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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an 27. 2022

회사원의 경조사

알리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경조사.

영어로는 Family occasion. 대개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가족 본위의 경사/조사에 해당하는 행사들을 일컫는다.

가족 본위의 '사적'인 행사이기에 철저히 '공적'인 사이인 회사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초대하고, 대접하는 일련의 상황들이 나 같은 내성적인 회사원에게는 큰 부담이기도 하다.


[청첩장 끝을 매만지며,]

나의 경우, 이직 후 9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1년도 만근 하지 않는 직장에서, 마스크로 인해 반쪽짜리 얼굴밖에 모르는 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동료가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회식은 고사하고, 각자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때였고,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탓에 동료들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뻘쭘함을 이기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 경사 해당 월이 되어서야 회사와 팀원들에 알렸다. 청첩장 전달을 앞두고 불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청첩장 끝을 매만지고 매만졌던 기억이 난다. 결혼식 후 이어질 경사 휴가 부재를 짐짓 미안해하며 부자연스럽게 청첩장을 건네드렸던 기억이다.

진심으로 회사 몰래 결혼하고 싶었으나, 상조금과 5일의 경사 휴가와 화환이 필요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다. 이 모든 과정은 전자 결재를 통해 파악되고 확인되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결혼 공지를 올린 후에야 공식적인 예비신부 회사원이 될 수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럼에도 동료와 소속이 있다는 것은.]

전 직장에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오랜 지병으로 돌아가셔 조용히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결근을 휴가로 대체해야 했고 휴가 전결권자와 서무 동생에게만 소식을 전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에 임했다. 기복 휴가와 복지 신청을 마쳤다는 알림 문자가 온 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복지팀과 제휴된 상조업체에서 장례용품을  한가득 가지고 빈소에 찾아왔다. 깊게 인사를 한 담당자께서는 차분히 용품들과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회사 이름이 적힌 종이컵이 나에게 큰 소속감과 위로를 전해줄 줄이야. 그전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날 저녁, 한 무리의 회사 잠바를 갖춰 입은 팀원들이 빈소로 들어왔다. 퇴근 후 꽤 먼 거리인데도 다 같이 한달음에 와주신 것이다. 예상치 못한 조문객들이었지만, 어쩐지 반갑고 든든했다. 상복을 입고 맞이한 그들은 회사원 이재언이 아닌 다정했던 나의 할아버지의 외손녀 재언이를 위로해 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값졌다. 이때의 일은 나의 가치관에도 변화를 주었다. '내 가족'의 일에 회사 동료들이 찾아오는 것이 언뜻 불편하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동료와 소속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나였다.(과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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