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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13. 2022

#85. 점점

점점 무너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과 나의 상황이 모든 것을 앗아갈 것 같기만 하다.


그래, 3개월 동안 행복했으면 됐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새로운 감정을 느꼈으면 됐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새벽마다 아주 차분한 뉴에이지를 들으면서 쓰는 글은 눈물을 쏟게 만든다. 나는 어제 이런 상황에서 글을 썼기에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펑펑 우는 소리를 내면서까지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왜 울어? 우는 이유가 뭐야? 하면서 남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본 것도 사실이지만 어제의 그 사태를 겪은 이후로는 우는 사람의 원인을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쓸모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힘드니까 우는 거겠지, 그가 아프니까 우는 거겠지, 그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울고 싶은 거겠지. 결국 어찌어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삶을 이어나가야만 하니까 그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한다.


나도 별 다를 건 없다.


누군가에게 쓰임 받지 않는 이상 나는 나의 삶이 고귀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귀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의 삶은 그저 바닥에서 발버둥 치다 일어나 땅을 짚고 두 발로 온전히 서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두 발을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땅을 밟고 일어선 나의 모습은 점차 희미해져만 갔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사람이 되어버렸을 줄 알았다면 나는 애초부터 땅을 짚지 않았다. 내 삶이 누군가의 삶에 투영되어 비치는 모습을 보고 살아가야만 한다고 했더라면,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더라면, 너의 삶보다는 남의 삶을 비추어주는 삶을 살게 될 거야라고 나에게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나는 지금 이 삶을 느낄 수 있었을지조차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미치도록 부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원래'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한다. 그 단어가 들어가면 어떠한 관계든 그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너무나도 무거운 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단어를 빼고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미치도록 부정적인 사람이다.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듯, 나 역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노력해서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나의 작고 작은 노력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나쁘고 감정이 상한다. 거기서 끝냈으면 됐다. 거기서 끝났으면 됐다. 거기서 나는 더 가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이런 말을 하는구나,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싫어했던 게 맞는구나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 순간 나는 어떠한 집단에서도 있을 수 없었다.


코로나에 걸려 회사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눈치를 보고 결국 퇴사까지 이어진 나의 전 직장은 너무나도 고통 속이었다. 사무실에서 밥을 혼자 먹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몸이 좋지 않아서 검사를 받았지만 그것이 코로나 증상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말을 하고 1주일이 넘는 시간을 집에서 홀로 보냈다. 집엔 심지어 물도, 음료수도 다 떨어져서 아무것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혼자 사는 원룸에 일이 있으면 뭐가 있다고.


코로나에 걸려서 회사를 멈추게 한 것도 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출근을 못하고 돈을 벌지 못했으니, 강제로 휴가를 받았으니 그것에 대해서 불만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심지어는 코로나에 걸려서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 나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한다. 당신의 사태를 보고 한 직원의 부모는 당신을 고소하겠다고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믿고 있었던 직원에게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업무 이외의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인사를 제외한 모든 말을 먼저 건네지 않을 거다.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그렇게 할 거니까 간식을 사 오던 뭐를 하던 하지 말라"라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든 헌신하고 있었던 회사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그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심지어는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마저 나를 왕따 취급하고 없는 사람 취급을 했고 나는 하염없이 그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웃으며 응대를 해야만 했고 꿔다 놓은 쌀처럼 나는 그렇게 지내야만 했다.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혼자 살지 않냐며 월세라도 조금 벌어가라는 식의 말을 했다. 이 사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담당자가. 그냥 그만두겠다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일이 하나 둘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 회사를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그렇게 바보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망하기를 빈다. 그들이 무너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기를 빈다.


하지만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나란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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