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늘 하는 후회

1. 술 2. 술 3.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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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늘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욕망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미 중독이 되어 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럽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 쉬운 걸 왜 못 끊어내고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회사에서 파티 아닌 파티를 했다. 사실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차피 집에 가도 할 것이 없었고 집에 일찍 간다고 해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굳이 집에 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엄청난 고민 끝에 남아서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2시간 3시간을 기다려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지켜보게 됐다. infp로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서지 못하고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던 시간이었다. 나는 왜 내향적인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런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인가! 아주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동안 혼자 우물 안에 갇힌 사람처럼 살아와서 그런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진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옷, 새로운 음식, 새로운 술. 모든 것이 새롭다. 새롭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과정들이었다. 그래도 이전처럼 모든 것을 내려두고 도망가거나 숨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친해지려고 조금씩 노력을 하니 그 노력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듯,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렇게 한 마디 두 마디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나도 이 집단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화려한 조명이 온 공간을 비추면서 굉장한 울림이 있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둠칫 거리는 음악들, 가지런히 있었던 과일들과 음식들은 어느새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고 술과 술잔이 난무했다. 사람들의 텐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아져만 갔고 어느새 나도 흥의 파도에 함께 어울려 서핑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이야기를 꽤나 나누었던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대화도 너무나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는 두 사람 이상 만나서 놀아본 적이 없어요!"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그런가 이런 기회들이 너무나도 낯설고 또 낯설다. 낯선 기분이지만 행복하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말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입으로 막고 싶었지만 막으면 막는 대로 말이 줄줄 새어 나왔다. 음식을 먹으면서 질질 흘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딱 그 모습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피자와 싱글 탱글 한 딸기와 청포도, 파인애플과 나란히 놓여있던 맥주캔과 음악, 조명,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주제들, 다양한 이야기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런 것을 나 따위의 존재가 느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사실 성격이 많이 유해졌고 부드러워졌다. 예민함은 어느샌가 마음의 뒤편으로 사라져만 갔고 희미해져 갔다. 그 감정들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전부 휘감았다. 다시 꺼내어지는 순간 나는 또 혼자가 되겠지, 이런 모습을 사람들이 싫어하겠지-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있지 않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에게서 원동력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에도 이런 생각들과 감정들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지만 그 생각들이 정말로 사라졌으면 했는데 사라지지 않고 더 많은 복잡함을 창조해냈다. 나는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걸까? 나는 뭘 해야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가? 하는 물음표를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던지지만 돌아오는 해답은 0에 수렴했다. 사람에게서 힘을 얻고 사람으로 인해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 사실을 나는 계속해서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치유받고 행복함을 느낀다는 행위를 나 자신은 나도 모르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라는 존재 하나만이 나의 원동력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씩이라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놀 때는 세상 천진난만하게 놀고 웃으면서 술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회고록을 쓰게 될 줄이야. 후회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았던 걸까, 내가 그렇게 웃고 떠들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행위가 옳은 방식이었을까 싶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머리가 복잡하다. 술이 안 깬 이유도 있겠지만 이렇게나 생각이 얽히고설킨다는 것이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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