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나비효과
날이 쌀쌀해져서 옷장 속 겨울 옷들을 살펴본다.
분명, 작년에도 잘 입고 다녔을 텐데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
이 코트는 결혼할 때 산거고, 이 코트는 산지 몇 년이나 되어 유행이 지난 것 같고
니트는 보풀이 일어나 있고 치마는 다 마음에 안 든다.
거칠게 옷걸이를 제치다가 갑자기
'뭐야,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 남들은 비싼 코트도 턱턱 잘도 사더구먼'이라며 심술을 부린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아무도 내가 옷을 사는데 방해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스스로 한 선택이었고 나름대로 아이 키우며 아낀다고 아끼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건조기와 로봇 청소기를 산 것도 최근이었고
지금껏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나 아이를 봐주시는 분을 따로 부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도 아니고 거의 집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은 결국 나의 몫이거나 혹은 남편의 몫이었다.
그냥, 열심히 산다고 생각한 거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낸 세월인데
이런 결정을 한 나에게 갑자기 화가 난다.
'뭐 얼마나 대단한 부자가 되려고 이런 궁상이야.'
그동안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한 순간에 '궁상'으로 변했는지.
사실, 알고 있다. 나를 심술궂게 만든 한 마디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한 마디가 머릿속에 맴돌며 '뭘 그리 열심히 살아'라며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막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막 사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이 어찌나 웃기는지.
우선 이 옷 저 옷을 몇 개 사기 시작했다.
그 동안 옷을 안 산 것이 마치 나를 대접하지 못한 것이나 되는 것인 마냥.
뭐 그리 비싼 옷을 사지도 못하면서 나 혼자 또 '막사는 것'을 또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몇 개의 택배가 줄지어 온다.
'그래, 내가 이 정도 사도 되지 응? ' 이라며 나에게 혼잣말을 한다.
며칠 택배 세례를 하고 나니 이것도 못하겠다.
우선 사는 것, 고르는 것도 힘들다.
또 나만 힘든 것 같다는 스스로의 연민? 의 감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런 감정을 한가로이 느낄만한 틈도 없었다.
나 혼자 막 사기로 결정했고 고작 택배 몇 개 시켜보고 또 나 혼자 그만한 것이다.
나름 큰 마음의 변화였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