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경기도를 '흰자'라고 말한다.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에워싼 모습을 떠올리니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 매일아침 노른자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이른 6시, 서울로 출근하려고 줄 선 사람들은 언 손과 귀를 녹이며 곧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연식이 오래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 좌석 안쪽으로 찬기가 샌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복도 쪽 좌석은 추울수록 인기가 많다.경부고속도로에 바퀴를 올리면 너나 할 것 없이 스르륵잠이 든다. 한참을 직선으로 달리다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커브가 느껴지면 동물적 감각으로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다.
이렇게 하루에 3.5시간이다. 한 달이면 2.7일, 1년이면 한 달이훌쩍 넘는 시간이다.생활의 20%를 길에서 보내야 한다니 어째 좀 서글프다.
흰자에 사는 이상 통근시간을 줄일 수는없는 일. 그래서 마음을 바꿔먹어 보기로 한다. 통근시간을 고단함의 시간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으로 바꿔보기로 한다. 길 위의 시간도 내 시간이니까.워킹맘으로서 간절히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에 내심 반갑기까지 하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변화가 생겼다. 유익하지도 않은 조각영상을 보거나 기억에도 나지 않을 피드를 스크롤하는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것이다.
이후로 제법길 위에서 온전한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책을 읽기도 하고,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그림 그리기는 조금 어지럽긴 하다.) 마음에 바늘 하나 꽂을 만한 여유도 없는 날에는 스스로를 재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길 위의 시간들을그러모아 부지런한 흰자의 시간으로 채워가기를 다짐하며, 오늘도 노른자로 출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