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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21. 2022

사람이 좋은데 사람이 무섭다

알게 모르게 느낄 수 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아주 작고 예민한 감정들을 이상하게 나는 느낄 수 있다. 확신은 아니지만 남들이 무던해서, 무감각해서 느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을 나는 왜 그렇게 잘 느끼는 걸까 싶기도 하다. 비단 예민함이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이타적으로 상대방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일까. 엄마와 아빠가 늘 남에게 헌신하고 가진 것을 나누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일까.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행복한 세상이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어느 쪽인지 분간할 수 없다. 


엄마는 이전에 누나가 회사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다른 번호로 온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적이 있다. 800만 원인가 600만 원인가 그 돈을 아빠에게 부탁해서 보냈는데 설거지를 하다가 엄마 아까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보니 누나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연락을 했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보내줬다고 하니 나는 순간 당황해서 누나 핸드폰에 전화해봤어? 누나가 왜 갑자기 다른 폰으로 연락을 해?라고 물어보고 전화를 해보니 누나는 핸드폰을 잃어버리지도,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던 엄마를 겨우 붙잡고 경찰에 전화를 했고 아빠한테도 전화를 했다.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 같다고 아니 당했다고. 그때 아빠의 건강이 한창 나빠질 때라서 그 사건으로 인해 아빠가 조금 더 빠르게 나빠지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덜컥 큰돈을 보내라고 말한 엄마가 미웠을지도 모른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을 신경 쓰게 만든 것에 대해서 엄마도 많은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 때문에 더 아프게 한 것 같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나한테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어쩌겠냐고 괜찮을 거라고 엄마를 토닥여줬던 기억이 난다.


뭐,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겪으면서 엄마는 사람을 참 잘 믿는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해서 그 순간이 떠오른다. 엄마의 무서움과 실제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공포. 아빠도 처음 겪어보는 보이스피싱에 경찰이나 은행에 지급 정지 등을 하면서 느꼈을 크고 작은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던 무서움에 질린 나도 있었겠고.


이 사건이 내가 사람을 잘 믿고 이타적으로 살아왔다는 것과 문맥상 통하지는 않지만 문득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이 떠오르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왜 갑자기 문득 그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글이라고 포장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글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타적인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꽤 힘들다. 실제로 엄마도 너무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이전보다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강한 척을 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강한 척을 하는 건지, 정말로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약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너무 오랜 길을 방황하고 후회하면서 살아왔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모르겠다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을 걸면 200% 긴장을 하게 되어서 말도 버벅거리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사람이 무섭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사람이 무섭다. 조용히 npc가 되어 로봇처럼 말하는 것이 그나마 마음이 편하려나 모르겠다.


사람이 좋은데 사람이 무섭다는 말보다 이질적인 말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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