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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1. 2022

#92. 공동체 생활의 부재

나는 참 공동체 생활을 못한다. 기질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나는 공동체 생활에 취약점을 띤다. 대학 생활부터 군대를 거쳐 온전한 공동체이자 경쟁사회인 사회에서의 생활조차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익숙해질 수 없었다. 적당히 노력해서 적당한 텐션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적당히 눈치를 보며 적당히 아부를 떨고 적당히 일을 하고 적당히 퇴근을 하는 그놈의 '적당'이라는 감정의 부재였다. 무엇이던 중간이라고는 없었던 나는 사회생활에, 공동체 생활에 너무나도 약하고 또 약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려서부터 학교 생활조차 어려움을 많이 느꼈었다. 중학생 때 문득 기억나는 장면은 학교 다니기 싫다고 친구들이 날 왕따 시키는 것 같다면서 엄마 무릎에서 울면서 잠들었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낳은 내 자식이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두루두루 잘 어울려서 지내지 못한다는 말과 그렇게 서럽게 울어대면 어떤 부모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빠의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는 아빠도 사회생활이 너무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수 십 년간 해오던 영업직에서 벗어나 인쇄소를 차렸을 정도니까 나는 어느 정도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사업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나 자신의 성격에 대해 궁금했고 왜 그러는지, 도대체 원인이 뭔지, 원인을 알 수 없다면 나의 부모님 중에 그런 영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서른 살 즈음까지 살다 보니 어느 정도 부모님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무언가 케케묵은 감정들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확실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냥 사회생활을 못하는 게 아니었구나, 나는 어떠한 영향으로 공동체 생활에 문제가 있는 거구나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엄마도 수 십 년을 가정주부로만 살아와서 세상 밖으로 나서는 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아빠가 상을 당하고 나자, 가정의 기둥이 된 엄마는 차근차근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서라도 일을 해야 된다는 공포심과 강박증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 옆을 지켰던 사람의 부재로 외로움까지 엄청났을 텐데도 꿋꿋이 공부를 하고 결국 어찌어찌 취업을 했다. 엄청난 공포심도 있었을 거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너무나도 무서워했던 엄마였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집이 아닌 외부활동을 하는 것은 교회가 전부였던 엄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 정립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나의 이런 성격은 엄마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예민하고 민감하고 나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그런 성격을 보니 엄마를 똑 닮은 것 같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다시 나를 뱃속으로 집어넣어 태교와 사랑을 듬뿍 주어서 다시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니.


공동체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곧잘 받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찌어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번아웃이 오고 지치고 무너지고 하지만 이상하게 어떻게 버텨지는 것 같다. 내가 버티려고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낙오되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강박증에 항상 시달리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몽유병 증세도 같이 나타난다.


잘 모르겠다. 이런 생활이 맞는지, 어울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무슨 해답이라도 찾을 수 있는 걸까 싶다. 사실 너무 무섭다. 불안하고. 그런데도 어찌어찌 굴러는 간다. 자동차 바퀴처럼 매끈하게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네모 자동차가 서걱서걱 큰 굉음을 내며 굴러가는 것 같다. 내 현재의 상황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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