 소름이 돋는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를 파괴하려고 시도한 흔적이다. 이 저주에서 구원을 원했던 기록이다. 어떤 문신보다 상징이 있는 괴로움이다.

갑작스럽게 어떤 것을 잃는다면 어떤 이들은 위로를 한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다르다. 내가 앞을 볼 수 있던 시절에 나의 벗들은 좋은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나를 걱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들은 쉽게 나를 해코지했다. 나는 장난의 좋은 대상이었다. 발을 걸거나 넘어뜨리거나 나를 함정에 빠뜨리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분명 좋은 친구였던 이들이 인생의 마라톤에서 내가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지자 가증스러운 인간들로 변했다. 어떤 사소한 놀이에 있어서도 너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같이 놀 수 없겠다며 나를 자극했다. 그것은 어떤 작은 균열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그들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차이를 내게 강조했다. 영영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벽에 나는 순식간에 나락에 빠진 것이다. 지금은 우스운 이야기다. 어떤 친구가 계속해서 나를 놀렸기 때문에 나는 달려들어서 멱살을 잡았다. 그는 미안하다며 풀어달라고 하였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멱살을 풀어주자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반응하려 했지만 언제나 사각으로 달려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같이 별을 보았던, 그리고 저 별은 나의 것이라 말하던 소중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슬픈 사실은 스스로에 있어서 혐오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나는 괜찮다고 믿었지만 언제나 따라붙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감회당한 것이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고 같이 놀기엔 귀찮은 친구였으며 그들에게 민폐가 되는 존재였다. 그들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 또한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인정하며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주관보다는 남의 이야기에 더 신경을 세우는 시기였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비난을 감내하며 그들에게 의존했다. 그들의 말처럼 나는 보살핌이 필요했고 그들이 없다면 나는 외롭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또 다시 모든 비난을 짊어지고 집에 돌아 온 날, 나는 부모님에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놀고 싶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로 유치원을 가지 않았지만 또래의 친구들은 유치원을 다녔다. 내가 말한 것은 나와 비슷한 이들이 있는 유치원이었다. 내가 어떤 차이-친구들은 차별이라 말하지 않았기에-를 느낄 수 없는 곳을 원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은 그때의 내가 깨닫지 못했던 슬픈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지금 네가 있는 공동체가 어렵더라도 버티어 나가도록 힘을 기르도록 하여라.”

“저는 지금 여기가 너무 싫단 말이에요.”

“편의가 있는 낮은 공동체는 곧 계급이 되어 너를 괴롭게 만들 것이란다.”

그런 말을 하면서 부모님은 강남의 대치동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우수한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눈이 멀었음에도 정상적인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에서야 이해가 가는 사실은 내가 시각장애인들과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일반적인 사람들의 공동체와는 멀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계급이 되었다. 더 우월한 공동체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의사나 판검사가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보다 낮은 공동체의 사람들은 서로를 보면서 안주하고 경쟁하지 않아도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아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부모님이 하려고 했던 뜻은 이런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경쟁에서 벗어나 보살핌을 받지만 부모님이 원했던 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끊임없는 경쟁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흔히 뉴스에서 보도를 하는 것처럼, 장애를 딛고 일어선 영웅들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의 나는 스릴이 넘치는 취미를 찾았다. 커터칼로 손목을 긋는 것이다.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것보다 재밌는 일은 없었다. 어떤 쾌락이 동반되는 일이었다. 나는 나의 존재가 미치도록 싫었고 어떻게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쾌감을 얻었던 것이다. 나는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그 경계를 사랑했다. 비참한 나의 생에 있어서 선혈이 손목을 타고 흐른다는 것보다 삶에 의미가 있는 일은 없었다. 그것으로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고 죽음을 갈망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의 남은 일생이 괴로울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가.’

