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pty Sep 03. 2022

뜨거운 햇빛에 타 죽은 지렁이

출근하는 길이었다. 해가 너무나도 쨍한 날씨였다. 이런 햇빛이 가득한 날은 나에게 너무나도 무섭고 피하고 싶은 날이다. 지독하게도 따라다니는 햇빛 알레르기를 수십 년 앓다 보니 이제 햇빛만 보면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트라우마가 생겼다. 탁 트인 놀이공원이나 그늘 하나 없는 광야 같은 곳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보기만 해도 너무 고통스럽다.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랄까. 심지어 그 알레르기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기력이다. 햇빛에서 오랜 시간도 아니고 어느 정도 노출이 되면 몸에 있는 기운이 모두 빠지고 극도로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예를 들면 만화영화의 악당들이 주인공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으로 내 육체의 모든 기운을 앗아간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 팔엔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많아서 그것을 가린다고 항상 긴팔과 팔토시를 하고 다닌다. 그러니까, 나는 여름에 아주 취약한 사람이다. 물론 그냥 반팔을 평소에도 입을 수는 있겠지만 팔에 있는 상처가 남들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고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볼까 봐 반팔을 입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출근을 하던 길에도 해가 여전히 쨍쨍했다. 나는 늘 높은 확률로 백팩을 메고 다니지만 그 백팩 옆구리에는 항상 검은색 3단 우산이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우산의 기능을 하고자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햇빛 가림막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였으니까. 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느다. 뭐, 정말 심한 태풍이나 비바람이 몰아치면 쓰긴 하겠지만 비 맞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작 비 올 때 쓰려고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참 특이하다. 이걸 설명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언덕이 아주 가파르고 역에서 여유롭게 걸어 올라가면 15분 정도 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대략 7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굳이 7분이라는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애매한 시간에 지하철 역에서 나와 10시까지 도착을 했어야 했는데 딱 10분 정도의 시간을 남기고 뛰진 않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 회사에 도착해보니 9시 57분이라는 시간을 보고 아직까지도 그 7분이라는 시간이 뇌리에 박혀있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길가에서 타 죽은 지렁이가 있었다.


그 지렁이는 정말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이게 햇빛에 타서 죽은 건지 차에 깔려 죽은 건지 모를 정도로 처참하게 죽어있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고통스러운 햇빛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나 자신을 무섭게 만들었다. 아주 작은 지렁이도 이렇게 햇빛에 죽을 수도 있으니 나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정말 바보 같지만 문득 그런 생각을 들게 했다. 저 지렁이는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을까, 미생물의 세계에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병이 있을까? 저 죽은 지렁이는 죽고 싶어서 땅에서 나와 콘크리트 바닥으로 나온 것은 아닐 텐데 어쩌다 여기까지 나와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걸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내가 생각이 많다는 것은 이런 끊임없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햇빛에 타 죽어버린 지렁이를 발견한 하루는 생각보다 찜찜했고 더 답답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도 저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과연 잘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긴 할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억지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일까라는 생각과 고찰을 하게 만든다.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이라 그런지 하늘이 수십 번씩 햇빛이 드리우고 먹구름이 드리운다. 그리고 바람은 하루 종일 불고 있다. 태풍에 휩쓸렸으면 좋겠다. 나만 휩쓸렸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아직도 어린가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