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pty Jun 22. 2022

#93. 민폐 그리고 눈물

요 근래,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한다.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 나였지만 더더욱 많아지고 있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 번아웃 오기 딱 좋은 상황인 것 같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놔주질 않는다. 꼬리를 물고 그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물고 물린다. 끊어낼 수 없는 생각의 딜레마에 빠져버린 듯하다.


민폐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친구관계에서도, 일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면서도 민폐라는 감정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집어삼키는 기분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늘 깍두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고 내가 하는 일은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것 같다. 사실 아무 말하지 않고 아무 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보통의 선을 잘 지키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방치되어있는 것을 꽤나 무서워한다. 혼자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썩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소속감을 너무나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나에게 0순위는 소속감이다. 업무 강도가 강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마찰이 없건 잉여시간이 많이 있거나 하는 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플러스 요소가 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일하는 곳의 공간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그 정도로 소속감을 많이 느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처럼 사회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버티는 것이 어려운 나는 소속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회사에서 떠나거나 떠남을 권유받기만 했다. 나는 그런 과정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소속감이라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권유를 받은 직장에서는 15일 만에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월급의 50%인 100만 원을 입금해줄 테니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


그런 말을 듣고서 가만히 네 감사합니다 안 나올게요라고 쿨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대표를 붙잡고자 안돼요 이러지 마세요 하는 듯한 뉘앙스와 스탠스를 취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상황이 나에게 닥치더라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건지 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경쟁심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돈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돈이라는 것은 어쩔 때는 휴지조각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우리가 평상시 마주할 수 있는 A4용지와도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러니까, 나한테 돈으로 이래라저래라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는 지고 싶지 않다. 돈이라는 존재 때문에 지고 들어가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데 나에게 그만 나오라고 이야기를 한 대표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내가 일을 못하고 실적이 나오질 않으니 이 돈 받고 나가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이라는 유예기간을 주고 잘라야 되는 거 아시지 않냐 이대로 나가게 되면 저도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고소를 하겠다고 강경하게 나갔다. 혀를 끌끌 차며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라-라는 말을 하고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나의 성격 상 너무나도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래서 그때 당시 집 근처의 노동 관련 법률 안내를 도와주는 곳에 전화를 하니,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근무를 한 기간이 너무 짧아서 대표에게는 아무런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서민들을 위한 법률 상담소와 같은 곳이었음에도 너무나도 귀찮고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는 태도에 화가 났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100만 원이라는 돈을 받고 감사하며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고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고 하는 행위들이 너무나도 무겁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면접을 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그 떨림과 불안함과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그 순간이 지독하게도 싫다.


그래서 요즘 눈물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디서나 남들에게 민폐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회사에게 인정을 받지 않더라도 민폐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 자신이 나를 바라보는 허들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공동체 생활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를 가더라도 민폐를 끼치고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세상이 무너지는 일일까. 그래서 잠을 더욱더 못 자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상황들이 톱니바퀴에 물려 돌아가듯 계속해서 끊임없이 고통받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92. 공동체 생활의 부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