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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욕을 들었다.

그 뒤가 더 놀랍다.

by 라온쌤

오늘 줌 수업 중이었다.

어제 쓴 것과 같이 줌 수업은 화면만 보고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이 더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놓치지 않고 따라오도록

한 발짝 한 발짝씩 함께 나가려고 애쓴다.


https://brunch.co.kr/@empress82/91


'안 하는 애는 안 하게 둬. 부모도 뭐라고 못하는데..'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학원에서 따로 수업을 다 듣고 공부도 제법 잘하지만

아이니까 벌써 놓고 싶지 않은 나의 욕심과 책임이랄까.

함께 수업에 참여하고 함께 배웠으면 좋겠다.


오늘도 수업 중 내 생각 쓰는 부분이 있었는데 모두 다 쓰고 다음 활동에 넘어가려고 하는데

'지금 뭐 써요?' 란다.

그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수업에 집중해서 참여해야 한다, 좀 더 경청해주면 좋겠다. 등등..

그리고 다음 활동에 해당하는 영상을 화면 공유하려고 하는 차에 갑자기

'씨 X' 하는 욕이 너무나 선명하게 우리 28명에게 들렸다.


순간, 나는 당황했고 아이들은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애들이 '누가 방금 욕하지 않았어?'

'나도 들었어?' 하며 웅성거렸고


'애들아, 너희 혹시 무슨 소리 들었니?'라는 나의 질문에

애들의 반응은

'OO이(방금 선생님한테 혼난 애)는 아니에요. 방금 음소거되어 있었거든요.'

'사춘기를 빨리 발음하다 보니 그런 거 아닐까'

라는 식이었다.

놀라기도 했고, 정확히 보지 않은 것을 가지고 말하기가 어려워 우선 다음 활동을 진행했다.

그런데 영상을 보는 내내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아이들이 명확히 들었고 나도 들었는데 이야기를 한 번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이 끝나고


우리가 들은 것이 욕인 거 같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같이 들었다.

수업 중에 이런 일이 처음이라 선생님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너희들은 우리 반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결하고 싶니?

라고 물었다.


아이들에게 나에게 개인적으로 너희의 생각을 채팅으로 보내라고 했고

아이들의 의견을 쭉 읽는데 참 의아했다.


'그 아이가 실수해서 놀랐을 것 같아요.'

'누군가를 찾아내고 혼내는 것보다 전체에게 욕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욕하면 기억력이 감퇴한대요. 해마인가 뭐에서.. '

'밥 실험 봤어요. 좋은 말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프대요.'

'누군가 아까 말할 때 노란 바(소리 나는 쪽으로 인식)가 있는 거 봤어요. '


처음, 아이들이 보인 반응부터 나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낸 채팅 속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보였다.

그들도 놀랐지만, 실수일 것이다는 믿음, 혼나는 것보다 전체에게 말에 대한 교육을 해달라는 아이들.

그 친구 나쁜 말 써서 기억력도 안 좋아지고 건강도 안 좋아질 것이라는 말.

방금 혼난 애는 아니다. 잘 못 발음된 건 아닐까.


정말이다. 정말 아이들이 그랬다.


내가 아이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나머지 아이들을 모두 나쁜 학생 취급하며 혼냈다면 어땠을까. 나는 참 부끄러웠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채팅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실수로' 욕을 해 버린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전체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참 지혜롭다.

나에게 채팅으로 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너희들의 생각이 보인다.

우리가 전체 수업하는 공간에서는 '실수'라도 좀 조심해주면 좋을 것 같다.

너희 덕분에 또 감동했다. 선생님 마음이 속상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배운 것 같아.

라고..... 말해주었다.


순간, 나는 나에게 꾸지람을 들은 그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내가 나무랐다면 아이는 참 억울했겠지.


끝나고 나서 옆 반 선생님과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니

'게임하고 있었네. 우리 반도 많아. '라고 하셨다.

게임 중 음소거가 아닌 걸 모르고 내뱉었을 것이라는 게 옆 반 선생님의 의견.


나한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인 걸까.


그 아이가 어떤 뜻으로 어떤 상황에서 욕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교실 속 에피소드 하나가 나를 또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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