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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Feb 07. 2022

저녁 수다의 힘


말하기가 가장 즐거운 순간은 함께 수다 떠는 시간이 아닐까요? 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쓸데가 없는 말이라는 이 수다가 사실은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말은 일부 상황에서는 분명 맞지만 가족과의 대화는 말이 많아야 쓸 말도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끼리 어떻게 딱 용건만 간단히, 할 말만 명료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사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에 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고 그날 하루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지냈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를 살필 수 있는 대화는 수다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중 저는 특히, 저녁 수다, 잠자리 수다를 추천합니다.


잠자리 수다가 필요한 이유



저녁은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 마음을 터놓기 좋은 시간입니다. 언어의 교류인 동시에 정서적인 교류가 가능한 시간입니다. 아이의 언어, 생각, 감정까지를 함께 연결하여 발달시킬 수 있는 귀한 교육의 시간이자 부모에게도 한없이 귀한 힐링타임입니다.


보통은 아이가 어릴 때 잠자리 독서 많이 합니다. 자기 전에 부모님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잠자리 독서를 하는데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책을 읽어주기보다 그 시간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학습적 부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독서와 할 일을 스스로 계획 세워 하기’라면 정서적 부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이 저녁 수다입니다.


아이들과 저녁 수다를 시작한 건 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정말 잠을 잘 안 자는 아들과 살고 있습니다. 불을 끄고 누워도 한 시간 이상씩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입니다. 노래도 불러보고 책도 읽어줬지만 한 시간 이상이 넘어가면 저도 모르게 제가 화를 니더라고요. 이런 아이의 성향에 제 미안한 마음이 더해졌습니다. 자꾸 큰아이에게는 미안할 일이 생기더라고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항상 둘째아이보다는 큰아이에게 좀 더 기준과 눈높이가 높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언젠가 “너는 이제 다섯 살이나 되었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돌도 안 된 둘째 아이를 함께 키울 때라 많이 힘들 때였습니다. 다섯 살이면 충분히 말도 하고, 걸어 다니고, 밥도 먹을 수 있는데 왜 징징거리고 왜 혼자 못하냐며 타박하는 것이었죠. 겨우 다섯 살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사실 이젠 먹는 것 입는 것 말고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 표현이 무엇인지 더 잘 알 나이잖아요. 그래서 잠을 잘 안 자는 아이와 미안한 엄마가 저녁에 만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냥 제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둘째아이가 잠을 잤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이와 둘이서 둘째아이를 재우며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하다 미안해서 울고, 다음 날 일어나서 또 뭐라 하고, 저녁에 다시 누워 또 미안하다고 하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다중인격인지 의심스러웠고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육아 죄책감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은 진심이 통했는지 아이는 어느 순간 징징거리지 않고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긴장도와 불안도가 높아서 엄마를 걱정하게 했던 아이가 참 덤덤하게도 본인의 마음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낮에 들었으면 그 이야기조차도 걱정할 저인데 잠결이었는지 한없이 너그럽게 아이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안아주었습니다. 옆에 있는 것을 알고 느껴지지만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지 않고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진솔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 잘 자던 둘째 아이도 말을 하기 시작하니 그들은 정말 수다쟁이가 되어 밤새 이야기할 기세로 눕습니다. 각자 잘 방이 따로 있어도 우선 누워 있다가 가라며 저를 붙잡습니다. 때론 귀찮고 힘들 때도 있지만 사실 저도 이 시간이 행복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잠자리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


잠자리 대화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불을 끄면 함께 눕고, 둘째 아이가 첫 질문을 던집니다. 늘 똑같습니다. “엄마, 오늘 하루는 어땠어?” 저는 이 질문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소극적인 참가자인 셈입니다.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형아들이랑 뭐 했어? 오늘 형아들 학교 오는 날이었어?”와 같은 추가 질문을 합니다. 그러다 제가 “너는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 있었어?”라고 묻는 순간 아이는 봇물 터지듯 말을 터트립니다.


두 아들이 서로 순서를 정해서 이야기하지요. “어제 형이 먼저 말했으니깐, 오늘은 내가 먼저 말할게”라며 말을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순서를 그들은 잘 압니다. 보통 “엄마, 내 친구 승윤이 알지?”로 시작하는데 저는 승윤이를 잘 모릅니다.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이렇게 실명을 거론하는 친구 이름이 매번 바뀌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 참 말하다 보면 본인이 스스로 생각나지 않는 단어가 있기도 합니다. 보통은 이제 막 배우고 들어본 적은 있는데 사용에는 어색한 단어들이요. 혹은 엉뚱한 단어를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욕구가 느껴져요. 아이는 저녁 시간에 잠도 잊은 채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굉장히 행복해하며 잠 들어요. 그 시간이 아이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시간이며 하루 동안의 긴장을 풀고 이해와 공감을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정말 졸지 않고 집중해서 듣다가 중간중간 잘 듣고 있다는 추임새를 넣어주면 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아이들이 아빠에게는 저녁에 수다를 떨자고 하지 않아요. 낮에나 바깥 활동을 할 때면 아빠 껌딱지인 아이들인데 아빠하고는 안 자려고 해요. 그래서 어느 날에는 아이들에게 물었지요. “왜 아빠랑은 저녁에 이야기 안 해?”라고 물었더니 아빠는 금세 잠이 든다고 합니다. 말하는 것에 크게 호응을 해주지 않고 일찍 잠들어버리니 별로 좋은 이야기 상대가 아닌 셈이죠. 이렇게 잠들지 않고, 잘 호응해주는 것이 잠자리 수다의 일등 덕목입니다.


