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1.
3년 만의 만남이지만 그마저도 조심스러워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24살 교대를 졸업하고 간 첫 학교는 무척 큰 학교였다.
6학년이 10반까지 있었으니 60학급 이상의 학교였다.
그 학교에 나이가 동갑인 신규교사 4명, 한두 살 터울로 총 8명이 참 재미있게 지냈더란다.
그때는 진짜, 모든 것이 즐거웠다.
열정도 넘치고 실수도 넘치던 때에 서로 도와가며 서로 의지해가며 지냈다.
다들 서울이 집이 아닌 아이들이라 사는 곳도 비슷했고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늘 만나 수다 떨고 교실로 찾아가서 고민 상담하고 누구 하나 연애 시작하면 엄청 놀리기도 하던.
그 8명 중 내가 1번으로 출산하고 다들 고만고만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 년에 2번 방학 때는 꼭 만났었는데
코로나 이후 3년을 못 봤다.
3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만남과 동시에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또다시 수다를 떤다.
나도 모르게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것이 한 편으로는 당혹스럽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기도 전 친구들은 더 깊이 이해해 준다.
전 날 남편이 가져다준 수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 학교의 어려움, 관계의 이야기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야기가 술술 끊기지가 않는다.
그 순간의 우리는 24살의 반짝이던 그 신규들이다.
서로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마음이 따뜻하고 편해진다.
이들과의 만남은 폭신폭신 따스한 연노랑이다.
만남 2.
고학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내 마음 씀을 모두 알아차리고 그에 반응해 준다.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지,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갖고 예뻐해 주는지 금방 알아차린다.
그리고 몇 번을 실수해도 잘하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아준다.(선생님은 신규 때부터 늘 자주 실수한다. ㅋㅋ)
선생님이 잘 할 거야.
그것도 괜찮아요.
아이들이니까 본인이 받은 사랑의 기억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눈빛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저 아이들이 내 마음을 읽고 감정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말 한마디를 다시 고른다.
그리고 그런 만남이 어느 정도 이어진 이후에는 그들도 그들의 마음을 오롯이 내어준다.
마음의 아픈 부분도 슬며시 꺼내어 보여주고 기쁜 마음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뿜어져 나온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통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이 만남은 나에게 청량한 푸른 빛깔이다.
박하사탕 10개를 함께 넣은 것처럼 뻥 뚫린 것 같으면서 또 한 편으로는 산들바람이 부는 하늘 같은.
만남 3.
내가 이런 만남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간혹 다른 사람의 만남에서 생각지 못한 색깔을 발견하곤 씁쓸해 하기도 한다.
나는 선의로 했던 일인데 지나고 보니 나를 잘 활용하여 본인에게 이롭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 그 기분 나쁨. 내가 넣었다 뺐다가 되는 부품이구나.
작년에도 올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교사니까, 내가 책임지고, 노력한 일들이 한 순간 그의 공으로 넘어가며 그동안 고생했다. 한 마디로 나를 그 일에서 없었던 사람처럼 만들어 버린 일.
아, 이 사람은 내가 필요했었구나.
그리고 지금 그 필요가 끝났구나.
그 뒤에 오는 허탈함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서운함도 아니고
내 노력이 없어지는 것 같은 억울함도 아니고
저 사람이 나를 대하는 마음이 왜 그럴까 라는 실망.
이 만남은 굳이 색깔로 따진다면 짙은 체리 색깔.
마음 속 단단한 씨앗을 남기는 것도 체리랑 비슷하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