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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16. 2022

#.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empty가 남들을 그렇게 격하게 환영해주면 empty는 누가 격하게 환영해줄까요?"


최근 내가 들은 이야기 중 머리를 띵-하게 만든 질문이었다. 질문이었을까 궁금증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일까 모르겠지만 나는 저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황당했다.


나는 늘 주는 것에 익숙하고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누군가가 나를 신경 써주고 환영해주고 같이 기뻐해 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역설적인 말과도 같았다. 난 받는 것을 너무나도 못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나 무언가를 해주더라도 나는 나 자신이 만족하는 법을 모른다. 내가 아닌 남의 행복을, 기쁨을 위해 뭐든 더 하려고 하고 희생하려고 한다. 내가 희생을 해야만 내가 무언가 마이너스가 되어야만 상대방이 플러스가 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해주면서 마냥 기뻐하지는 않다는 것도 안다. 자연스레 내 행동을 남들에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내가 해준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나 혼자 서운해하고 섭섭해하고 화가 난다. 그런 과정들이 무수히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남들은 아무것도 모를 거다.


기본적으로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내 생각이 굉장히 꼬이고 꼬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치부하겠지. 나는 그런 모습들을 꽤나 꽁꽁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과정이 프로세스와도 같다. 이렇게 행동해야 되고 이렇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컴퓨터의 내부 공정 처리 과정을 담당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그런 것들이 그려진다. 그래서 남들보다도 훨씬 더 피곤하게 살고 예민하고 에너지 소비가 굉장히 심한 편에 속한다.


나는 저 말을 듣고 무슨 말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근본적인 나의 마음속에서 나온 대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남들에게 해주면서 보람차다고 느껴요. 나는 이런 거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힐링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지나고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들이 문득 든다.


나는 누구라도 격하게 환영해주고 따듯하게 안아주려고 하는데 정작 나를 환영해주고 의지할 수 있게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물음표가 간혹 생기곤 한다. 그것은 비단 애인의 자리와 역할이 아니라 공동체의 사랑과 의지의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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