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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ug 03. 2022

그렇게 하루 종일

그렇게 하루 종일 비를 맞았다. 비를 맞으면서 비가 더 오기만을 기대했다. 비가 더 와서 내가 빗물에 녹아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비가 정말 미친 듯이 쏟아져서 굵은 빗방울에 내가 조금씩 깎여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비를 하염없이 맞기만 했다.


비를 얼마나 맞았을까. 그 새벽 시간에는 아무도 길거리를 지나지 않았다. 비가 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테고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내게 조금이나마 신호를 주었던 것은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을 때 내 곁에서 쉴 새 없이 깜빡였던 신호등과 지하주차장에서 나온듯한 업무용 차량이 나에게 헤드라이트로 깜빡-신호를 준 것이었다. 비가 오니 헤드라이트를 켰어야 했을 거고 주차장에서 나와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니 앞에 반팔, 반바지, 샌들을 신은 사람이 하염없이 바닥만 쳐다보며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당연히 눈에 들어왔을 것 같다.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더 이상의 신호는 없었고 갈 길을 갔다. 사실 그 자리에서 누가 우산을 씌워주거나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줬더라면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인생이란 말도 있는 거겠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었으면 그 인생은 지루하고 재미없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조건에서, 환경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음 편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괜스레 불안해지고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기쁨의 두근거림이 아니라 불안함의 두근거림이다. 확실하다. 무언가를 알지 못해서 알아야만 하고 이제부터 알아가고 배워야 한다는 그 감정이 나도 모르게 불안함의 원인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손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 나름 마음이 편했고 평화로웠다. 그래서 이전에 일했던 곳도 프리랜서로 업무량이 많지도 않으면서 내 시간이 있는 것이 좋았다. 나름 사람들과의 교류도 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쥐어주고, 그들이 내뱉는 불만들을 하나 둘 처리해준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따듯한 말과 다정한 말이 오가는 것이 너무나도 좋고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너무나도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고 내 돈을 들여서까지도 해결해주려고 한다. 그 반대되는 사람은 아무런 마음도 감정도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는 따듯한 말, 다정한 말에 너무나도 취약하다. 돈이 많고 부유하고 여유롭고 가진 것이 많은 것은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감사할 줄 알고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너무나도 작고 소중하다. 그래서 나도 그 감정 하나의 보답을 받기를 원하고 기다리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좋은 세상,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몇 년째 해오던 이 생각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지만 그래서 그러지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다.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하루하루가 늘 하얀 도화지가 된 기분이다.


칠하는 사람의 성향대로 그려지는 하얀 도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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