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않기로
약속에 도장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모른다.
금요일 알림장에 월요일 수학 1단원 문제집 검사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날마다 스스로 하는 하루 일과가 있다.
그중, 수학 문제집 풀기도 있으니 별문제 없이 채점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째야, 수학 문제집 좀 가지고 와봐.'라고 했더니 갑자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엄마, 약속해. 약속해야 가지고 올 거야. 절대 화내지 않기로. 웃으면서 채점하기로 약속해 줘.'
이 말속에 이미 보지 않아도 문제집의 상황은 알 것만 같았다.
'응, 약속할게. 빨리 가지고 와봐. 틀린 것은 엄마랑 다시 풀어봐야지.'라고 이야기했다.
아이고, 참 바쁘다.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고 잘 안되었을 때는 괜히 엄마가 옆에서 잘 못 봐줘서 인 것 같고
아이 혼자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싶기도 하고 학원 갔다 와서 그 짬 시간에 스스로 꾸준히 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하며 문제집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가 본인이 푼 '디딤돌' 문제집과 아직 풀지 않은 '센' 문제집을 가지고 왔다.
디딤돌에 쓴 글씨가 엉망이고 많이 틀렸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쎈' 문제집으로 새롭게 푸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문제집을 보니 3,4학년 검정 교과서로 바뀌면서 문제집의 형태도 바뀌었더라.
보통 차시별로 유형 문제 나오고 뒤쪽에 연습 문제가 나오는데 교과서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앞 설명하는 유형 문제가 매우 적고 문제 풀이 형식의 문제가 어찌나 많은지.
'문제가 꽤 많은데 이거 다 할 수 있겠어?'
라고 이야기해도 선생님께 예쁜 글씨로 다 맞아서 가고 싶다는 아이.
'그래, 그렇게 해.'라고 시작한 수학 문제집 풀이가 약 3-4시간 이상 지속된 것 같다.
중간에 내가 '이거 문제 너무 많다. 오늘 다 못 풀어. 내일 이어서 풀자.'라고 몇 번 말했는데도
'나 내일은 정말 놀아야 해. 오늘 다 할 거야.'라며 의지를 불태우는 둘째.
둘째야, 그런 의지를 미리 좀 불태웠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니, 그런데 왜? 엄마는 옆에 앉아있어야 해? 엄마 할 일도 안 하고, 핸드폰도 보면 안 되고 그냥 옆에서 본인 푸는 것만 보아 달란다.
그러다 문제 막히면 설명해 주라고.
아.... 엄마도 주말에 미뤄 놓은 일들이 있는데.라고 말하기는 너무 간절해서 둘째 옆에서 4시간 이상 멍 때리며 곁에 앉아 있었다.
'진짜 내일 해도 돼. 한 번에 이렇게 많이 하면 머리 아파.'라고 해도 막무가내.
결국 4시간 앉아있고 한 단원을 다 풀었다. 문제가 가득 찬 17장쯤이었나?
너도 대단하다.
다음부터는 하루에 두 장씩 엄마랑 같이 풀자.
오늘은 놀겠다는 의지에 불탄 우리 둘째는 아빠, 형아와 함께 자전거 타러 나갔다. 한강을 횡단하고 올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