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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Aug 03. 2020

나의 재택근무기

근무복은 수면바지

코로나 19  집단감염으로 모두 혼란에 빠진 3월, 내가 속한 조직도 약 3주간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조직 내 확진자가 발생하진 않았었지만, 베타 테스트 성격의 재택근무가 시행된 것이다. A, B, C 조를 구성하여 한조는 재택근무, 나머지 두 조는 출퇴근 근무를 하면서 대면 기회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마지막 조에 배정되어 3주 차 재택근무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시국은 걱정이 되었지만, 새로운 근무방식이 너무 궁금해서 그만..)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상황에만 국한된, 재택근무의 실체와 장단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1) 업무 자리 세팅

처음 마주한 문제는 내가 원룸 거주자이며 책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가볍게 요가매트와 밥상을 펼쳐서 간단히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펼친 밥상 위에 노트북을 펴고, 인터넷선과 전원을 꽂은 다음 업무노트와 펜도 준비했다. 업무가 시작되고 두 시간쯤 지났을까, 엉덩이가 납작해지는 느낌이었다. 제아무리 푹신한 요가매트라 한들 그 위에서 아빠 다리로 장시간 앉아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침대에서 이불과 쿠션을 끌어내려 푹신함을 보완해보려 애썼지만 회사의 등받이 의자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2) 출근과 퇴근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밥상 근무 세팅을 마쳐도 늘 시업 시간인 8시가 되지 않아 뿌듯했다. 출근 방법은 팀장님께 당일 재택근무 계획서를 송부하고 승인을 받는 것이었다. 사원증 태깅하는 것 대신 메일로 시업 승인을 받는 거랄까. 평소와 같이 메일들을 읽고 회신하거나 무시했다. 퇴근도 마찬가지로 재택근무일지를 제출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출퇴근이 1초 만에 가능해서 좋았지만 퇴근을 해도 밥상 위에 펼쳐진 노트북을 보면 업무 생각이 나서 이튿날부터는 퇴근과 동시에 노트북은 옷장으로 넣어 버리고 밥상도 접어버렸다.


3) 나만의 탕비실

출근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면서 출근길에 한잔씩 사가던 커피 수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재주가 없는 나는 콜드 브루를 주문하여 매일 아침 더치 라테를 즐기곤 했다. 문제는 커피만 주문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신선한 과일, 각종 과자와 차들로 나만의 탕비실을 채워갔고, 채우기 무섭게 비워져 갔다. 직원은 나 하나뿐인데 말이다. 회사에서는 12시에 맞춰 허기가 지곤 했는데, 재택근무를 시작하고서는 이상하게도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팠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냉장고가 지척에 있었다. 재택근무 일주일 동안 늘 배가 불러있었던 기억이다.


4) 점심시간은 또 점심시간 인지라

탕비실을 털어먹는 것과는 별개로 점심시간에는 또 딱 맞춰서 점심을 챙겨 먹었다. 12시 01분도 허락지 않은 12시에. 오전 오후 일과시간에도 풍족하게 먹고 있는 터라 간단하게 차려먹었다. 간단하게 때우는 점심이라 할지라도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까지 하니 1시간 점심시간이 빠듯했다. 사무실 근무였다면 주는 대로 먹고 나면 30분 정도는 유튜브를 보거나 잘 수도 있었는데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진짜로 '배부른' 소리다 싶다.


5) 멜론과 카톡

어차피 나 혼자뿐이니 이 정도 근무태만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크게) 음악 듣기'와 '(눈치 안 보고) 카톡 하기'였다. 일주일 내내 멜론에서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흥겹게 들으면서 업무를 했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니 업무효율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텐션이 떨어지면 괜히 신나는 댄스음악을 재생시켰고, 집중해서 메일을 써야 할 때면 '공부할 때 듣는 음악'같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키곤 했다. 반대로 타인(특히 팀장님)의 시선에서 벗어난 나는 사적인 카톡이 잦아졌다. 특히나 일을 쉬고 있는 친구라든지, 육아를 하고 있는 친구들과의 연락이 빈번해졌고 이는 음악 듣기와 다르게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공신이 되었다. 진종일 사람도 마주하지 못하고 메신저나 카톡, 잠깐잠깐의 통화로 업무를 보다 보니 외로웠노라(?)고 소심히 항변해 본다.


3개 조 교대 재택근무 이후로 재택근무는 재시행되지 않았다. 회사는 재택근무가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다. 다소간 아쉽기도 하지만, 나같이 자주적이지 못한 직장인에게는 출퇴근 근무가 더 적절한 것 같다. 나란 사람은 감시가 싫지만, 감시 없이는 일하기 싫으니, 감시 좀 해달라는 이중 모순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출퇴근 근무 시 자연스럽게 셋업 되는 루틴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재택근무를 하며 알게 되었다.


근무복은 일주일 내내 수면바지였다.(출처: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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