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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Sep 16. 2022

말의 무게를 왜 모를까?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말의 무게를 모른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을 하고 쉽게 내뱉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어렸을 때는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왜 저럴까? 왜 저렇게밖에 이야기를 못하는 걸까? 저렇게 이야기를 하면 속이 좀 시원한가?라고 '인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은 저렇게 말을 하면 상대방이 상처가 될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지금 분위기에 맞는 말이 아니지 않나?라고 '분위기, 흐름'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는 이런 것들이 마치 하나의 피사체처럼 항상 움직인다. 나를 따라다니는 드론처럼 내 상황과 환경을 예의 주시하며 계속해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을 지켜보고 감시하는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하는 것이 관계에도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분이 좋거나 텐션이 높아지거나 일반적인 평범한 상태가 아니라면 그들은 항상 선을 조금씩 넘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신나서? 아니면 장난을 쳐야만 하는 병이 걸린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끼리 장난치는 걸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는 장난을 치되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상처가 될 것 같은 장난을 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고 싫어한다. 안 좋아한다. 그래, 모든 사람이 모든 세상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할 수는 있는 건데 인간들은 조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늘 항상 편한 것, 시끄러운 것, 간단한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한다. 그게 정도가 심해지면 막말이 되어버린다.


물론 내가 너무 민감하고 누가 옆구리라도 콕 찌르는 날엔 불같이 화를 낼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너무 화가 많아졌다.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참을 수 없이 화가 머리끝까지 분노로 가득 찬다. 그럴싸한 비유를 하고 싶은데 비유할만한 것이 없다. 마땅히 생각나질 않는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버럭 이가 아닐까 싶다. 작은 변화에도, 작은 움직임이나 작은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나 자신을 모두 망쳐버리는 버럭이. 이런 성격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놀랍지만 크립토 프로젝트를 하고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이런 이유로 다 포기하고 싶다. 왜 그러는 걸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여전히 내가 싫다. 지독히도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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