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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Nov 24. 2021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코트의 나비효과

날이 쌀쌀해져서 옷장 속 겨울 옷들을 살펴본다.


분명, 작년에도 잘 입고 다녔을 텐데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


이 코트는 결혼할 때 산거고, 이 코트는 산지 몇 년이나 되어 유행이 지난 것 같고


니트는 보풀이 일어나 있고 치마는 다 마음에 안 든다.


거칠게 옷걸이를 제치다가 갑자기


'뭐야,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 남들은 비싼 코트도 턱턱 잘도 사더구먼'이라며 심술을 부린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아무도 내가 옷을 사는데 방해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스스로 한 선택이었고 나름대로 아이 키우며 아낀다고 아끼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건조기와 로봇 청소기를 산 것도 최근이었고


지금껏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나 아이를 봐주시는 분을 따로 부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도 아니고 거의 집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은 결국 나의 몫이거나 혹은 남편의 몫이었다.



그냥, 열심히 산다고 생각한 거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낸 세월인데


이런 결정을 한 나에게 갑자기 화가 난다.


'뭐 얼마나 대단한 부자가 되려고 이런 궁상이야.'


그동안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한 순간에 '궁상'으로 변했는지.



사실, 알고 있다.  나를 심술궂게 만든 한 마디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한 마디가 머릿속에 맴돌며 '뭘 그리 열심히 살아'라며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막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막 사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이 어찌나 웃기는지. 

우선 이 옷 저 옷을 몇 개 사기 시작했다.

그 동안 옷을 안 산 것이 마치 나를 대접하지 못한 것이나 되는 것인 마냥.

뭐 그리 비싼 옷을 사지도 못하면서 나 혼자 또 '막사는 것'을 또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몇 개의 택배가 줄지어 온다.


'그래, 내가 이 정도 사도 되지 응? ' 이라며 나에게 혼잣말을 한다.


며칠 택배 세례를 하고 나니 이것도 못하겠다.


우선 사는 것, 고르는 것도 힘들다.


또 나만 힘든 것 같다는 스스로의 연민? 의 감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런 감정을 한가로이 느낄만한 틈도 없었다.


나 혼자 막 사기로 결정했고 고작 택배 몇 개 시켜보고 또 나 혼자 그만한 것이다.


나름 큰 마음의 변화였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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