부모님은 그것을 조금 늦게 발견했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나는 벙어리장갑을 끼고서 흉터를 가렸다. 부모님은 그것을 제지했다. 처음에는 혼을 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부모님의 말을 듣고 싶지 않던 시기였다. 그 행위는 나의 원죄를 속죄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으니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의미를 팔에 새겨나가는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살폈으면 좋겠다. 그런 욕심도 조금 있었다.

지금은 다 지난 일이다.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을 지난 일이다. 그럼에도 이 흉터를 만지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쇳내와 끈적거리는 선혈을 상기시키며 나는 살아있음을 누구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단지 두려움이란 감정이 생겼다. 자살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지만 가장 슬픈 것은 천국에 가고서도 빛이 없을 것이란 상상이었다. 설령 내가 이 땅에서 남을 돕고 살아 천국을 간다하여도 그곳에 빛이 있을까? 이대로 눈이 멀어버린 채로 천국에 가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그 세상을 나는 볼 수가 없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내가 택한 것은 유예였다. 단지 이 삶이 지옥과 같다면 조금 더 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픔 없이 이루는 것은 없다는 격언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반대로 무작정 아프기만 하여도 언젠가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어떤 믿음을 사랑했다.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조금 더 밝기를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색소폰을 불면서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누고 주위의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 어떤 바이러스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에 나는 점차 작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치료하는 일이 아니다. 백신을 만드는 일도 아니고 그저 마스크를 쓰거나 집에 있으며 사람들을 차단하는 것이 남을 위한 것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내가 피해를 주지 않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떻게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지나가며 듣는 기침소리에도 예민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의심과 불신을 자아내어 간다. 우리의 연결은 사라졌다. 단지 서로를 의심하는 세상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비단 바이러스뿐만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이제 어떤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딥페이크 영상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N번방에 가입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의심한다. 나는 이 일의 해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양가감정을 느끼며 괴로워했던 시간들의 해답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었다. 나에게 착하게 대하는 이 사람이 뒤에서는 나를 욕하지는 않을지, 귀찮다고 투덜거리진 않을지 걱정하기보다 그저 이 사람을 믿어가는 연습이 필요했다. 세상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니 괜찮다는 말을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다고 믿어가는 연습이 우리에겐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에 오디오로 들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의 도시>를 떠올렸다.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는 세상이다. 다들 앞을 볼 수 있어도 마음의 눈은 멀었다. 눈이 보이는 것들은 그것만을 믿는다. 어떤 마음의 어떠한 형태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혐오하고 자해를 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사람을 조금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눈이 멀어버린 것은 저주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난다. 때로 어떤 열등감은 우월감으로 치환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열등감을 또 다른 우월감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 중에서 명백한 것은 도덕성이다. 그리고 마음의 눈이 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게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것은 결함이었다.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하다가 다시 눈물샘이 젖어간다. 초인적인 후각이 아닌 것이다. 기껏 남들 입의 냄새를 조금 더 잘 맡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우울함을 풀기 위해서 색소폰을 꺼낸다. 언젠가 끝날 이 시국을 위해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 사랑을 연주하는 방법을 잊어서는 안 되고,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차가운 금속을 어루만진다. 그래, 요즘의 세상처럼 나의 세상은 따사로워도 세상은 아직 추웠다. 겨울이었다. 나만이 따스한 자리에 있어서 잘 몰랐던 세상 저편의 이야기들이 있다. 누군가는 노동에 지쳐 쓰러지고 사회에서는 계속해서 사건 사고로 괴로워한다. 우리는 따스한 자리에 앉아서 그것을 잘 모르던 것이다. 그래, 이 차가운 금속으로 이제 사랑을 연주할 것이다. 세상, 이 어찌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노래에 담긴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요전에 사촌 형의 소개로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세상 풍파를 모르고 산 것처럼 고귀했으나 성장하지 못했다. 어떤 신체가 자라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피터팬이었다. 이미 어른이 되었으나 정신은 아직 미숙한 어린 아이였다. 카페에 도착한 나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자리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일곱, 그러나 정신은 일곱 살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앞이 보이지 않는 내게 딸의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초롱한 맑은 눈에 곧게 뻗은 코, 앵두와 같은 입술이라는 상투적인 비유를 말했다. 내가 분노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아마 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도 보았을지도 모른다. 첫째는 나와 급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유아의 정신을 지닌 여성과 사랑을 하다니 참으로 구슬픈 일이었다. 둘째는 마음의 문제였다. 그녀가 성인이어도 유아에 가깝다면 그것을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일곱 살과 사랑을 할 수 없다. 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말을 꺼냈다.

