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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11. 2022

#. 중간자의 입장이란

중간자의 입장이 참으로 애매하다. 중간자라고 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 이보다 더 입장이 애매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내가 어엿한 사업가도 아니고 일개 직원일 뿐이지만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한다.


물론 무수한 말을, 많은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중간에 끼어있는 입장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양측의 관계를 위해 애써야 하는 외교관의 감정으로 이들을 대해야 하고 각각의 불만과 컴플레인을 항상 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정해진 것의 컴플레인이 아닌 정해지지 않고 언제든 새롭게 생겨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중간 입장을 지키면서 조율을 해야만 한다.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이 너무나 싫다. 한 곳에 정착을 하고 싶고 오래전부터 소속감을 중요시했던 나는 회사의 소속감이 나에게는 어찌 보면 계약금보다, 월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속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돈을 줄 테니 이렇게 일을 하고 이렇게 보고해라, 그렇게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를 방치해둔다. 이렇게 방치되어 근무를 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따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이것인지 혹은 이것보다 나은 근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떠한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내가 이곳에서 더 버틴다고 버텨질 수 있을까.

할 줄 아는 것이 남들보다 부족한 내가 이곳에 더 있을 수 있을까.


매일이 나에게는 고통이고 지옥이다.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지워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그 고민조차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그런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이곳에서 더 오래 있을 수 있다거나 평생직장의 보장을 얻고 일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절대 나 같은 인간에게 그런 감사한 조건을 들이밀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만두어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만두고 떠나고 나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생각으로는 그것만이 최선인 것 같다.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슬프지만, 네 달이 되는 시간 동안 가까워진 사람들과 친해진 사람들, 아주 깊숙이 친해진 사람들을 모두 저버려야 한다는 것이 슬프긴 하지만 그들과 마주하는 것보다 나의 생사가 달려있는 이 것을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택하는 선택이 그런 것일 뿐이다.


나에게 그런 대우를 했지만, 나보다 더 좋고 실력이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내가 떠나고 앞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나는 늘 불안하다. 늘 화가 많고 늘 속상하다. 그런 나를 어떻게 회사에서 이해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것일까. 당장 이 상황만 보더라도 너는 그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우리 직원이니 우리 회사의 내규를 따라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그곳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기로.


그러고,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컴컴한 어둠 속에 놓여있겠지만 그다지 무섭지 않다.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거나 살거나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나는 익숙한 '혼자'가 되어버린다. 그런 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사람이 있긴 할까.


나는, 그냥 그렇게 죽어가는 것뿐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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