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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8. 2022

#103. 넋

넋이 나가 있다. 누군가가 보면 저 사람은 집중력이 굉장하구나라고 할 정도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지만 나는 무언가에 집중을 미친 듯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멍 때리고 넋이 나간 상태이다. 이번 주 주말 간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오는데도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전에 살던 집이 너무너무 좁아서 열댓 명의 사람들이 집을 보고 갔지만 다들 이 집만을 기피했다. 일정 기간 내 계약하면 20만 원이라는 돈을 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계약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전에 살던 집은 너무 좁았다. 더블 싱글 매트리스 하나를 깔고 나면 공간이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정도로 좁으니 누가 계약을 하려고 하겠는가. 심지어 월세도 48만 원이었으니까. 나 같아도 계약을 안 하고 다른 집을 알아봤을 거다.


그렇게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기 전,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와서 손님을 데리고 가서 볼 거라고 했고 그 사람은 상황이 급했는지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계약 체결 비용(?)으로 얼마를 요구했다. 그래도 이 좁은 집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돈도 기꺼이 줘버렸다. 그렇게 돈이란 돈은 탈탈 털어 썼다. 청소비, 계약 체결비, 택시비 등 쓸데없는 지출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집에서 살면서 스트레스는 많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변기 물이 금방 차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집 공간이 정말 좁다는 것 외에는 크게 문제도 없었다. 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5분 정도면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집주인도 다른 곳에 살고 있어서 크게 터치도 없었고 바로 붙어있는 옆집 사람이 화장실을 쓰는 소리가 조금 거슬렸을 뿐 그렇게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좁아서 테트리스를 하는 기분도 들었다. 난 그 집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아지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그 집을 구하기 전까지 정말 많은 집도 보고 매물도 봤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집은 너무 노후되었고 또 다른 집은 방 인테리어가 화려했다. 나는 오래되지 않은 화이트 톤의 집을 원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런 집을 구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방을 보자마자 너무 아늑해 보였고 무언가 따듯해 보였다. 그래서 그냥 좋았다. 보자마자 계약하겠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4-5개월 정도 살았으려나. 그렇게 살면서 큰 문제가 없었어서 아쉽긴 했다. 그리고 지금 집은 이전 살던 집보다 2분 정도 더 걸어가면 있는 신축 건물에 살고 있다. 지금 집은 이전 집보다 내 기준에서 훨씬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넓었고 공간 활용도도 높아서 만족했다. 에어컨에서 물 비린내가 나고 세탁기에서 자꾸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묻어 나오고 일반 투명 쓰레기봉투가 아니라 종량제 봉투를 사서 버려야 된다는 점과 건물주가 건물에 상주해있어서 매일 밤마다 청소하고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마주치는데 인사를 할 때마다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뭐 집이 없는데 무슨 불만이겠어. 심지어는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한 걸 보고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참 글을 길게 돌려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마음이 편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이후의 방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반지하라도 좋으니 신축이었으면 좋겠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과 방음이 잘 됐으면 좋겠다. 사실 봐 둔 방이 두 개가 있는데 거긴 보증금이 많아서 당장 갈 수는 없다.


뭐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집 주변과 회사 근처에 노숙자들이 간혹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픔을 넘어 내가 괴롭다. 마치 죽어가는 인간을 마주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마치 그게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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