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음악을 하게 되었다. 전문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나마 제일 좋아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싫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실용음악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눈치가 보였다. 군대뿐 아니라 대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선배들과의 교류를 지켜내야 했기 때문에 거절이라던가 짜증이라던가 하기 싫은 티를 내거나 하면 안 됐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리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선배들은 늘 그렇다. '나는 선배가 되면 안 저래야지!' 하면서도 늘 그 말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졸업만 했다. 내가 다닐 때만 하더라도 우리 학교는 자체적으로 건물을 늘리고 있었고 거의 공사장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 내부에는 공사차량, 트럭들이 매번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공사장 인력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학교는 예체능 학교 라인업에서는 당연히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고 서울 3대 예술대학이라는 타이틀이 버젓이 있는 상태에서 실용음악 학과는 전국적으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학교 이름을 물론 따지는 것이 좋았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먼저 따졌어야 했던 게 내가 이 길이 맞나 라는 의문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고 본다.
그렇게 되뇌지 않고 고민해보지 못한 탓에 어정쩡한 대학을 가게 되었고 대학에서 대학교로 명칭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들려왔고 졸업하기 몇 달 전, 2년을 추가로 더 다닐 사람들은 등록금과 신청서를 제출해서 내라는 조교의 말을 듣지도 않고 빠져나왔다. 그때 신청했더라면 나는 2년 후에 군대를 다녀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더 다니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등록금도 나름 절약했고 장학금을 딱 두 번인가 한 번인가밖에 못 받았지만 그래도 아쉽지는 않다. 놀기도 많이 놀았고 학교 수업을 들어가지 않고 편의점에서 마셨던 낮술이 그리울 때도 있다. 달랑 소주나 음료수, 과자를 먹으면서 수업을 도망친 교수님을 욕하거나 선배들을 욕하거나 했다. 그냥 재미있었다. 엄청난 추억도 아니고 엄청난 후회도 아니다. 공부를 한 기억보다 놀았던 기억이 더 많았고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연습한 것이 아니라 거진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연습실에서 dj 연습을 했다. 사람 성격이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그때도 남들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교 생활에서의 정말 다양한 일을 맡아했다. 심지어 누군가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학교에 휘성이 와서 공연을 하는 날이 있었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그때 가지고 있던 dslr을 들고 가서 맨 앞자리에서 사진 촬영을 했고 교수님 지인의 공연에도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고 해서 군소리 없이 촬영을 하고 사진 원본까지 이메일로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대학 교수 입장에서 한낱 학생이 사진 촬영하는 거 좋아한다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겸사겸사 좋잖아-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곳에서의 푸대접이 싫었다. 어떠한 대가나 대접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좋은 뜻이, 좋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거절을 한다. 거절하는 것도 빙빙 돌려서 이야기를 해서 잘 알아듣지 못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흠이지만.
이런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서 (아주 간단한) 음악 트레이닝 프로젝트(?)를 열 것만 같다. 아니 열게 될 것 같다. 나도 글을 쓰면서도 참 당황스럽고 황당하지만 그렇게라도 이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고 그들의 즐거움을, 그들 각자가 깨우침을 깨닫는 모습을 보면 나도 너무나 즐거울 것 같다. 그보다도 나 자신이 제일 먼저 지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치지 않고 이번에는 긴 마라톤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이 휘둘리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