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pty Jul 27. 2022

말보다 글이 편하니까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흰 바탕을 보면 글을 쓰기가 두려워진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어떤 단어들로 하나의 글을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화면을 보고 있다. 멍하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내 생각이지만 하나의 글을 쓸 때는 참 많은 리소스들이 필요한 것 같다. 제목을 뽑고 제목에 어울리는 글감을 생각해내야 하고 글감에 필요한 단어들을 가공하여 하나의 매끄러운 글로 탄생시켜야 한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건 내가 그런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일까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이 방법을 오래 써왔기 때문에 적응한 걸 수도 있다.


말을 잘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이건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적응할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것 같다. 굳이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가장 큰 마음은 내가 말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남들처럼 말을 빠르고 요약해서 핵심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말하는 게 겁난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더욱더 공포다. 차라리 글로 쓰거나 메모를 남기거나 하는 형태가 훨씬 더 마음이 편한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긴장을 너무나도 많이, 심하게 하는 편이라 말도 잘 안 나오고 허둥지둥하다가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못 한다. 그게 가장 큰 핵심이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을 때 기본적으로 긴장을 하고 겁을 먹고 덜컥 말을 못 한다.


이것들도 모두 어딘가에서 브레이크를 강제로 밟혔기 때문일 수도 있고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내는 걸 수도 있다. 말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빠른 사회에서는 내 말투나 속도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답답해서 말을 좀 빨리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과 마주할 때 분위기가 느껴진다. 말을 못 하고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을 들으며 답답하다는 표정이나 온도가 바뀌는 걸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감지한다. 서둘러 말을 끝내려고 마무리를 짓지만 이미 분위기는 고장 난 상태다.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사냐는 말이 돌아오겠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하나하나 바뀌고 작은 온도의 변화도 너무나도 잘 느낀다. 강제로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고 표정이 바뀌고 작은 행동들과 같은 것들이 다 느껴진다. 그게 너무 힘들다. 좋다. 나는 내 예민한 성격이 싫을 때도 있지만 좋은 점은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싫어하는 부분은 그런 사소한 감정들을 캐치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으로 인해 내가 위축되고 공포를 느끼고 덜컥 겁을 먹는 그 감정들이 너무 싫다. 부담스럽다.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정말로 힘들다.


글을 쓰면서도 너무 추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글을 쓰는 것 같다. 이딴 것이 글이 될 수 없다고 느낀다. 이건 글이 아니라 유서 같은 느낌이잖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딴 것은 글이 아니라 낙서 혹은 주절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으, 나는 정말 내가 싫다.

작가의 이전글 분노와 배려는 한 끗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