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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n 26. 2020

일로 만난 사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직장동료는 '일로 만난 사이'니, 딱 거기까지가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동료와 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은 회사생활에 전혀 좋을 게 없다는 게 정설인 것처럼.  사람을 너무 좋아해 쉽게 믿고 쉽게 따르는 나는 명심하고 명심했다. 직장동료로서 역할에만 충실해야지 다짐하면서. 쿨하게! 질척이지 않게!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런 적정선을 지키기가 쉬운가. 많은 사람들을 겪어 내다 보면 정말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도 있지만 유독 땡기는, 내 사람 같은 동료도 있게 마련이다.

나에겐 노을이가 그랬다. 아버지께서 저녁놀을 보고 지어 주신 예쁜 이름을 가진 노을이는 같은 프로젝트의 구매팀 사원이었다. 첫 출근을 해서 쭈뼛거리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타 사업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본인도 같은 사업부 출신이라며 잘 지내보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노을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성격도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공감대가 많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 생기는 고민을 넘어 개인사도 공유하고, 퇴근하고도 함께 추억을 나누게 되었다. 나는 문득문득 노을이와 나누는 수많은 대화들 속에서 동료애인지 우정인지 모를 감각을 느꼈다. 후에 노을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되면서, 나는 그게 우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다. 우리도 어쨌든 '일로 만난 사이'니 퇴사를 하면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노을이와 좋은 친구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노을이는 그사이 예쁜 딸을 낳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는  지역으로 이직을 하면서 자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노을이를 떠올리면 매우 따뜻한 기분이 든다. 이름이 주는 따뜻함도 있겠지만 어쩌면 짙은 회색빛 같은 사회생활에서 만난 친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로 만난 사이일지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의 친구,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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