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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26. 2022

새벽 두 시 이십팔 분의 주절거림

늘 글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치부하며 결정을 내려버렸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내가 호구처럼 단순한 사람이 된 것과, 왜 남들에게 퍼주어야만 마음이 편한 이유를 찾게 되었다. 사실 완벽히 찾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혼자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청소를 하다 보니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는 듯했다.


나는 돌아가신 나의 아빠의 아들이 맞는구나.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이 맞는구나 라는 사실이다. 이 생각조차도 너무 바보 같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동안 장난식으로 "너 주워 왔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성격 상 그런 말을 장난으로 받아치거나 할 수 없었다. '정말 나는 주워 온 아이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생각을 누군가가 깨지 않는다면 오래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그때 누군가가 그 생각을 깨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많은 생각과 딥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 나는 정말 주워 온 자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그렇게 행동까지 했다.


굳이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이 들게끔 행동한 적도 있고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할 때도 있었지만 그 생각들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에서 우리 가족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100%, 200% 확신하진 못했었던 것 같다. 97% 정도에서 머무르며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가족들을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 아빠가 하신 행동들을 하나 둘 차근차근 돌이켜 봤을 때, 나는 정말 아빠 아들이 맞는구나 라는 생각과 확신이 들었다. 아빠는 7남매의 첫째로 태어나서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급급했고 정신이 없었다. 여유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알겠지만 나의 아빠는 정말 죽을 둥 살 똥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애썼겠지만 지금 나의 모든 것을 반쯤 포기한 상태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래서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남에게 주기 급급하고 남에게 받기보단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챙기고 위해주고 남을 위해 사는 그런 인생은 나의 아빠 인생이었다. 사업을 하며 영위하던 것들도 아빠의 아픔과 병으로 인해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랬을 때 지켜주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연락으로 안부를 묻고 걱정해주는 사람은 있었어도 당장 부리나케 달려와주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난 뒤, 장례를 치르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감사하게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고 내가 아빠 회사를 가서 밥을 먹고 술을 간간이 마실 때마다 마주쳤던 삼촌들도, 동아리 멤버들도 같이 찾아와 주었다.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면서 "너네 아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고생했을 거야."라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빠와는 다르게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사람도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지 장례식이 그렇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무언가에 홀린 듯 아빠 이야기를 썼지만 이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살아있는 아빠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 같기만 하다. 너무나도 생생하다.


나는 무슨 글을 쓰려고 했던 걸까


결국은 나도 아빠가 있는 곳에 따라가고 싶은 것은 아닐까. 아빠는 그래도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 관계들이 너무나도 분명했고 확실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깊은 관계들이었다. 나의 장례식장에는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쉽사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나 자신만을 괴롭히고 또 괴롭힐 뿐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 세상 밖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겠지만 그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무섭지 않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부정적으로 비추어지건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피해를 입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겪게 되었을 때는 참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많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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