저에게 이 시간은 큰아이에게 잘못을 고백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원래도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보니 저의 민낯이 정말 잘 보이더군요. 이미 화냈고 소리 질렀고 말도 안 되는 협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잘못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머쓱하게 아이에게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저녁에 누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되었습니다.


“아까는 엄마가 너에게 나쁘게 말하고 화내서 미안해” 대여섯 살 먹은 아이에게 저는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대화의 기본인 ‘나 전달법’을 이용하여 “너의 행동이 나는 이렇게 느껴져서 화가 났어.”와 같이 구체적인 제 기분을 전달했지요. “그런데 내가 화가 났다고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 것은 잘못했어”라고요. 불 켜진 상태에서는 아이의 눈을 보고 말할 용기가 안 나서 일수도 있습니다. 마치 술기운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불편한 내 마음을 불 꺼진 상태에서 잠자기 전에 고백합니다.


저는 이런 고백을 아이가 다 알아듣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내는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사과하는 것조차도 그대로 다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훨씬 더 쉽게 용서해줍니다. 그 부분이 참 고맙고 미안합니다. 똑같은 잘못을 여러 번 반복하는 부모인데도 참 쉽게 용서해줍니다. 언젠가 한 번은 경고를 들었습니다. “엄마는 누우면 착해지고 낮에는 안 착해. 다음에 또 나한테 화내면 이젠 용서 안 해줄 거야” 이제 정말 더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 경고를 들었으니까요.


어떤 날은 제 솔직한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정말 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 말입니다. 그럴 때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아이들이 참 든든합니다.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밤이라는 어두움과 오랜 시간 함께 쌓아 온 대화의 시간들 덕분입니다. 원고를 투고하고 걱정하던 날 밤도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어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도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고 위로 받았습니다. 그러니 저녁 수다는 사실 아이를 위한 것보다 부모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지나갔다면 지나갔을 수도 있는 많은 실수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고 또 나조차 부모로 성장하느라 힘겨운 것들을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정을 서로 교류하는 대화는 부모는 아이를, 아이는 부모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줍니다.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고 서로의 감정을 어루만져 줄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살아갈 아이들이 그 방법을 처음으로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은 부모님과의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이렇게 나의 일상과 감정을 나누고 용서하고 사과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아이가 또래와 또 낯선 이들과 말로 소통하고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좋다는 것을 알아도 아이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야 아이가 다섯 살 무렵부터 꾸준히 해온 일이라 부담이 없지만 지금 시도하려는 분에게는 부담일 수 있습니다. 이미 몇 해 전에 잠자리 독립을 한 아이 방에 찾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것도 어색하고요. 혹은 아이가 부모보다는 친구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감정의 대화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이에게 한 걸음 다가가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초등 시기의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부모이며 커 갈수록 심리적인 독립도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심리적으로 독립이 이루어지더라도 대화를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 이전에 대화의 길이 막히지 않아야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 하지 못하는 대화를 나중에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어렵습니다.



잠자리 수다가 어색한 분이라면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우선은 스킨십을 먼저 시도해주세요. 안거나 손을 잡고 걷거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거나 등을 두드리는 정도의 스킨십 말입니다. 다 큰 것 같아도 부모 품에 폭 안겨 “엄마 냄새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입니다. 교사인 저에게도 부끄러워하면서도 먼저 다가와 꼭 안아달라고 하던 아이들입니다. 말이 나오지 않으면 가벼운 스킨십만으로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 부모님께서 먼저 용기 내어 아이에게 긍정의 말들을 먼저 시작해주세요.


‘너를 사랑한다‘, ‘고맙다’, ‘너는 네 보물이다’, ‘네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와 같은 사랑을 듬뿍 담은 긍정의 말을 건네주세요. 아이에게 자꾸 감정 표현이 메말랐다고 하지 말고 먼저 넘치게 표현해 주세요.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넘치게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말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미안하다’ 한마디에 쉽게 그 간의 속상한 마음이 스르르 녹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사과할 일이 생기면 가능하면 빨리 미안하다고 정확하게 말해주세요. 물론 쉽지 않다는 거 잘 압니다. 권위가 떨어질 것 같고 어쩔 수 없었다며 어물거리며 넘어가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곤란합니다. 해야 할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가면 권위는 안 떨어지겠지만 믿음이 사라집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스킨십과 긍정의 말을 연습하고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솔직해 질 자신이 있다면 이제 저녁에 아이가 자는 곁에서 살포시 재워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휴대폰을 들고 방에 들어가 친구와 게임하다가 혹은 톡을 하다가 잠드는 대신에 부모님과 하루의 일들을 조금씩 나누는 일상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와 함께 하는 정서적 교류이자 언어의 교류 시간입니다.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에 편한 대상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잠들 수 있도록 시도해보세요. 첫 시작만 어렵습니다. 물꼬가 트이는 것처럼 한 번 시작한 이야기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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