“제가 맹인이라 따님의 보호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엄마 창문이 하얘, 그림 그려도 돼?”

“그래도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저 또한 제 딸이 걱정이 됩니다.”

그것은 옳은 일이다. 똑같은 미성숙한 정신을 지닌 이들과 결혼을 하면 그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나의 부모님처럼 그녀의 어머니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자녀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창문 앞에 다가서서 입김을 뱉으며 뽀득뽀득 어떤 그림을 그린다. 나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그 생각을 꺼내는 것은 그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 아저씨 그렸어요. 어때요 멋있죠?”

선글라스를 썼음에도 그 편견이 없는 한마디가 내 심장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그녀는 일곱 살이기에, 나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 참 잘 그렸구나.”

“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해요.”

그런 상념 탓에 호흡이 어긋나서 부르던 곡을 틀렸다. 우리 모두는 원하지 않았던 길을 원하지 않는 채로 걸어간다. 그것은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가혹한 것이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전생의 업보를 지니며 살아간다. 그녀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안타깝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나와는 급이 다르다. 게다가 일곱 살이라니, 그녀가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까.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날 사촌 형과 싸웠다.

“형은 대체 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이제 너도 결혼을 해야만 해. 늦었다고.”

“일곱 살이 사랑을 알아? 말이 좋아서 결혼이지 겁탈 아니야?”

“성인인데, 생각이 어린거야 그건 문제가 아니야.”

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원하지 않는 길을 걸어온 우리에게 또 원하지 않는 길을 강요하는 부모가 있었다. 그것이 좋은 길이라며 서로를 다독이고 이해시켜나갔다. 여성의 운명은 남성보다 비참하다. 특히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모님들도 눈물을 흘리며 어쩔 수 없는 차악을 택한다. 그녀들에게 최선은 없다. 상인이 물건을 거래하듯이 그녀는 하나의 물건으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와 나는 하자가 있는 상품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하자가 조금 더 없는 편이다. 또 굳이 말하자면 우리는 떨이였다. 결혼을 약속하면 막대한 지원을 받는 대신에 짐을 넘겨서 받는다. 그것이 장애를 지닌 자식이라는 존재였다. 생각이 그것에 이르자 나는 또 역정을 냈다.

“우리도 정상적인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싶다고. 우리가 가축이야? 어디 구석에 넣어서 결혼을 시키고 자식을 만들고. 우리는 사랑할 자격도 없는 거야?”

“그게, 쉽지가 않잖아. 장애인과 결혼을 하면 보호자가 된다는 건데, 그런 고생을 누가 사서 하고 싶겠어. 너희 부모님이 내게 남겼던 이야기도 결혼하는 모습을 봤어야했다는 이야기잖아. 마땅한 사람은 없고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됐어, 끊자.”

“그래 잘 생각해봐.”

그날을 떠올리자 나는 서랍을 열고 박하사탕을 꺼냈다.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상쾌한 사탕을 입에 물었다.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들은 언젠가 모두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누구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아마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가혹한 세상의 풍파를 견딜 자녀들이 걱정되는 것이다. 그들 또한 모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최선이라는 것은 없다.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동화일 뿐이고,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사람을 찾아 사랑을 한다. 나는 그런 계급에서 하자가 있는 눈 병신인 새끼란 것이다.

