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럽게,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연말연시에만 작동하는 DNA가 있는 것인지 각성 끝에 1년을 꿀꺽 삼키듯 계획을 세워버리고야 만다. 거룩할 지경의 마스터 스케줄이다.
다만 실천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것이 탈이다. 계획이 거창하다 보니 실적이 너무나 초라하다. (특 : 실적 강요한 사람 없음.) 알록달록 꽉 채운 1월의 위클리페이지가 듬성듬성 이가 빠지고 뭉텅뭉텅 비어버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매일 정량의 하루를 보급받았지만 소화력은 점점 떨어지는 것만 같다. 똑같이 열심히 산 하루였다 해도 기록이 안된 날은 아무래도 밀도가 떨어져 보인다. 연초에는 대문자 J!!!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쪼그라들어서 끝내 소문자 j...로 어물쩍 끝나버린다. 용두사미도 디크레센도도 내 플래너 앞에서는 맥을 못 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몸을 일으켜 다음 해 플래너 쇼핑에 나선다. 꽉 채운 내년을 보내리라 다짐하면서. 나란 인간의 (플래너) 욕심은 끝이 없고,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세우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새 플래너를 앞에 두고 지난해 플래너를 레퍼런스 삼아 몇 장 뒤적여 본다. 김신지 작가는 기록이란 하루치는 시시하지만 1년이 쌓이면 귀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쌓이지 못하고 툭툭 끊어져 나간 이 플래너도 귀해질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작년의 내가 쓴 괜찮은 메모들을 몇 개 발견하고 끝내 버리지 못하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기로 한다.
삶은 계속되는데 기록은 잇대어지지 않는 덕에, 매년 초짜 플래너 유저의 마음으로 Personal Information에 이름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