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다.
혼자일 때가 편하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그리고 외로움도 잘 타는 사람이다.
운동장 단상 위에 올라가 학년 전체 아이들에게 안내하는 멘트를 해야 하는데 마음과 다르게 마이크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는 염소 목소리다.
이런.. 일처리는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이런 건 정말 늘 적응이 안된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외향적이어야 하고 무리에서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내가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과나무에 열려있는 귤처럼.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외로움과 동시에 절실하게 나도 사과가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왜 나만 이렇게 예민하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하지 않는데?
왜 나만 이렇게 느낄까?
왜 나만? 이라며 자꾸 나를 다그치고 그들처럼 생각하려고 했다.
최근 정여울의 산문집 '마흔에 관하여'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의 담담한 문체에서 그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고 이제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이런 나의 특성도 존중되어야 할 내 모습이구나 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사과인 것이 죄가 아니듯, 내가 귤인 것도 죄가 아니야. 사과와 귤을 날카롭게 구분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나쁜 거지. 난 내가 사과가 아니라 귤로 태어난 것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 이제 더 이상 사과처럼 보이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거든. 너도 네가 사과나무에서 돌연변이로 자라난 귤이란 사실을 언젠가는 사랑하게 될 거야. p.33
가끔, 학부모 상담을 하다가 '우리 아이가 너무 내성적이 어서요. ' 혹은 단짝 친구 하고만 놀려고 해요. '라고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일 수 없는데, 어딘가 모르게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좀 더 좋은, 추구해야 할 성격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임에서, 단체에서 나 혼자만 귤 같음을 느낄 때면
그 모습 그대로 괜찮아.라고 다독여야겠다.
나도 작가처럼 마흔이 찬란한 행복이고, 내 안의 숨은 잠재성을 발견하기 좋은 나이로 다가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