참으로 짜증나는 일은 눈을 쓰지 못하는데, 눈물은 흘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차갑기보다 뜨거웠다. 색소폰을 다시 케이스에 넣었다. 그리고 누웠다. 일곱 살의 나는 앞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소중한지 잘 몰랐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있다. 모두가 시간을 돌려 과거에 어떤 선택을 하지 않을 것과 해야 했을 것을 원한다. 어떤 후회는 다른 것보다 더 뼈저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악마와 거래를 하는 것이다. 내게 신이라는 존재가 이 아픔을 주었다면 믿을 것은 악마였다. 그를 불러내어서 내 눈이 낫는 대가로 어떤 것을 바치기를 원했다. 모두가 미래를 바라보기보다 과거를 찬미한다. 그때를 추억하며 삶을 살아간다. 때로 그것은 원동력이 되고 현재라는 시간에 대칭되어서 미래와 닿아있다. 그러나 내게는 이것이 마치 저울과 같아서 현재라는 중심을 두고 한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과거에 나는 묘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빛의 밝음과 어두움을 알 수 있었고 칠색 크레파스를 썼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십이색깔의 크레파스를 썼고 시력을 잃기 전에는 이십사색의 크레파스를 썼다. 점점 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색채를 늘려가는 중에 나는 그것을 잃었다. 나는 매일 시력을 잃기 전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은 이제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충분하지 않고 어떤 묘사가 과거라는 저울에 짓눌려있는 것이다. 한편 반대편의 저울에는 묘사가 없다. 무게라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기의 무게와 거의 비슷하여서 보통의 사람은 알 수 없는 공허에 가깝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처음의 나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볼 수 없기에 찍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남기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앞을 볼 수 없어도 세상은 앞을 보고 있기 때문이고 앞을 향해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겨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다. 그곳에 광명이 있었다. 나는 얼굴을 쓰다듬는다. 세밀한 촉각으로 코를 만지고 입을 만진다. 볼을 잡아당기고 머리를 쓸어내려본다.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거울을 보던 어린 날의 내가 어떻게 성장했을까. 부모님에게 내가 꺼내던 단골 질문은 이것이었다.

“엄마 나는 어떻게 생겼어요?”

“잘생겼지! 우리 아들.”

“얼마나요?”

“잘생긴 아빠를 닮았지.”

“묘사를 해주세요.”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네. 턱은 가늘어서 V라인이 있고 입술은 조금 크지만 코는 작고 분명해. 눈은 옆으로 조금 째져서 약간 무서워 보이는데, 눈썹이 선해서 인상이 되게 착해 보여 이마가 넓어서 복도 많을 것만 같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볼 수 없는 거울 앞에서 작게 말했다.

“빛이 있으라.”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거대한 외로움이었다. 하늘을 원망했다. 어째서 그는 세상에 불완전한 존재를 만들었는지 원망했다. 빛이 있으라고 말한 그의 손길에서 벗어난 나와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언제나 내가 저주받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늘이 만든 이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없다는 생각 탓에 나는 어린양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다시 손목의 흉터를 만진다. 단지 떠올리는 것이다. 애초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면 더 괜찮았을 것이라고. 더 나아가서 어쩌면 애초에 태어난 것이 잘못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상념에서 전화가 울린다. 저번에 만났던 그녀의 어머니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 나는 참으로 심심하게 지낸다고 답했다. 그녀는 갑자기 등산을 가자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비웃었다. 이런 나를 데리고 등산을 가겠다는 생각이 한심했다. 그녀가 말한 산은 동네의 뒷산이었다. 두 시간을 오르면 오를 수 있는 산이지만 내게는 반나절이 걸릴 것이다. 그녀는 산행을 떠나면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내게는 사촌 형과의 관계 역시도 있다. 그렇기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고 어느새 나는 옷장을 열어서 편한 옷을 꺼내고 있었다. 대단한 여행은 아닐 것이지만 기대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도전을 오랜 시간동안 갈구했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조작법은 잘 모르지만 그것을 만지면 그것에 담긴 사진들을 떠올린다. 부모님과 여행을 갔을 때의 사진들을 떠올리고 추억들을 더듬는다. 이제는 휴대폰의 카메라가 훌륭하지만 나는 그런 좋은 휴대폰을 쓰지 않는다. 최근의 전화는 눈을 감고도 쓸 수가 없다. 나는 이 모두에 질리는 것이었다. 언제나 익숙함을 찾았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이런 경험을 원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나를 설득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적당하게 거절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기분이 나쁘지 않게 딸과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다.

