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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25. 2022

마음이 죽은 사람

모두가 즐거워만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깔깔거리는 웃음이 가득하고 표정에는 자신감과 즐거운 표정이 넘쳐난다. 그 표정엔 자신감도 들어있고 당당함도 들어있고 확실함도 들어있다. 어두움과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 어둠이 가득 낀 내가 끼어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역설적이기도 하다. 웃기다.


내가 왜 이런 곳에 끼어있어야만 하는가. 나는 왜 버리지 못하고 도망치지 못하는 걸까.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찼기 때문에 꾸역꾸역 버티는 것을 끊어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게 소위 말하는 고여간다는 느낌일까 싶기도 하다. 버티는 게 좋고 버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마지막 동아줄을 놔버리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고 끝날 것이라는 공포스럽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그냥 아무 눈치 볼 것도 없이 끊어내고 다시 시작하면 됐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영혼을 반쯤 빼고, 로봇의 형태로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니 이게 조금은 익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를 바보 같은 인간, 왜 지 밥그릇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남 생각을 해주냐는 식으로 나를 말하곤 하는데 나는 사실 호구다. 나 자신을 호구라고 지칭하는 것만큼 개탄스러운 일이 있을까 싶지만 호구 혹은 호갱이 아닌 말로는 나를 설명하기가 힘든 것 같다.


이 글을 전에도 쓰긴 했지만 그때는 막상 호구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 단어만큼 찰떡인 단어가 없었다. 남들에게 퍼주기 좋아하고 막상 본인은 받기 싫어하는 그런 바보 같은 놈. 다양한 연애를 해왔음에도 항상 포지션은 그런 포지션이었다. 퍼주고, 매사에 진심이었던 나는 항상 버림받고 이용당하는 것에 그쳤다. 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퍼주지 말고 당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고 보니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고 서른 살이 지나 30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이가 됐을 때 (고작 해봐야 1년 뒤지만) 20대와는 다른 vibe가 느껴졌다.


이루 설명할 순 없지만 그나마 에너지가 있고 까불까불 하고 수다스럽고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이것저것 관심이 많고 의욕이 많았던 20대가 아닌 조용하고 구석을 좋아하고 체력이 20대의 반의 반도 못 미칠 정도로 토막이 나버렸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것이 좋았다. 하지만 자극적인 것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 내가 볼 땐 관심이 없던 것은 더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그나마 남아있던 관심들은 더욱더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깊어졌다.


10대 때, 그리고 군대 들어갈 때 30대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고 내가 30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가득했다. 에이, 나한테 무슨 30대야. 나는 그렇게까지 오래 살지 않을 건데 하면서 외쳤던 30살을 뒤로하고 아직까지도 불안불안 하지만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매 순간이 아직까지도 불안하고 완전치 못하고 정제되어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이렇게 살지 않으면 세상에서 도태되어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점이 항상 머릿속을 채우곤 한다.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분명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것을 타개해나갈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대로 잠식되어 홀연히 열혈단신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갈까. 그리고 그나마 나의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냥, 문득 죽음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그 힘듦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진 못했다. 자기 자신의 의도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나의 주변에 없다. 병에 걸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사람들뿐이지만 그것이 아닌 다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질까 싶기도 하다.


속상하다. 나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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