오래된 휴대폰의 버튼을 조작하면 현재 시각을 알려준다. 나는 5분 일찍 도착했고 멀리서 그녀가 나를 찾아 불렀다. 그녀는 금방 나의 곁으로 왔다.

“자네 술 좋아해?”

“아니요.”

등산로의 입구에서 그녀는 인사도 없이 내게 물었다. 어떤 사람은 나와 같은 비극에 놓이면 술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 믿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몸에 대해서 더 예민해지는 것이다. 커피조차도 몸의 변화 탓에 마시지 않는다. 카페인으로 심장이 한껏 비대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코를 막으며 소주를 삼키려 애썼다. 그러다 코를 다시 쓰는 것이다. 그러면 입안에 담긴 소주향이 역류해서 코로 들어갔다. 나는 그것에 다시 코를 손으로 움켜쥐고서 비참한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술을 권했다.

“나는 이것이 없으면 못살아.”

나는 조용히 지팡이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앞으로 갈 길을 부탁한다는 것이다.

“너만이 세상에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해?”

그녀는 내가 아래 부분을 쥔 지팡이의 윗부분을 쥐며 앞으로 짚어나가곤 말했다.

“이 엉터리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술뿐이야.”

“자식의 아픔은 부모의 아픔이기도 하니까요. 이해합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낡은 운동화의 마찰로 아스팔트를 넘어서 흙을 밟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저도 그런 생각을 자주합니다. 저는 상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재미가 있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묘한 따스함이 있어서 비웃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전생에 나는 말이야. 어떤 사람들을 외면했다고 생각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했던 것이지. 어느 누가 나의 앞에서 괴로워하고 도와달라고 미친 듯이 울면서 부탁을 했는데, 나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그를 무시했던 것이지. 그 원망으로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내가 여기서 받지 못한 도움을 다음 생에서 받아내고야 말겠다.”

그녀의 입에서는 알코올향이 났다. 그것은 조금 슬픈 향기다. 우리는 그저 걸었다. 약간의 경사를 올라가는 것이 느껴지고 나는 첫 산행에 재미가 붙었다. 바람이 초목의 향기를 빌려서 내게로 다가왔다. 마스크를 뚫고서 느껴지는 향기에 취하다가 그녀가 입을 열 때의 지독한 향기에 다시 취했다. 술에 취한 채로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최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여기를 오르는 것일까.”

그녀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신을 믿어?”

“한때는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성당을 가긴 하지만 습관이에요.”

마음의 눈으로 왼편을 바라보자 그녀는 우울한 눈매를 지니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사람의 인상은 변한다. 매일 울다보면 울상이 되는 것처럼 그녀는 목소리에 슬픔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팡이를 중심으로 우리는 이어져있었다. 그녀의 감정들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손을 마주 잡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 나도 믿었지. 이 불행한 저주에서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했어.”

나 또한 그랬다. 어떤 간절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불신으로 변했다.

“신이 있다면 왜 우리를 창조했을까요. 누군가의 밑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몇 명들 정도는 필요하다고 봤을까요? 우리 같은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낫다며 위로할 수 있도록 만들기를 원했을까요? 신이 진정으로 전지전능하다면 세상에 불행은 없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신은 우리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불완전하게 태어나서 완전한 남들보다 뒤떨어지고 괴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할까요. 보이지 않아. 들리지가 않아. 사지가 멀쩡하지 않아. 정신의 성장이 멈췄어. 왜 세상에 우리만이 이렇게 부족하게 태어났는지. 이 모두가 신의 계획이라면 어째서 우리가 그 모든 저주를 감내해야만 하는지.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우리는 지팡이를 사이에 두고서 왼편과 오른편으로 존재했다.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행복을 찾아. 너는 앞이 보이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겠지, 그런데 세상 대부분이 앞을 보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아. 볼 수 있다는 것에 비극이 있다고 생각해봤어? 내 딸의 모든 것을 나는 볼 수가 있지. 성인이여도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유아기의 행동들을 천천히 눈에 담는 거야. 그 모두를 바라보는 것은 지옥이야.”

“그 말씀은 차라리 보지 못하는 것이 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세상에 어떤 비극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야. 우리 모두가 볼 수 있지만 눈을 감아버리는 비극들이 있어. 사람들은 슬픈 것보다 유쾌한 것을 좋아하고 중요한 진정으로 약한 자들 앞에서는 눈을 감는 습관이 있어. 애초에 그 모두를 볼 수 없었다면 마음이 조금 더 편했을 것이라 생각해.”

“당신은 진정으로 이기적이었군요. 어쩌면 당신이 말한 전생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지팡이로 앞을 짚어나갔다.

“그래, 신을 믿었지. 이 비극에서 나를 구원할 것이라 믿었어. 그런데, 그런데, 정말 무기력해. 나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는 사람이야. 그저 눈을 뜬 채로 비극을 구경할 수밖에 없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있잖아. 나는 신이 아니잖아. 대단한 위인도 아니야. 남의 어떤 불행을 치유할 수가 없어. 그저 바라보는 거야. 누구도 도울 수가 없는 일이야. 나도 남들처럼 눈을 감고 싶지만 나는 이 비극의 최전선에 있어.”

그녀는 잠깐 쉬더니 목을 축였다. 꼴깍이는 소리는 소주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이것에 환장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 무기력이야.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눈으로 모든 비극을 보면서 마취라도 해야 세상이 옳게 보이는 거야. 그리고 믿는 거지. 아, 오늘도 세상은 완전해. 세상에 불행 따위는 없어.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어. 지금의 내가 행복한 취기에 둘러싸여서 세상의 모든 불행을 물리친 거야.”

우리는 계속해서 지팡이의 힘을 빌려 앞을 나아갔다. 나는 이제 신을 믿지는 않지만 지팡이만은 믿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좋은 도구였다. 우리가 앞을 나아가게 만드는 물건이었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매개였다. 적막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발칙한 생각을 했다. 이 지팡이가 신의 선물이란 것이다. 서로를 이어주고 앞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불행하여도 이 앞에는 더 높은 경사를 따라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고 믿어가는 것이다. 어떤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해결이 아니라, 의지를 주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앞을 보는 것은 부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사이에 행운이 있지. 때로 눈을 감아버리고 싶지만 눈을 뜨면 딸내미는 낙서를 하고 있는 거야. 엄마를 그린 것이지. 수십 장이 있어. 모두 앨범에 보관하는 거야.”

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사촌 형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성인일까요 어린이일까요.”

“성인이지. 성인이겠지?”

그녀는 확신하지 못하며 말을 꺼내다 내게 되물었다.

“저는 어린아이와 사랑을 할 수 없어요.”

“일곱 살은 참 다행인 나이야. 화장실도 홀로 갈 수 있고 말하는 것이 조금 유치할 뿐이지 의사소통도 가능해.”

“그 아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긴 할까요?”

“사랑은 배우는 거야. 학습할 수 있어.”

“만일 원하시는 사랑이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딸아이가 너의 눈이 될 수 있다고 믿어.”

“대답을 회피하고 좋은 결말로 포장하려 하시는군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서로 피차 불행한 존재잖니. 그럴수록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보기 좋아.”

그녀는 다시 가져온 작은 텀블러를 열어 꼴깍였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어떤 인간들은 감히 하늘을 두고 사디스트라고 말하지 언뜻 보기엔 그렇겠지. 높은 자리에서 우리들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사랑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 신은 사실 지독한 마조히스트였던 거야. 남을 괴롭히기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극복할 열쇠도 함께 주시지. 정말 사디스트라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열쇠 따위는 없었을 거야. 위기에 빠진 인간들이 신을 부르짖으며, 자신을 욕하는 것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이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사랑스러워 하는 거야. 그리고 자신의 사람이 자신이 내린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누구보다 원하는 거야. 스스로 패배했다고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 신은 마조히스트라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가 무너지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존재야. 그렇지 않다면 시련을 벗어날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야.”

“신성모독이 아닐까요?”

“글쎄, 나는 신을 믿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말이야.”

“자신이 욕을 먹는 것을 즐거워하신다니 믿기 어렵군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 바이러스에 취약한 종교계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지탄받는 것을 즐기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신을 원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이 세상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겠지. 신은 우리들이 당신께 욕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거야.”

“재밌는 생각이네요.”

“신은 참 딱하고 불쌍해 보여. 참으로 외로워 보여.”

“감정이입하시는 건가요?”

“그럴지도 몰라.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고 세상을 굽어 살핀다면 그럴지도 몰라. 어떤 희열을 느끼기엔 모든 욕망을 초월했고 재밌는 일이란 없는 것처럼 보여. 유일한 재미는 내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창조물들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지. 신은 어떤 고귀한 지식인일지도 몰라. 그들은 자신의 의견이 무너지는 것을 즐거워하거든.”

“하늘은 우리를 통해서 유희를 즐기는 것이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야. 신부님 같은 사람들에겐 말하지 마.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낼지도 몰라.”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정상을 밟지도 못했고 작은 헛걸음을 했던 것만 같다. 그녀는 지친다며 돌아갔고 나 또한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유쾌하지 않았다. 우리는 많은 물음을 꺼냈지만 하늘에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지팡이가 조금 무거웠다. 그 아이를 상상하고 또 사랑을 하려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확실한 기억이 일곱 살이었다는 것이 또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날 소주를 마셨다. 신은 내게 또 다른 원죄를 주려고만 한다. 사랑을 모르는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치라 한다. 그 아이는 괴로운 세상에서도 아이처럼 해맑다. 이 무거운 심장이 가벼운 심장에게 말을 건다. 나는 지팡이를 잡던 그 어머니의 손을 기억했다. 따사했다.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햇살이 내리쬐는 것처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닐까. 여러 문답을 거치며 나는 비로소 그녀를 사랑했다. 자신의 딸을 부탁하는 그녀의 걱정들을 사랑했다. 많은 문답을 거친 나는 그녀를 술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싶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고만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비록 불완전한 내가 어떤 보호자가 될지 모르겠으나 처음 산행을 나설 때의 그녀가 이끄는 길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정신이 어린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마치 죄악인 것만 같았다. 그녀를 사랑하여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녀의 어머니인 그녀를 또 사랑하는 것이고 그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진정한 죄악이란 그녀와 그녀의 아픔을 보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통해서 그녀를 사랑하고 또 그녀와 그녀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죄악이라고 사람들은 믿을 것이지만 그녀를 위하고 또 그녀를 위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우리는 침묵했다. 그리고 봄이 왔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그녀는 내게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다. 나는 그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저녁의 카페에서 나는 그녀와 딸을 만났다. 그리고 어깨에 들고 온 색소폰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게 그것을 열라는 눈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나는 케이스를 열었다.

“우와 황금이다.”

“황금은 아니란다. 꼬마 아가씨.”

“그래도 그렇게 믿을래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색소폰을 불었다. 저녁에 어울리는 야상곡이었다. 카페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처음에 날카롭다가도, 천천히 온화한 시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연주에 집중을 하다가, 그녀의 딸이 갑자기 말했다.

“밖에서 불러요. 우리.”

그녀의 딸은 신이 난 것처럼, 나의 손을 잡고 나갈 것을 재촉했다. 나는 그녀와 팔짱을 낀 채로 거리의 악사가 되어서 길을 거닐었다. 그녀는 즐겁다는 듯이 옆에서 콧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온기는 오선지에 스타카토를 그리는 것만 같아서, 사근사근하게 콧노래에 맞추어서 나의 색소폰 소리도 스.타.카.토 했다. 어쩌면 심장의 박동인지 몰랐다.

공원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하늘에 별이 많아요. 아저씨. 움직이는 별도 있어요?”

“아니, 그건 아마 비행기가 아닐까?”

“아저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존재하는지 어떻게 아시나요?”

“그렇게 깊게 생각한 적 없어. 과거의 나는 존재했다는 것을 믿었으니까.”

“우리를 어떻게 느끼나요?”

나는 갑자기 속에서 눈물이 차오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씩 스타카토처럼 들쑥날쑥한 심장의 색소폰 소리는 작아졌다.

“나는 믿는 거야. 볼 수 없어도, 결국 믿는 거야.”

“그럼 아저씨. 우리 소원을 빌어요.”

“아가씨, 그건 떨어지는 별똥별이 아니라, 비행기라니까.”

“사실 하늘에 별은 북극성 하나만이 빛나고 있었어요.”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이 여성이 나를 속였다는 것에 화가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어요. 우리 거기에 소원을 빌어요.”

“비행기에 왜 소원을 비는 거야?”

“아저씨는 하늘에 별이 많다고 믿었잖아요. 저도 저 비행기를 믿어요.”

“비행기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

“우리가 믿는다면, 소원을 이루어 줄 것만 같아요.”

나는 차오르는 눈물에 거리에서 주저앉았다.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개밥바라기구만 별 아이다.”

내가 믿는다면, 그것은 나의 별이었다.

아가씨는 나의 옆에서 조용히 잠에 들었다. 이제 들리는 것은 풀벌레와 작은 숨소리만이 있었다. 멀리서 사람의 발자국이 들렸다. 아가씨의 어머니는 술이라도 마신 듯 조금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비틀거리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뒤에서 맥주를 하나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었어.”

“따님이 저를 속였군요. 많은 별이 빛난다고 했었어요.”

“그걸 믿었어? 서울 한복판에서 별이 밝게 빛난다고?”

“저도 참 미련한가 봐요.”

“믿는 것이 당연하잖아? 왜냐하면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별빛이라도 계속해서 밝게 빛나고 있지 않아? 보이지 않는다고 그 존재를 믿지 않겠다고?”

나는 그녀의 딸에게 손을 뻗어서 손을 잡았다.

“그래요. 보이지 않아도 밝게 빛나요. 따뜻하고. 아름다워요. 별을 믿어요.”

“하늘은 시련만을 주지 않아. 그것을 극복할 열쇠도 함께 주시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숱한 고민이 있었고 나는 결국 사랑을 하기로 다짐했다. 어쩌면 그것이 죄악일지라도. 그녀는 나를 꽤 잘 따르고 가끔씩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저씨라 부르다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등 기분에 따라서 호칭이 변했다. 그녀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으면 그녀가 세상을 말하는 단어들이 사랑스러웠다. 그래, 오늘처럼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날에 그녀는 손을 펴고 거리를 걷는다고 말해주었다.

“아저씨, 이렇게 걸으면 꽃님이 내려.”

그러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아보는 것이다.

아마도 주님은 내게 이번 생에도 죄를 짓게 만들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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